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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Esoteric - The Maniacal Vale

[Season of Mist, 2008]

Esoteric은 통상 퓨너럴 둠 메틀 밴드로 구별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나, 사실 다른 밴드들과 이들을 같은 범주로 두는 일은 오해의 여지가 많다. "Metamorphogenesis" 부터는 확실히 덜하나, 이들의 이름을 알린 그 이전의 앨범들이 분명히 보여 주는 사이키델리아는 일반적인 퓨너럴 둠과는 분명히 거리를 둔다.(그래서 나는 솔직히 이들을 퓨너럴 둠이라 하는 데 불만이 많다) 물론 이들에게서 Thergothon 등의 퓨너럴 둠 파이오니어들의 느낌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일일 것이나, 이들은 씬 내부에서도 가장 독자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Metamorphogenesis" 이후라도, 그렇다)

앨범은 1996년의 "The Pernocious Enigma" 이후로 오랜만의 더블 앨범이다(이들은 다섯 장의 풀-렝쓰를 발매했지만, 그 중 세 장이 더블 앨범이다). "Metamorphogenesis"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 앨범이 이전의 사이키델리아를 구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앨범의 서두를 여는 'Circle' 은, 밴드가 여태까지 만들어 온 곡들 가운데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곡 중 하나일 것이다 - 동시에 가장 멜로딕한 곡이기도 하다 - . 이 곡이 Esoteric의 곡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Greg의 보컬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튠 다운되는 부분부터일 것이다. Greg의 보컬 자체가 고음과 저음의 차가 매우 큰 편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이 앨범에서는 특히 심하다고 생각된다. 분위기는 구별되는 편이기는 하지만, 좀 더 짧은 곡들인(그래도 7분 정도는 넘어간다) 'Caucus of Mind' 같은 곡들도 점진적인 구조를 보여주면서(무려 업템포가 등장하는) 일반적인 퓨너럴 둠의 방식과는 차이를 보여준다. 심지어 'Silence' 같은 곡의 멜로디는 아마도 Dolorian 같은 밴드와도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드라마틱함은 사실 "Epistemological Despondency" 에서 이미 밴드가 보여준 바는 있다고 생각되지만(물론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이 앨범은 이후의 변모된 모습, 특히나 기타 톤은 전작인 "Subconscious Dissolution into the Continuum" 의 잔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근래의 노선을 짚어 가는 것일 것이다. Esoteric의 사이키델리아는 이들을 퓨너럴 둠의 전형적인 딜레마를 빠져 나갈 수 있도록 한 무기이기도 한 만큼, 사이키델리아를 추구하지 않음은 꽤 위험한 것일 수 있다. 그 딜레마란 별 것이 아니다 - 퓨너럴 둠을 어떻게 '단조롭지' 않도록 만들 것인가? 거기다 이들의 앨범은 다른 여타 둠 메틀 밴드보다도 훨씬 길다. 밴드가 선택해 온 방식은 드라마틱함이라 생각된다. 물론 이는 Saturnus 류의 밴드들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 밴드는 "Epistemological..." 식의 분위기를 동시에 데스메틀적 사운드(물론 빠르지 않다)와 병치시킴으로써 해결했다고 보여진다. 상술한 'Caucus of Mind' 는 그런 맥락에서 나올 수 있었던 곡일 것이다. 퓨너럴 둠으로 분류되는 이들임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멜로디라인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우 다층적으로 짜여져 있다는 것도 한 증거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조는 동시에 '드론 사운드' 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최소한 이제 밴드는, Thergothon보다는 Shape of Despair 류의 음악에 좀 더 가깝다.

다만 이 앨범의 미덕은 "Subconscious..." 앨범보다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서사를 끌고 나감에 있어 약간의 불안함을 보여주었던 모습을 본작에서는 분명히 극복한 듯하다. 브레이크들은 매우 신중하게 배치되어 있고, 아마도 'The Order of Destiny' 같은 곡에서 나오는 솔로잉은 그러한 자신감의 일환일 것이다. 밴드는 새로운 모습을 구축함에 있어서 필요한 밸런스를 드디어 발견한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놀라운 앨범이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둠 메틀 클래식이 될 법한, 그런 앨범이다. 유일한 단점은, 너무 길기 때문에 둠 메틀 초심자라면 게거품을 물 지도 모른다는 정도지만, 밴드는 다행히도 2cd의 각 cd는 물론, 수록곡 하나하나를 독립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정도라면 이 앨범은 참고 들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팬심 조금 섞어서, 환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