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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imony of the Creators

Interview with Mike Browning(ex- Morbid Angel)

꽤 유명한 인터뷰이다(일단 꽤 오래되기도 했고). Mike Browning은 Morbid Angel의 결성 멤버이기도 하지만 "Altars of Madness" 가 나오기도 전에 밴드를 나와 Nocturnus 활동으로 더 유명하다. Morbid Angel의 초창기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인터뷰이기도 하다. 2005년의 인터뷰.

[taken from Death Metal Underground / Voices from the Darkside zine]






Brett Stevens(이하 BS) : 당신은 "Abominations of Desolation" 녹음 당시 Morbid Angel의 멤버였고, 그 앨범은 데스메탈의 잘 알려진 클래식들보다도 먼저 발매되었다. 당시 밴드의 라인업은 어땠는가? 그처럼 역사적으로 의미 있고 음악적으로도 인상적인 앨범의 레코딩에 참여한 느낌은 어땠는가?

Mike Browning(이하 MB) : 당시의 라인업은 다음과 같았다 : 내가 드럼과 보컬을, Trey Azagthoth와 Richard Brunelle이 기타를, John Ortega가 베이스를 맡았다. 1986년에는 모든 류의 음악이 그냥 메틀이라 불렸다. 좀 더 데스메틀에 가깝든, 파워메틀에 가깝든 말이다. 모두 메틀이었고, 청중들도 하나였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서로 사이좋게 지냈다. 그 앨범 외에도 다른 앨범을 하나 더 녹음하고 있었고, 가장 빠른 앨범이나 가장 헤비한 앨범을 만든다거나 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우리의 음악을 가능한 한 독창적으로 만들 뿐이었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하여 진실하자는 것이었다.

BS : "Abominations of Desolation" 은 Morbid Angel의 첫 앨범으로 녹음된 것이 아니었나?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게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사실이기라도 한가?

MB : 사람들이 이걸 아직도 궁금해한다는 게 신기한데, 사실은 이렇다. Gorque Records로부터 Morbid Angel 이름으로 앨범 하나를 녹음하기로 하는 계약을 제안받았다. David Vincent와 그 파트너인 Mark Anderson의 레이블이었다. 우리는 계약을 했고,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앨범들을 제작했던 Metal Blade의 Bill Metoyer가 엔지니어로 고용됐다. 레이블은 우리에게 트럭을 렌트해 줬고, 거기에 장비를 챙겨서 Charlotte의 스튜디오로 향했다. 묵기로 한 호텔방에서 David Vincent와 Mark Anderson을 처음 만났고, 다음날 앨범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5-6일 쯤 뒤에 녹음이 끝났고, David은 우리 모두를 플로리다로 돌려보냈지만 Trey는 믹스다운 작업을 위해 남아 있었다. David이 어떻게 Trey를 세뇌하고 앨범이 형편없으니 밴드를 나와서 자기 밴드에 들어오라고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Trey가 믹싱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게 안 좋아지고 있었다.

BS : 발매 당시(1986년) 앨범의 반응은 어땠는가? 1991년의 반응은 어땠는가?

MB : 결론부터 말하자면 1986년에는 앨범이 나오지 못했다. 내가 여자친구와 함께 Trey를 떠나지 않게 붙잡았고 결국 그가 손들었거든. 그게 내 Morbid Angel 생활의 마지막이기도 했다. Trey와 Richard는 곧 Tampa에서 Charlotte로 이사했고, David과 드러머 Wayne Hartsell의 밴드에 합류했다. John Ortega가 우리가 모두 플로리다로 돌아갈 시점에서의 러프 믹스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Trey는 돌아와서, David Vincent가 John의 베이스 연주가 형편없어서 앨범을 레이블에서 발매하려면 John을 해고하고 새 베이시스트로 Sterling Scarborough를 고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Sterling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다시 말하지만, John을 Sterling으로 교체하기로 하는 건 David의 생각이었다. Trey는 그에 따랐고, 밴드는 그 일 이후 몇 달 밖에 가지 못했다. "Abominations of Desolation" 이 1991년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그 앨범이 뭔지 많이 헷갈릴 거라고 생각했다. 재생하고 있는 앨범이 뭔지 어떤 정보나 사진도 없었다. 앨범 커버 오른편 구석에 1986년에 녹음되었지만 발매되지 않은 앨범이라는 정도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Earache 발매작조차 데모가 아니라 미발표 앨범이라는 정도만 적혀 있을 뿐이다. 아무 정보도 없었다.

BS : 밴드는 언제 "Altars of Madness" 를 녹음하기로 했는가? 그 앨범의 곡들과 "Abominations of Desolation" 간의 차이점은 무엇이 있는가?

MB : 2년 정도 뒤였던 것 같다. 동일한 곡을 더 타이트하고 빠르게 만들어 작업하는 데 2년이 걸린 것이다. 가사 여기저기의 단어 몇 개만을 바꿨을 뿐이고, 드럼 파트의 많은 부분도 거의 비슷했다. 더 빨라졌을 뿐이다.

BS : Earache에서 "Abominations of Desolation" 을 발매했을 때, 오리지널 레코딩과 차이는 없었는가?

MB :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1986년에 그 앨범은 발매되지 않았고, 덕분에 비교할 만한 게 없었다. John이 이후 부틀랙으로 발매한 그 러프 믹스를 제외하면 말이다.

BS : Sterling von Scarboroug는 누군가?

MB : 본명은 John Sterling von Scarboroug지만 Sterling von Scarboroug로 통했다. Atlanta에서 Incubus란 밴드를 하고 있는 베이시스트였고, David Vincent는 Trey에게 John Ortega를 교체해야 하며, Sterling이 적임자라고 말했다. Sterling은 Tampa로 와서 연주를 맞춰 본 후, 곧 새 베이시스트가 되었다. 그는 "Abominations of Desolation" 녹음이 끝난 뒤에 합류했다. 우리는 그와 1986년에 The Volley Club에서 한 차례 공연을 가졌고, 그 날 오프닝은 Amon(훗날의 Deicide)이 맡았었다. 아쉽게도 그 공연은 녹음되지 않았고, 내가 Morbid Angel로 연주한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BS : 왜 Earache가 녹음된 지 5년이 지난 1991년에 "Abominations of Desolation" 을 발매했다고 생각하는가? Earache가 "Abominations of Desolation" 대신에 "Altars of Madness" 를 밴드의 첫 앨범이라 하기로 하였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MB : 내가 들은 바로는, Earache가 그 앨범을 발매한 것은 John Ortega가 가진 러프 믹스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부틀랙들이 돌아다니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John의 테입에서 모든 부틀랙들이 만들어졌고, 카피가 계속될 수록 음질은 점점 형편없어졌다. David과 Trey는 Earache와 "Abominations of Desolation" 을 발매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David는 앨범의 마스터 음원을 가지고 있었고, 그걸 Earache에 팔아넘겼다. 물론 레이블은 Trey에게 얼마간 돈을 안겨주었고, 부틀랙들을 막기 위해 그걸 발매했다. 재미있는 건 당시 내가 Nocturnus의 멤버로서 Earache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들은 내게 그 앨범의 발매에 관하여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앨범이 나와서 매장들에 깔릴 때까지도 난 몰랐었다. 앨범은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돼 있고, 난 그 넷 중 둘을 담당했는데도, 앨범이 나온다는 얘기조차 듣질 못한 거다!

BS : Morbid Angel은 "Altars of Madness" 에서 "Abominations of Desolation" 때와는 곡의 방향을 달리 잡았는가(프로듀싱이나 보컬이 아니라, 노트의 선택에 관하여)? 왜 그렇게 했다고 보는가? 원래의 곡의 방향은 어땠는가?

MB : 그 곡들로 추가적인 작업을 하게 된 건 몇 년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기타 빼고는 모든 게 바뀌었으니, 새롭고 또 다른 사운드가 나올 건 자명했다. 특히 보컬리스트까지 바뀌었으니 말이다. 알고 있듯이, David은 나와 같은 스타일로 더 많은 노래를 부르려고 했지만, 곧 그걸 포기하고 "Blessed Are The Sick" 에서는 다른 스타일을 취했다. 그들은 예전보다 돈이 많았고, 메틀로 유명한 Morrisound에서 앨범을 녹음했다. "Abominations of Desolation" 을 녹음한 스튜디오는 컨트리를 녹음하던 스튜디오여서, 그곳의 크루들은 그 전에 메틀 밴드의 녹음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프로듀싱상의 차이는 엄청나게 된다.

BS : 당신이 Morbid Angel 전에 Trey Azagthoth와 ICE라는 밴드를 결성했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밴드에서 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고, 그 당시 당신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은 무엇인가?

MB : 나와 Trey는 1981년 고등학생일 때 만났다.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첫 기타를 사줬던 것까지 기억난다. 나무 색깔의 깁슨 SG였다. 우리는 곧 우리 집 안방 뒤편의 방에서 잼을 시작했고, 스쿨 밴드를 만들어서 축제 때 공연도 했다. 말 그대로, Morbid Angel이 될 밴드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BS : “Abominations of Desolation” 의 음악적 영감은 다른 앨범에까지 미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른 앨범들 또한 포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에게 영향을 준 비음악적 경험이나 서적, 아이디어, 연극, 영화, 사유 등은 무엇이 있는가? 당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음악에서 발견했던 것과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MB : Trey와 나는 둘 다 오컬티즘에 심취해 있었다. 그가 Tampa로 이사와서 내가 다니고 있던 학교로 등교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만나서 서로의 관심사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둘 다 오컬트를 좋아하는 뮤지션이었고, Necronomicon이란 책에 빠져 있었으며, 그 책의 모든 내용이 사실이며 실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Necronomicon에 나오는 수메르 신들을 경배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를 만들기로 했다. 우리는 당시 아주 심각했고, 밴드의 목적은 그런 고대의 존재들(Ancient Ones)을 세상에 알리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BS : Trey 외의 밴드의 다른 멤버들도 고등학교 때 만났는가? 그건 그냥 루머일 뿐인가? 어떻게 그 멤버들과 친해지게 된 것인가?

MB : 고등학교 때 알고 지낸 건 Trey와 나뿐이었다. Morbid Angel은 1984년에 나와 Trey, 베이스를 맡은 Dallas Ward가 결성했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는 South Tampa에 지금도 있는 HB Plant 고등학교였다. 그 고등학교에 다니는 모든 흡연자들과 히피족들이 ‘The Alley’ 라 부르는 곳이 있었다. 모두가 등교 전에, 점심시간에 거기에 있었고, 거기서 만나 음악하고 Necronomicon 얘기를 했던 거다.

BS : ICE는 어떤 류의 음악을 연주한 밴드였나? 어떤 곡들을 커버했는가? 당신들의 스타일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연습은 얼마나 자주 했는가? 그 때의 경험이 Morbid Angel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MB : 처음에는 커버곡들만 연주했다. 이를테면 Judas Priest나 Scorpions, Black Sabbath 같은. 그 때는 Slayer도, Celtic Frost도, 심지어는 Hellhammer도 없었다. 우리는 슬슬 나름 자작곡들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Trey는 Tampa 북쪽 끝으로 다시 이사를 갔다. 그래서 한 6개월 동안 그를 볼 수 없었고, 그래서 메틀을 연주하던 다른 친구들과 잼을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Trey는 Dallas와 보컬인 Charles를 만났고, 좀 더 나이가 많은 드러머를 만났다. 그는 Tampa 북쪽에 있는 다른 동네에 살았고, 때문에 우리와 잼을 하는 주말에만 동네에 왔다. 그래서 내가 Trey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그 커버 밴드를 나와 다시 Trey와 새로운 친구들과 연주하기로 했다. 이미 그들은 Death Watch로 밴드명을 정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보컬이 체포되어 철창 신세를 지게 됐고, 3인조가 되면서 Dallas가 보컬까지 맡게 되었고, 밴드명을 Heretic으로 바꿨다. 그렇지만 곧 이미 Heretic이라는 이름을 다른 밴드가 쓰고 있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Morbid Angel로 이름을 정한 거다.

BS : 당신은 데스메틀을 어떤 개념으로 생각하는가? 프로그레시브 록의 영향이 있는가? 클래식이나 재즈는 어떤가?

MB : 내가 연주했던 대부분의 음악이 데스메틀에 속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음악들은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Nocturnus의 경우는 특히 그랬고. 그렇지만 데스메틀은 죽음이나 고어(gore), 반기독교적인 많은 테마들에 중점을 둔 가사를 가진 아주 헤비하고, 빠르며, 공격적인 타입의 음악이라 생각한다. 나로 말하자면 프로그레시브 록의 영향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 Rush를 아주 좋아했고, 그들은 겁나 프로그레시브한 밴드였다. 6학년부터 10학년(역주 : 우리로 치면 고1) 때까지 스쿨 밴드에서 퍼커션을 맡은 덕에 클래식도 좋아했다. 덕분에 클래식이나 마칭 밴드에서 쓰이는 모든 종류의 퍼커션을 배웠다. 팀파니나 벨 등… 재즈류의 음악에는 꽂혀 본 적이 없다. 제대로 들어보고는 싶은데 말이다. 재즈 음악에 끝내주는 드러머나 드럼 연주가 많더라고.

BS : 당신은 매우 숙련되어 있으면서도 개성적인 스타일의 연주를 한다. 연주를 어떻게 배웠는가? 음악적 이해를 깊게 해 준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음악을 이해함에 있어 계속 변화해 가는 데스메틀 씬은 어느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

MB : 내 어머니는 70년대 스타일 록 밴드에서 보컬을 맡았고, Trey와 내가 연습하곤 하던 그 방에서 노래 연습을 하시곤 했다. 덕분에 나의 음악적 이해는 데스메틀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9-10살 쯤에, 그 방에서 어머니의 밴드가 리허설하는 걸 보곤 했고, 드러머의 연주를 보는 걸 가장 좋아했었다. 그래서 6학년 때 그들이 밴드 합류를 권유했을 때, 나는 당연히 드럼을 치고 싶다고 했다! 마칭 밴드의 음악이나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면서,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밴드 활동을 보면서 음악을 연주하고 밴드에 있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Styx나 Led Zeppelin 같은 밴드를 좋아했지만, 곧 Black Sabbath나 Deep Purple 같은 좀 더 헤비한 걸 찾기 시작했고, 다시 Judas Priest나 Iron Maiden, 그리고 Slayer나 Venom, Mercyful Fate, Hellhammer 같은 밴드를 발견했다. 그런 밴드에서 연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들과는 다르고 싶었다. 다른 이의 스타일을 카피해서 그와 비슷하게 되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게 지금껏 내가 내 나름의 것을 계속 해나가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돈이 되거나 말거나는 중요하지 않다. 음악을 통해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음악을 할 뿐이다. 다른 친구들이 내 음악을 좋다고 해 주면 그것도 아주 끝내주는 일이고.

BS : “Abominations of Desolation” 는 어떻게 녹음되었나? 그 앨범은 매우 거칠지만, 악기들의 질감을 그대로 담고 있다. “Altars of Madness” 처럼 깔끔하고 볼륨을 크게 하면서 세세한 부분들을 희생시키는 방식은 아니다. 이런 방식을 취한 이유는 무엇인가?

MB : 1986년에 그 앨범을 녹음할 때, 우리는 레코딩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어떤 장비가 레코딩에 좋은지도 몰랐고.. 그래서 우리가 끝내주는 장비를 갖춘 24트랙 스튜디오를 쓴다고 해도 좋은 음질의 앨범을 만들 수는 없었다. 난 그저 몇 달 동안 노래를 했을 뿐이고, 몇몇 곡들이 쓰여졌을 뿐이다. 게다가 시간적 한계도 있었다. 우리는 다른 주에 있는 생소한 장소에서 녹음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스튜디오에서만 있으면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좀 더 아는 것도 많고 장비도 좋았으면 더 좋은 사운드가 나왔을 거다. 그렇지만 우리는 갓 레코드 계약을 맺은 또라이들일 뿐이었다. 나는 믹스다운에도 관여한 바가 없었고, Trey가 믹싱 등 작업이 끝난 앨범을 가져오기 전까지 나는 아무 작업도 하지 않은 거친 음원들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앨범은 충분한 에너지가 있었다. 우리가 안고 있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법한 그런 에너지 말이다.

BS : 현재 당신이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After Death 666 같은)에 대해 얘기해 보자. 이 프로젝트들은 전형적인 데스메틀이나 “Abominations of Desolation”, “Altars of Madness” 와 어떻게 틀린가? 당신이 요새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은 뭘 찾아보면 되겠는가?

MB : 지금은 똑 같은 멤버들로 2개의 밴드를 하는 중이다. 하나는 Nocturnus AD고, 1990년에 “The Key” 를 녹음한 뒤에 내가 Nocturnus로 하고 싶었던 스타일을 계속하고 있다. “Abominations of Desolation” 보다는 훨씬 SF적인 테마에 가깝고, 테크니컬하다. Nocturnus가 1987-1992년에 했던 것처럼 E-플랫으로 키보드를 튜닝해서 연주한다. 다른 밴드는 After Death고, 멤버는 똑같지만 오컬트에 관련된 것들을 다루는 좀 더 헤비한 음악을 연주한다. 덜 테크니컬하지만 더 분위기 위주의 음악이고, D로 튜닝해서 연주한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작업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그냥 Mike Browning이란 이름으로 올리고 거기에 대부분의 정보들이 있지만, Nocturnus AD와 After Death의 페이스북 페이지도 있다. 두 밴드의 공동 홈페이지인 www.afterdeath666.com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