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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Horse Latitudes - Gathering

[Aurora Borealis, 2011]

개인적으로 둠 메틀이나 슬럿지 류의 음악에서는 상대적으로 사운드의 텍스처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많은 경우에는 그리 빠르지 않은 템포 덕분에, 사실 리듬 파트에서 이런 밴드들이 돋보이기는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 장르는 리듬 파트의 음과 음 사이에 상당히 많은 여백을 요구하고, 그 여백을 다른 파트들의 선 굵은 사운드로 메꾸기를 요구한다는 느낌인데, 그런 면에서는 서로 무관한 장르는 아니지만, 소위 둠-데스와 둠 메틀은 용어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꽤 다른 방향의 접근 방식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 밴드는 사실 아주 독특한 경우에 속한다. 베이시스트가 두 명이라는 것은 - 거기다 기타는 아예 없다 - 아무래도 일반적인 둠 메틀의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 물론 밴드명부터가 이들이 평범한 밴드일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도록 한다. 밴드명은 Doors의 "Strange Days" 의 다섯 번째 곡의 이름이다. 사실 Aesthetic Death 같은 곳에서 (Esoteric은 물론이고)사이키델릭함을 미덕으로 삼았던 둠 메틀 밴드를 본 적은 있었으니 그런 식의 예상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예상은 그리고 꽤 타당한 구석이 있다. 베이시스트가 두 명이라는 게 좀 괴이한 방식이라는 것은 베이스가 리듬 파트라는 전제에서 얘기한 것인데, 베이스도 베이스 '기타' 이니, 베이스가 텍스처를 맡는다면 굳이 기타의 역할을 강조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Black Sabbath적인 리프가 튠 다운된 베이스로 연주되면서 곡들의 골간을 이루는데, 사실 Electric Wizard를 생각나게 할 법한 사운드이나, 밴드는 베이스가 골간이 되는 사운드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서였는지 상당히 많은 음악들을 또한 앨범에 가져온다. Electric Wizard가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물론이겠지만, Khanate나 Sunn O))) 같은 이들을 연상케 하는데, 기본적으로 베이스 연주인 덕에 묵직한 사운드는 동시에 사이키델릭 튠과 드론 사운드 등을 통해 더 힘을 얻는다. 그렇다고 스토너 둠이라고 이들을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정통적인 둠 메틀에 가까운 구조도 그렇고, 아무래도 전형적인 둠 메틀 보컬에 가까운 보컬이 그런 느낌을 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핀란드 밴드여서인지도 모르나, 그의 보컬은 Reverend Bizzare 같은 밴드를 생각나게 하는 편이다.

말하자면 이들의 둠 메틀은 리듬이라는 부분을 더 거세하고 텍스처에 더 천착한 식이라고 생각되는데, 사실 'Son of the Moon' 같은 곡에서 살짝 등장하기도 하는 블래스트비트(물론 느리게) 같은 부분을 생각하면 이게 맞는 말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은 리듬을 오로지 드럼만이 담당하고, 베이스 및 그 외 드론 사운드 등으로 여백을 메꿔 나가는 방식이다 보니 단조로운 구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밴드가 표방하는 앨범의 컨셉트 자체도 사실 분명하게 포착 가능한 내용은 아니니, 명징한 구성을 가져가기보다는 순전히 텍스처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게 옳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기는 하다. 이를테면 'Seas of Saturn' 같은 곡에 대해, 리더격인 Harri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이분법의 신화 뒤에 숨겨진 의미,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개념들의 기원 뒤에 숨겨진 비열함이나, 켜켜이 쌓여진 의미들의 겹들을 벗겨내는... 식의 컨셉을 가져갔다고 하는데, 이걸 명징한 음으로 표현한다는 건 그리 좋은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이들의 음악은 꽤 특이한 편성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골간에 있어서는 전형적인 둠 메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드라마틱 등을 배제한, 둠 메틀의 '전형' 을 극단으로 몰고 나간 스타일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라는 게 내 생각인데, 드론 사운드나 간혹 등장하는 기이한 사이키델리아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런 부분이 분명 귀에 걸리겠지만, 드라마틱을 강조하는 둠 사운드보다 둔중함을 강조한 사운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음악은 좀 더 정석에 가까울 것이다. 사실, 기타 대신에 베이스에 그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 이 정도로 묵직한 사운드를 가져올 줄은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음악은 그 자체로도 분명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먼저 등장한 프론티어들의 발자국을 따라가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아주 흥미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생각이, 아마 맞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