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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Literature of Obscure Minds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마티, 2008]

에드워드 W. 사이드 저, 장호연 역

물론 사이드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오리엔탈리즘" 이겠지만, 사이드는 음악에 대해서도 기복 없는 관심을 보여준 학자였고, 사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목넘김이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이론적 '겸손함' 을 가졌던 학자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사실 사이드의 연구서이기도 하지만, 그의 편력 덕분에 가능할, 이런 저런 예술 작품들에 대한 사이드의 비평서의 성격도 꽤나 강한 편이다. 하긴 이 책에서 다루는 소재 자체가 그래야 쓸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책 전반을 꿰뚫는 Adorno에 대한 서론부터가 그러한 면모를 말해 준다. Adorno가 음악 비평으로도 이름 높은 이였음을 생각해 보자. (물론 그는 작곡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쨌든 이 책은 사이드의 미완으로 남은 유고이니, 그 나름의 가치도 있을 것이다.

책의 주제는 어찌 보면 간단하다.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Adorno의 말을 재인용하자면, '예술의 역사에서 후기 작품들은 곧 파국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이를 기초로 해서, 여러 방식으로 그 내용을 풀어 나가는 구성인 셈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년성' 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문제적 주제가 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몇몇 예술가들의 말년만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즉, 저 개념 자체에 어느 정도 보편성이 개입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사이드가 취한 서술 방식은 현명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말년성 개념에 보편성을 집어넣는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인데, 어떤 조화로운 방식으로서의 말년성 개념을 아마 사이드는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건 나의 짧은 독해로는 아직 좀 불명확하다. 사이드는 말년성의 두 가지 유형을 제시하고, 두 번째 유형에 대해 흥미를 갖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첫 번째 유형의 말년성을 과연 사이드가 말년성으로서 인정할지는 잘 모르겠다) 요절한 예술가의 말년성 논의가 그 증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말년성에 부조화, 모순, 시대착오성 - 이게 가장 중요한 속성이겠지만 - 등의 속성이 귀속될 수 있는 것은 논의가 그렇게 이어지기 때문인 것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독해는 그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일단 슈트라우스에 대한 논의를 그리 많이 보지 못했던(당장 Adorno도, 슈트라우스의 경우는 열심히 까기만 했던 것 같다) 나로서는 흥미롭다. 글렌 굴드에 대한 장들도 그렇다. 일단 드레이퍼스가 예기했던, '퀸틸리아누스와 키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사학 전통' 이 바흐 같은 이들 외에 글렌 굴드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비르투오시티에 대한 지나친 격상이라는 느낌도 조금 있다만, 물론 아직 이런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신기하게도 느껴진다. 어쨌든 굴드의 비르투오시티에는 꾸준한 긴장감이 존재한다는 것에는 확실한 공감대는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이드의 유고여서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모르나, 장 주네(Jean Genet)에 대한 부분은 또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인이었던 사이드는 말년성에 대한 책을 쓰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도 말년에 있음을 어쩌면 의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주네에 대한 부분에서 가장 핵심적인 용어가 될 '정체성' 은 "오리엔탈리즘" 의 저자인 사이드의 지적 여정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국주의는 정체성의 수출품이라고 적고 있는 사이드의 말이 바로 주네를 얘기하면서 나온다는 것은 사실 사이드가 자신의 생을 주네를 통해서 투영해 보이고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기존의 '이디엄' 들에서 참 많이 비껴나가 있었고, 어쩌면 그게 그들의 예술가로서의 숙명이자 '말년성' 의 진정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 참 모호한 감상인데, 내가 '인벤션' 에 별 소질 없는 범인이라서 그렇다고 해 두자. '시대착오' 라는 용어가 부정적인 인상으로만 다가온다면, 그렇지 않은 생각이 있을 수 있음을 떠올려 보도록 하자. 조로(早老)는 말년성과 무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