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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Limbonic Art - Phantasmagoria

[Candlelight, 2010]

Limbonic Art가 주목받는 시절이야 이미 지나가 버렸지만(사실, 90년대를 호령하던 노르웨이 밴드들을 지금까지 주목하는 경우란 생각해 보면 정말 별로 없다) 그 간격이 길어졌을 뿐 밴드는 나름 꾸준한 활동을 해 왔다. 물론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밴드는 공식적으로는 해산을 했었지만, 그 때는 이미 밴드가 주목받던 시기는 확실히 지나간 이후였으니 논외로 한다면 말이다. 그렇더라도, 이들이 시대적 조류를 인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The Ultimate Death Worship" 이후 5년만의 복귀작이었던 "Legacy of Evil" 은 확실히 이전과는 틀린 모습이었다. 키보드 과잉이라는 볼멘소리를 듣기도 했던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이는 "Ad Noctum..." 같은 앨범도 동일했다) 확실히 좀 더 무거운 사운드였기 때문이다. "Epitome of Illusions" 를 얘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앨범과도 분명히 같지 않았다. 그리고 밴드에는 이후 더욱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Morpheus와 Daemon의 밴드였던 Limbonic Art는 이제 Daemon의 원맨 프로젝트가 되었다.

밴드의 경향이었던 것도 같지만, Morpheus가 없는 Limbonic Art의 음악은 이전보다 더욱 직선적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향 때문에 Morpheus가 나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CD 트레이에 적혀 있는 'The Daemonic Era' 라는 문구에서 느껴지는 자의식도 명확하다. 심포닉한 면도 확실히 예전보다는 약해졌는데(물론 그럼에도 존재감은 명확하다) 적어도 밴드의 음악은 앨범 전체로서 어떠한 서사를 보여주는 면모와는 확실히 멀어졌다. 좋게 얘기하면 블랙메틀 특유의 질주감이라면 더욱 강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 71분 가량의 블랙메틀 앨범은 그럼에도 사실 별로 흥미롭지 않다. 이 앨범이 사실 많은 부분에서 Emperor를 생각나게 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그 두텁게 녹음된 기타 리프만 봐도 말이다) 이런 면을 방증하는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Emperor는 대단한 밴드였지만, Limbonic Art는 확실히 Emperor와 차이가 있는 밴드였다. 덕분에 밴드가 보여주던 굴곡 큰 전개는 꽤 무뎌진 편이다. 'Crypt of Bereavement' 같은 곡이 그나마 완급 조절을 보여주지만 - 아무래도 그건 스래쉬한 리프의 덕이 클 것이다 - 뒤에 이어지는 'Portal to the Unknown' 이나 'Apocalyptic Manifestation' 의 전개는 확실히 단조로운 편이다. 이런 피로감은 앨범 뒤로 갈수록 더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치면, 바그너적이라고 말하던 레이블 측의 광고 문구는 - 사운드나 내용이나 - 공치사도 이런 공치사가 별로 없는 셈이다.

그래도 앨범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 나는 드럼머신 소리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 드럼머신이다. 단조로운 서사에서 황량한 이미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밴드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앨범이 그런 면모는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모습은 이미 Aborym 같은 이들이 먼저 시도했고, 어쨌든 이들의 사운드가 그것과 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다. 밴드가 기름진 음질로 블랙메틀을 연주하기 시작한 이래 예전의 공간감을 많이 잃어버린 것은 사실일 것인데, 그렇다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에 대한 나름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물론 Daemon의 선택일 것이다) 밴드는 데뷔 때부터 드럼머신을 사용해 왔으니 그에 대한 이질감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예전의 작품들을 주도했던 특유의 화려한 키보드/오케스트레이션은 이번 앨범에서는 기타 리프를 하모나이즈하는 수준으로 뒤로 물러서 있는데, 밴드 특유의 'cheesy' 함을 즐기는 이들은 이게 별로 맘에 들지는 않겠지만, Daemon이 좀 더 직선적이고 회색빛의 음악을 원한 것이라면 틀린 선택은 아닐 것이다.

밴드는 처음의 키보드 위주의 음악에서 "Ad Noctum..." 부터는 좀 더 빠르게 템포를 가져감으로써 다이나믹을 확보했고, 이제는 그 다음의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꽤 자연스럽게 넘어갔던 이전에 비해서 이번에는 그 회색빛 색채 덕에 꽤 껄끄럽게 느껴지는 편이다(아무래도 이들은 그런 색채를 보이기엔 너무 길고 복잡한 음악을 한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Daemon이 장기적으로는 Blut Aus Nord같은 음악을 의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인데(물론 내 생각일 뿐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 앨범은, 물론 빛나는 부분도 가지고 있는 앨범이지만 그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다. 이 유명한 밴드의 간만의 복귀작이 꽤 엇갈리는 평을 듣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런 탓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정도로 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