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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Literature of Obscure Minds

무지카 프라티카 : 그레고리오 성가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서양 음악의 사회적 관습

[동문선, 2001]

마이클 캐넌 저, 김혜중 역

'무지카 프라티카' 야 이미 충분히 잘 알려진 책일 것이다. 원제는 "Practica : The Social Practice of Western from Gregorian Chant to Postmodernism" 인데, 제목부터 말해 주고 있지만 대중 음악에 대한 책이 아니다(물론 후반부에 조금 나오기는 한다). 굳이 애기한다면 '음반 산업' 에 대한 책인데, 흔히 나오는 광고문에서는 '서구 음악의 사회적 관습' 을 다루고 있다는 정도로 말해지는 듯하다. 뭐 그건 그렇고, 원작이 어떠한 책인지와 무관하게 일단 짜증부터 내야겠다. 이 출판사를 원래 (책 디자인 정도를 제외한다면)그리 좋아하진 않아서 불안감은 있었지만, 이 책의 번역 상태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 영어 교육의 수준을 개탄할 만한 영어 실력의 나로서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라면 꽤나 심각한 수준인데, 다른 예들은 차치하고라도, 책의 제목이 말해 주거니와 이 책의 핵심 개념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practice' 를 '관습' 이라 번역하고 있는 것은 정말 곤란하다. 관습이 아니라 '실천' 이 맞을 것이다. (내가 가진 책은 2001년판이지만 이후 새 판이 나왔다 하니, 이 정도의 큼직큼직한 오류는 수정되었으리라 믿는다)

어찌 되었든 책은, '무지카 프라티카' 란 용어가 말해 주듯이, 롤랑 바르트부터 시작해서 바흐친, 쇤베르크 등 다양한 이름들을 언급하면서 방대한 사실들을 제시한다. 바흐친도 생소하거니와 바르트는 "텍스트의 즐거움" 외에는 읽어 본 적도 없는 나로서도 그리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은 수준이니 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 나가는 데는 나름 성공적인 편인데, 그 다양한 사실들 가운데서도 핵심적인 것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음악' 이라는 예술 작품도 상품의 범주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방가르드의 실험은 음악의 생산자가 작곡자만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는 했지만, 어쨌건 생산자와 수요자의 도식은 극복되지는 않은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이런 사실은 (내 생각에는)전적으로 타당하다. 대중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접근한 만큼, 많은 양은 아니지만 내 주된 관심사는 후반부에 집중되는데, 결론은 서양 음악의 위기로 귀착되는 듯하다. 무지카 프라티카를 대체하는 사이버 무지카의 등장 또한 저자는 그리 바람직하게 보지는 않는 듯하다. 당연히 이러한 불편한 시각은 그 질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질료보다는 생산자와 수용자가 어떠한 식으로 접근하는지의 문제가 될 것이다.

Michael Chanan은 아주 훌륭한 관찰자라는 점은 일단 분명해 보인다. 전술한 바와 같이 다양한 사실들이 꽤 명료하게 제시되고, 저자는 한 가지 사실에서 여러 가지의 맥을 꺼내어 놓는 데는 아주 능하다. 내 생각에는 이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부분은 2부 중의 '기보법의 힘' 부분이다. 악보가 퍼포먼스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basso continuo(계속저음) - 이것이 모노디 시대의 일이라는 것을 잠깐 상기하고 - 에 나아가고, 여기에서 다시 이러한 기보법이 결국은 비서구적 음악과 서구적 음악을 극명하게 가르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서구의 귀는 비서구 음악의 내적인 여러 측면들을 소화해내기 어려워지게 되었다는 식의. 문제가 된다면, 그의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에서 논하지 않고 있는 - 그렇지만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 근래의 여러 논의들은 전혀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회적으로' 이러한 음악이 어떻게 나타나 왔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음악 그 자체와, 그 내부의 '사람' 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나는 사람보다 물질이 더 결정적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부분이 애써 여러 자료를 찾아 엮어 낸 논의를 군색하게 보이게 하는 부분이 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책이 풍요로운 논의를 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바흐친/바르트에서부터 정신분석학도 (많이는 아니지만)언급해 가면서 세기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책은 꽤 재미있는 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트리비아도 군데군데 꽤 들어가 있는 편이다(학술 서적식 유머랄까). 이를 테면, 두섹은 꽤 잘생긴 남자였다는 식의 사실. 그리고 어쨌건, 그는 자신의 논의의 한계를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비록 Chanan은 상대적으로 자율음악론에 가까운 입장인 듯하나(마지막 챕터의 록 음악 등에 대한 약간의 코멘트를 참조), 그럼에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영역 외의 - 즉, 비서구음악 -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은 의외로 우리의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미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 번역에 따른 피곤함을 생각하더라도 - 좀 더 알려질 자격은 있을 것이다.


post script :
위대한 구글이 이 책을 통째로 올려 놓고 있더라. 물론 영문판이다.
보시려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