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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ious Trauma/Personnel

방담 20101231

1.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지금까지 20대의 막판 며칠 동안을, 망년회 한 번 나간 거 제외하면 집에서 열심히 음악 틀어놓고 책만 읽었다. 언제 샀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Artaud의 잔혹연극론까지 사서 쟁여놓는 놈이었다니 왜 내 20대의 절반 이상이 솔로였는지는 지금 봐도 이해가 된다. 참... Khachadourian의 "The Concept of Art" 는 바로 그 작곡가 '하차투리안' 인지 알고 샀던 책인데, 알고 보니 그냥 보통 철학교수여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Amazon에서 하드커버본이 1.09$에 팔리는 거 보니 내가 왜 샀을지가 대략 짐작이 간다)

책은 기본적으로 공연예술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하고 있는지라 많은 것을 생각하기는 당장은 어렵지만, 적어도 오늘날의 음악에 있어서 퍼포먼스를 통해 구현되는 음악(내지는 음향)과 일상의 소리와의 관계만큼이나, 무용 등의 공연예술에서 일상의 몸짓과 유사한 것을 찾기는 어렵다는 것은 분명한 듯싶다. 그런 유사성이 발견되는 경우를 무용에서 찾는다면 고도로 양식화된 고전무용이 아니라면, 거의 반추상적인 현대무용의 경우일진대, 소위 아방가르드의 시대에 매우 해체적이고 혁신적(이라고 얘기되는)인 양식이 나타나기도 하면서도 거의 신고전주의에 가까운 양식이 나오게 되는 모습은 분야에 상관없이 매우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보면 또 이렇게 자기계발에 충실한 사람이다. 계발하는 것마다 별로 돈이 안 된다는 문제가 있기는 한데...


2. 올해에는 그 동안 - 몇 년 끌어 오던 - 인생의 밥벌이 수단 마련하기 프로젝트가 그래도 결과를 내는 식으로 끝이 났다. 내가 또 내 전공 분야의 전문가는 고사하고 신종플루용 슈퍼박테리아 정도라도 되었으면 하는 미미한 존재인지라(지금으로서는 현미경으로 보면 보이긴 하는지 의심스러운 그런 존재일 거라는 생각이) 사실 답답함이 없지는 않은데(뭐 그리고 다른 걸 같이 해 보자는 촉도 여기저기서 조금 들어오고) 어쨌든 내 20대 초반의 예상보다는 좀 늦어지기는 했다만 결과가 나오긴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30대로 접어들기 전에 일단 마무리를 봤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30대도 젊은 나이기는 하지만 20대는 더 젊다. 중간중간 얘기가 나왔던 인생의 다른 기로는 한동안은 생각해 보기 어렵겠지만 다시 생각해 볼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3. 올해는 예년보다 적은 수의 음반을 산 거 같은데, 뭐 그거야 6월이 지나기까지 이런 저런 일들을 신경쓰다 보니 그렇게 된 듯하지만, 그래도 10월 말엽부터의 이 미친 듯한 페이스는 좋기도 하면서도 분명 마음 한 구석(이라기보다는 통장 잔고)에 부담을 남긴다. 약 두 달 남짓한 기간에 산 앨범이 세 자리 수를 너끈히 채우니(물론 중고의 힘이 크다만) 잠깐 반성 좀 하고...(이 쯤 되면 페이스가 아니라 그냥 내 정신이 미친 거다)그렇다고 새해에는 소비 계획을 확실히 짜서 생활하고, 좀 '작작 사 제낄 것' 이라고 약속은... 매년 하긴 했는데 딱히 지킨 적도 없는 것 같으니 내후년의 계획으로 미뤄볼까 생각 중이다.

4. 새해가 되기 바로 전 날... 이니, 가장 유명한 곡은 뭐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꼭 새해가 되면 U2의 'New Year's Day' 얘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 곡이 기억나는 이유를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나, 그 가사를 생각하면 새해에 저 노래를 듣고 시작하라는 건 저주가 아닌가 싶어 다른 곡을 생각해 본다...만, 이 곡들도 그리 밝지만은 않으니, 그 점은 넘어가도록 하자.



Pain of Salvation - New Year's Eve

이들은 알려져 있다시피 어린 시절부터 비범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더 드라이브감 강한 데뷔작을 더 좋아했지만 어느 앨범이나 PoS가 아니면 만들기 힘든 분위기가 있어서 좋다. 북구의 복지를 받아먹고 살아 온 메틀 밴드인 덕에 이런 사운드가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살기가 다른 나라의 밴드들보다 좀 편했을지는 모르나 이 곡은 그리 밝진 않다.



이현석 프로젝트 - A New Year's Eve

그리고 지금 기억나는 건데, 보통은 서태지 닮은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는 이현석의 3집에도 이런 노래가 있었다. 사실 이현석의 앨범들은 나왔을 당시에 들을 때는 분명한 아쉬움이 있었는데(어린 시절의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막귀로 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만) 지금은 그래도 좋게 들린다. 사실 국내에 이런 수준의 shredding을 보여주는 연주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The Walkmen - New Year's Eve

진짜 오랫만에 들어본다. 사실 네오 거라지 밴드들과 함께 같이 얘기되기도 하는 밴드인데 Strokes나 White Stripes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디만 이들의 경우는 그래도 좋게 들은 편이었다. 내 생각에 - 이들이 진짜 신인 밴드가 아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들은 동시대에 갑자기 명성을 얻은 비슷한 밴드들보다 확실히 더욱 노련했고, 적어도 요새 농담삼아 얘기하는 '세련된 차가운 도시남자' 식의 사운드가 절대 아니어서 더욱 좋다고 생각한다.

5. 이 풍진 세상에 누구나 새해에 복을 받지는 못하겠지만(그런 걸 용납할 세상이 못 된다. 복 많이 받으라고 하고 뒤돌아서 칼 꽂는 사람들, 아마도 나이가 차면 한두 명씩은 생각나게 되니, 확실할 거라 생각한다.), 혹시나 이 포스팅을 읽게 되는 분은 좋은 새해 되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