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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Literature of Obscure Minds

1Q84

[문학동네, 2009]

무라카미 하루키 저, 양윤옥 역

먼저 나름의 정체성부터 밝히는 것이 낫겠다. 사실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는다. 뭐, 이 책도 우연히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면(그리고 요새 같이 한가하지 않았다면) 읽게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도 크게 틀리지는 않다. 사실 "노르웨이의 숲" 이나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도 읽어 보긴 했지만, 생각보다 현학적 - 문체가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많은 기호들이 숨어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 이라고 느껴지면서도, 생각보다 되게 잘 읽힌다는 것 외에는 딱히 눈에 들어오는 점이 없다고 느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 대한 열광은 내가 생각하는 것 훨씬 이상인 것 같다. 내가 개인적으로 준비하던 '시험'. 보통 시험 한 달전부터는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아침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생활을 반복하게 되고, 당연히 시험 기간에는 더욱 다른 생각을 할 새가 없는데, 시험 기간 중에 그 와중에서 대범하게 이 책을 읽고 있는 여성분이 계셨다. 물론 시험도 보시고 가셨다. 어떤 의미에서는 올해 본 최고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 때문일까? 하루키는 책에서 가상의 이야기를 하지만, 묘하게 현실과 연결시키는 버릇이 있다고 생각한다. (덴고와 아오마메의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을 교차시키면서 진행하는 것도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한다 - 좀 꼬여 있는 패러렐 월드?)말하자면, 현실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작품에 끌어들이면서, 막상 작품에서 그 사실은 그리 큰 의미가 없는 장치에 불과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옴진리교 사건일 것이다. 사실 그러한 부분 때문에 - 그리고 간혹 하루키가 하는 인터뷰들 덕분에 - 책에서의 내용과는 달리 하루키 본인은 사회 참여적이라는 평가도 없지 않았던 듯하나, 옴진리교가 이 책에서 맥거핀에 다름아니라는 점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 보면 이 책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매우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하는 나비효과들일 뿐이다. 10살때 한 소녀가 소년의 손을 잡았을 때 소년이 딱히 반응을 하지 못했다는 그 사실이 갑자기 세상의 중심이 된다. 1984년도 아니고 왜 제목을 "1Q84" 라고 지었을지가 좀 궁금했었는데, 현실과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면서 사실은 그 역사성을 벗어나는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저 제목 자체는 현명하게 지어졌다고 생각한다.

(뭐 그리고 이렇게 볼멘소리를 해 보자. 아, 나도 손 잡은 애들은 있었는데 왜 솔로인가.... 물론 농담이다)

그리고 마지막, 덴고는 중요한 것은 '자신' 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오마메를 찾기로 하고, 이런 식의 결말이 얼마나 애매한지는 과연 이 작품의 속편이 나올 것인가? 이야기로 충분히 알려져 있다고 생각한다.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하루키 본인도 속편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루키는 사실 (이 책과는 무관하게)개인 쪽에서 개인을 억압하는 시스템에 대항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앞에서 사회 참여적 인상을 주기도 했다고 했었으니 그 자체는 이상할 바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어떤 개인의 해방 - 이런 표현은 사실 이 책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 등의 사건은 1Q84년, 세계의 끝에 섰을 때에만이 가능하다. 자기가 속한 시스템을 의심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맞서 싸워야 할 정체도 불분명한 '리틀 피플' 은 대체 누구인가? 하루키에 대한 많은 감상글이, 이를테면 '사람을 사람으로 보게 만들었다' 는 식이었다. 하지만 하루키가 보게 해 주는 '사람' 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파편화된 개인으로 보인다. 물론 풍요로운 내면이 있을 수는 있지만 결국은 파편적이다. 나는 3권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결국은 깔끔하지 못한 뒷맛은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post script :
하루키가 거물은 거물인 듯하다. "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 라는 비평서까지 나오던데, 내용이야 읽어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고, 이런 식의 '주석서' 는 제임스 조이스나 마르셀 프루스트 같은 양반들에게만 나오는 줄 알았던 나로서는 놀라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