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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Literature of Obscure Minds

And the Show Went On : Cultural Life in Nazi-Occupied Paris

[Knopf Publishing Group, 2010]

Written by Alan Riding

나치 시대의 음악에 대해서는 그래도 꽤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나,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그 많은 부분은 사실 보통 '망명 음악가' 라 불리는(이를테면 Bartok이나 Eisler와 같은. 망명 음악가는 의외로 넓은 범위로 사용되는 범주이다) 이들이나, 나치 시대의 독일 음악가들에 대한 것일 것이다. Richard Strauss 같은 음악가들은 물론이고, 히틀러나 괴벨스 등 나치 엘리트들의 음악 청취는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의 차원이 아니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인 것 같다. 브람스보다 브루크너를 선호했고, 바그너에 대해서는 열성적이었던 히틀러의 모습은, 오늘날 그 시절의 음악가들의 작품의 해석에 있어서 때로는 기묘하게 변주되어 반영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책이 주목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후자에 가까울 것이지만, 비시 프랑스의 음악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이니 분명한 차이는 있을 것이다.

"쇼는 계속된다" 는 제목의 이 책은 프랑스의 문화적 모습이 비시 프랑스 시기에 큰 변화를 겪지는 않았음을 시사한다. 분명히 프랑스는 점령 이전에도 문화적 강국이었고, 그 점은 독일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피카소는 파리에서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고, 까뮈는 "이방인" 같은 글을 써 냈고, 로베르 브레송은 (뭐 내가 그의 영화를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이미 이 시기에 영화사에 남는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그 풍요로웠던 문화적 환경 덕분인지, 파리 출신의 저널리스트인 Alan이 쓰는 이 책은 그 당시의 예술가들 및 그들의 작품의 이름들로 가득하다. 물론 이 책은 그리 두껍지 않다.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자세하지 않고, 사실 이 책의 제목 자체로 볼 때 그런 건 저자의 관심사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이런 저런 작품들이, 프랑스에 살아가던 모든 이들에게 분명히 충격적인 경험이었을, 독일의 점령이라는 현상에 분명히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독일에서의 양상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도 정치적 양상이 예술에 작용되게 된다. (마치 푸르트뱅글러와 토스카니니가 갈라지는 것처럼)비시 정부를 지지하는 예술가들과, 레지스탕스에 좀 더 친화적인 이들(뒤라스처럼 아예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정치적 광기라는 면에서 세상의 중심이었던 독일에서 '비껴난' 탓인지, 프랑스의 경우 그 사이가 그렇게 대립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활동을 지배하였던 것은 예술가로서의 면모가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 시민으로서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이 책은 지적한다. 당대의 가장 악명 높은 파시스트 지식인이었던 Pierre Drieu La Rochelle이 반파시스트의 중심에 있던 Andre Malraux와 친구였다는 것은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다. 별로 맞지는 않는 비유일 듯하지만, 우리로 치면 춘원 이광수와 만해 한용운이 친구로서 함께 영감을 나누기도 했다는 정도의 사실이 적혀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프랑스의 점령기의 문화사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파시즘이 어느 특정 국가, 민족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며, 적어도 민중들의 입장에서 파시즘에 대한 선택의 문제는 어떠한 도덕적/윤리적 당위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반유대주의적 현실이나 (역시 독일인에 비해서는 2등 시민이었을)프랑스인 본인들에 대한 차별적 현실은 분명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그것은 또한 그들이 살아가면서 마주친 '적응해야 할' 현실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문화는 독일적으로 변화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더욱 유지할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 보면 마치 레지스탕스로 가득했을 법한 비시 프랑스 시기에 대한 신화를 벗겨낸다는 느낌을 주는데, 아렌트가 아이히만에 대해 했던 이야기들을 새롭게 풀어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 전부터 계속됐던 쇼는 전쟁이 발발하고, 심지어 프랑스가 점령된 뒤에도 여전히 계속되었다. 그리고 책의 막바지,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단죄의 모습들은 아무래도 우리의 현실에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Alan Riding이 꽤 뛰어난 저널리스트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정도로 책은 쉬이 넘어가는 편이니,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