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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enal of the Left/Writings

잔혹한 음악, 이라는 생각

자주는 아니고 간혹 있다. 사실 뭣 때문에 내 가방을 그 사람들이 열어 봤었는지는 모르겠다. 항상 어느 정도는 잡동사니들로 차 보이는 가방인지라 궁금했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21세기. 아직도 CD와 포터블 CDP를 챙기고 다니는(물론 MP3플레이어가 없는 건 아니다만) 경우도 드문 편이고, 그 CD들이 담고 있다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생각되는' - 실제로는 아닌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 잔혹한 내용들에 사람들을 놀래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 CD들에 착각하지는 않더라도, 강력한 사운드가 그런 내용과 연결된다는 생각을 발견하는 경우는 더욱 흔한 편이다. 그리고 이건 사실, 전적으로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흔히 메틀 밴드들이 어떤 내용의 가사를 쓰는지에 대한 농담은 넷상에서도 쉬이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Rhapsody 스타일의 멜로딕메틀 밴드들은 항상 번쩍거리는 갑옷의 기사가 용 잡으러 떠난다는 내용이라는 등의.

그렇지만 그런 내용과 음악의 스타일은 사실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디스토션을 사용하지 않고 음침한 내용을 담아내는 예는 사실 꽤나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마도 Nick Cave의 "Murder Ballads" 등이 있을 것이고, 어쩌면 가장 미국적이어서 그와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컨트리 뮤직에서 얼마나 많은 피 묻은 손들을 다루고 있는지를 잠시 생각해 보자. Johnny Cash가 'Cocaine Blues' 에서 묘사한 모습이 그랬고, - 생각보다 꽤 많은 노래가 어두운 - Dixie Chicks가 있을 것이고, 외모마저도 후덕한 백인 남성을 떠올릴 Kenny Rogers도 - 당연히 밝은 분위기로 - 그런 식의 노래를 만들었었다. 메틀 밴드이기는 하지만, 직설적으로 연쇄살인마의 이야기를 다루는 Macabre는, 그렇지만 사실 그 만큼 밝은 분위기로 곡을 만들어 나가는 밴드는 비슷한 장르에서 흔한 것은 아니다.


Dixie Chicks. '젊은 여성 가수들' 이 앨범에 그런 내용의 노래를 낭랑하게 불러 실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곡들이 아마, 일반에 알려지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가사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견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음악의 현실적 상품성을 생각하면 '그런' 내용을 이용하는 것은 지나친 네거티브 캠페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류의 노래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기에는, 밝고 적당한 템포의 곡들에 비교해서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이런 노래를 공중(public)에서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떤 행사에서도 별로 어울리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데스/블랙메틀을 즐긴다고 자처하는 편이지만, 그런 류의 음악에 관심이 없는 이들과 함께 그런 음악을 듣는 건 절대로 사양하는 편이다. (그 음악이 일반 가요나 팝스, 클래식 등이었다면 아마 얘기는 달랐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개인적인 문제는 아닌 것이다)밝은 자리는 못 될 장례식 등에서라도, 이런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을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참 곤란할 노릇이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은 과연 (소수의 서브 장르들을 제외한다면)사람들이 그런 내용들을 음악에서 마주치고 싶어할지에 대한 문제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게 도덕과 별로 연관된 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는 터부와 더 가까운 문제일 것이다. 그런 작품들은 -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삶의 - 우리의 진실한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근래의 음악 프로들 - TV이건 라디오건 간에 - 의 의도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죽음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 물론 연쇄살인마의 이야기를 다룬 적도 있지만 - 기타노 다케시가 미국식 동물화를 비판하는 모습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점이다. 차라리 음악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진정한 합리성을 배우지 못한 폭력적 존재에 대한 합리적인 변용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체에 위험성을 둘 이유가 없다. 그들이 위험했던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지 못했던 바에서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사람들이 그 '잔혹한' 내용들에 놀랐던 것들은, 그냥 그들이 그걸 터부로서 받아들여 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음악의 탓을 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쿠르베가 그림을 그린 지 150년이 지났지만 터부는 극복되지 않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