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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Universal Totem Orchestra - Rituale Alieno

[Black Widow, 1999]

Universal Totem Orchestra는 통상 Magma 스타일의, 'zeuhl' 음악을 하는 이탈리아 밴드라고 얘기되고, 사실 분명히 'zeuhl' 음악이기는 하지만, 뭔가 그렇게 말하기에는 껄끄러운 부분이 꽤 많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확실히 'zeuhl' 스타일이라고 말할 만한 곡은 - 후술하는 대로 - 하나 뿐이다. 그러니 좋게 얘기하면 이들은 Magma의 클론 밴드가 되기에는 많이 독창적인 밴드일 것이다. 사실 이 밴드의 주축이 되는 Runaway Totem의 멤버들은 이미 "Zed" 등의 앨범에서 Magma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면서도 이를 뒤트는 모습들을 보여 준 바 있었는데, 그 세 명이 여러 게스트들을 끌어들여 만든 UTO는 더하다. 그리고 이 앨범의 곡들도 스타일로 보면 제각각이면서, 하나의 곡에도 여러 가지 장르들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다. 사실 그 장르들도 흔히 프로그레시브 록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교잡이 밴드의 음악에 매우 독특한 텍스처를 부여하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아마 그래도 프로그레시브 록의 컨벤션을 가장 잘 따라가는 것은 - 모달 하모니의 면에서 - 앨범의 초반일 것이다. 사실 4분이 넘어가지만 앨범 내에서는 인트로와 같을 'Pane Astrale' 은 피아노와 첼로, 비올라의 인터플레이에 Ana의 보컬이 얹히는 형태를 취하는데,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이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앨범 최고의 대곡인 21분이 넘어가는 'Saturno' 는 훨씬 괴팍하다. 앨범에서 가장 'zeuhl' 스러운 한 곡인 이 곡은 그 길이만큼이나 다양한 테마들을 짚고 넘어간다. 물론 Magma의 스타일과는 달리, 훨씬 심포닉한 편이다. 사실 Magma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단선율로 진행되는 챈트 부분이고, 곡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역동적인 리듬 파트에 꽤나 복잡하게 진행되는 기타와 키보드이다. 'Il Viaggio del Elric' 은 이 밴드를 zeuhl이라고 하기 가장 고민하게 하는 곡인데, 이는 이 곡은 가장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의 컨벤션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얘기하면 앨범에서는 그리 재미있게 들리는 편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앨범의 그 이후의 부분은 테마를 다양하게 엮어 나간다는 점 외에는 힘은 떨어진다. 'Il Viaggio del Tempo Centrale' 부터 두드러지는 것은 재즈록 퓨전과 - 간헐적인 - 스페이스록의 색채이다. 물론 심포닉함이 역시 두드러지지만, 스타일이 전환되는 연결점이 거의 임프로바이징이라는 점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리 자연스럽지는 않다. 프레이징에서 Magma의 색채가 그나마 느껴지기는 하지만 - 사실 이건 엄청난 미덕이긴 하다 - 앞의 패시지들과는 맞지 않는다. 기타리스트가 밴드의 정식 멤버가 아닌데, 그 점이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Meccanica Superiore' 의 헤비 사운드는 곡 자체로는 인상적이지만 - 리프가 거의 Brainticket 레이블의 둠 밴드들 수준 - 앨범의 피날레로는 이질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zeuhl 앨범이 주는 낯선 느낌 - 이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Vander가 Magma에서 구축했던 세계관 자체가 독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 과 이 앨범에서 받게 되는 것은 판이하다. 그런 면에서는 밴드는 사실 지나치게 많은 테마들을 가져왔다 - 특히 심포닉 프로그레시브가 그랬다. Ana Torres Fraile의 보컬이나 키보드의 연주는 그에 충분할 정도로 클래시컬하다. 이 앨범을 zeuhl 앨범이라 하기에 껄끄러운 것은 그 점 때문이다. 물론 이 앨범이 심포닉 프로그레시브로도 2000년 이후에 나온 앨범들 중에서는 꽤나 인상적인 편이다. 무엇보다 밴드는 그 테마 사이사이에 'ritual' 한 느낌 - 동양적인 분위기의 연주가 삽입되면서 그런지도 - 을 섞어 넣는데, 'totem orchestra' 라는 밴드 이름에는 참 충실한 셈이다. 아마 내가 가사를 읽을 수 있었다면, 더 재미있는 앨범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post script :
그러니 나도 이 앨범을 꽤 좋게 들은 편이지만, 둘러보니 이 앨범에 대한 촌평들은 이 포스팅보다 더 좋은 편인 것 같다. 나름 검증되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