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senal of the Left/Translations

Punk Rock and Anti-Racism - or, Death in June Not Mysterious (3)

Punk Rock and Anti-Racism - or, Death in June Not Mysterious (1)
Punk Rock and Anti-Racism - or, Death in June Not Mysterious (2)
Punk Rock and Anti-Racism - or, Death in June Not Mysterious (4)

앞의 글에 이어서.



"세계의 운명" 에 대한 Pearce의 무의미한 허세 뒤에 깔려 있는 것은 명백해서, 별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 국가사회주의에 배반의 트로츠키주의적 신화가 씌워졌고, 히틀러는 스탈린이, 에른스트 룀은 트로츠키가 되었다. 마치 "좌익적" 파시즘으로 그가 완전히 전향했음을 세상에 알리려는 양, Pearce는 다른 곳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 "80년대 초에, Tony와 나는 극좌 정치에 탐닉해 있었고 그에 따라 역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미래를 바라보기 위한 정치적 시각을 모색하면서 우리는 SA의 엘리트주의와 긴밀하게 관련된 국가사회주의 볼셰비즘(National Bolshevism)을 발견했다. Gregor Strasser와 Ernst Rohn 같은, 뒤에 '제 2의 혁명가' 들이라 불리게 될 이들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각주:1]


그러나, 그러한 모순들을 굳게 믿는 자로서, Pearce는 나치 군복의 착용에 대한 그의 열광의 문제를 통해 수면으로 떠오른, 그의 파시즘에 대한 관심에 대한 다른 설명들을 제시한다. "문제는 드러났지만 음악계는 그것을 삐딱하게만 바라보았다. 페티시적인 측면, 유니폼 자체의 매력, 그 옷이라는 사물이 갖는 특별한 성적인 힘이 존재한다."[각주:2] 이건 꽤 진부한 전략이다. Pearce는 나치 군복에 대한 그의 선호를, 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표현이라는 근거로 방어한다. 만일 Pearce가 집에서만 파시스트 옷을 입을 뿐이라면, 그에 대해 아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대중 앞에서 이런 "페티시" 를 공개함으로써 받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난을 들었을 것이다. 게이가 되는 것이 파시스트 정복자들의 복장을 선호하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상품화된 성적 페티시즘과, 동성애 해방 사이의 차이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소위 핑크 파운드(pink pound, 역주 : 동성애자의 구매력, 특히 동성애 경제에서의 구매력을 의미)와 성의 상품화는 자본주의를 위협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뒷받참히나, 반면 상품 경제에서의 인간의 해방을 위한 투쟁 - 필연적으로 동성애 해방을 포함할 - 은 억압의 성적 페티시화와, 그 주인일 '이윤' 에 타격을 입힌다.

Pearce는 계속해서 미학적 파시즘이 포르노그라피처럼 판매될 수 있다는 기초에서 DIJ의 마케팅을 전개해 왔다. 그 방식은 다음의 Pearce의 말에서도 보듯 : "우리의 주제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이지만, 정치보다는 좀 더 모호한 것이다. 이게 그것이다, 저것이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 없다. Crisis가 했던 방식처럼 말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각주:3] 더 정확히는, DIJ는 그 "그룹" 이 정치적으로 수상해 보였기 때문에 팔려 나갔다 - 그리고 이것이 Pearce의 특기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세일즈맨십의 강조는 필연적이다(그는 그의 작품들 외에 다른 "아티스트" 들의 작품들을 발매하는 레이블을 운영하는 비즈니스맨이기도 하다). 서로 모순되는 메시지들이 계속 돌았고, 팬들은 DIJ가 파시스트인지의 문제와 씨름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DIJ의 시장의 호응을 증대시키기 위한 계획은 미학과 정치의 계속적인 이탈을 수반했다. Pearce는 나치즘과 관련된 심볼들을 사용하였지만, 정치적 교의로서 우익적 아나키즘을 옹호하기도 했고, 종종 오컬트적인, 또는 종교적인 용어로서 그 나름대로 자유 시장 경제를 설명하기도 했다. "나는 내 스스로의 종교이자, 믿음이다. 스스로를 믿는 것이 궁극적인 컬트이다. 진정 유효한 마술이라면 그것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것이 그게 가장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각주:4] 그러나 그의 작업물에 내재하는 모순의 원리들을 고려하여, Pearce는 또한 다음과 같이 역설하기도 한다 : "작품 자체는 항상 개인의 자아나 퍼스낼리티의 고양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DIJ의 작품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무미건조한 사진들이 아니라 그와 같은 심볼들이다."[각주:5] 좀 다른 방향에서 얘기한다면, "나의 행동들은 본능적인 것이다. 때로 나는 내가 내 운명의 꼭두각시같다고 느낀다. 그러나 내가 갈 길은 계속해서 확인되어 왔다. 그래서... 나는 바로 내가 하려고 생각한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각주:6] 다시 말해서, 상품에 대한 물신 숭배의 박자에 따라 연주하고, 상품들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Pearce의,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이전시키는 방식은 빠르게 진부한 것이 되어 갔고, 특히 그것이 그런 심볼들의 얄팍한 표현들을 전제한 것이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이런 반동적 이들은 진지하게 고딕/인더스트리얼 씬(청년 서브컬쳐)의 청중들을 매료시켜 갔다. Pearce의 앨범 홍보의 한 예시를, Crass의 전 멤버였던 Robert Forbes는 그의 저서인 "Misery and Purity" 에서 쓰고 있다. 이 책은 Death in June의 역사와 그 밴드에 대한 저자 개인의 해석을 담고 있는 것이었고, Brown Book 앨범의 타이틀 곡이 "설치되고 튀어나갈 덫" 과 같은 것으로 다루고 있었다.[각주:7] 타이틀은 "2차대전 이전에 발표된, 나치 독일의 상황에 다룬 책에서 따 온 것이었다. 나치의 전쟁 송가였던 Horst Wessel의 보컬은 여러 목소리로, 독일어로 녹음되었고, 이는 'Achuting(warning)' 이라는 짧은 외침을 포함하고 있었다. Doug Pearc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이에 대해 음악계나 다른 이들로부터 어떤 비난을 봤던 상관 없는 것이다. 괜찮다,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 앨범에서 나는 모순들에 부딪혔다... 갈색 셔츠는 문제가 많고, 완전히 반-SA적이며 좀 더 SS적이었던 것들에 대한 불합리한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얘기되고 있었다. 그는 SS를, SA가 악명 높았던 것처럼, 그와 같은 동성애자들의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이는 유태인의 피가 섞인 할머니가, 삶은 둥둥 떠 다니는 얼음에서, 다른 얼음으로 뛰어 옮겨 가는 것이고, 점프할 때마다 얼음은 작아지고, 그 끝은 불가피한 것" 이라는 말과 병치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확실하고 잘 알려진 나치의 심볼들을 상대적으로 모호한 반나치적 요소와 병치시켜, Pearce는 그가 덫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Forbes는 그의 말을 인용한다 : "몇몇 이들은 밴드의 이름, 이미지, 말들을 잘못된 해석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피상적 수준에서 바라본다. 문제는 그런 일들이 항상 일어난다는 것이다 - 셀 수 없도록 많은 멍청한 사람들 말이다."[각주:8] 다른 곳에서, Pearce는 다음과 같이 파시스트적 표상의 사용을 옹호한다 : "확실히 사람들은 어떤 것을 사용하는지의 문제를 단지 피상적으로만 바라보는 함정에 빠진다. 그건 확실히 문제다."[각주:9] 이는 두 부류들을 구분하게 되는데, 하나는 Pearce가 사용하고 있는 심볼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이들과, 그와 반대되는 이들이다. Pearce는 그가 두 쪽에 모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DIJ의 자극적인 의견에 대한, 그는 수상한 인물이라는 식의 히스테릭한 공격은 결국 그의 상품들을 파시즘을 포르노그라피처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이르게 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Pearce는 비즈니스맨이고, 그의 팬들이 White Aryan Resistance나 Green Anarchist와 같은 극우 집단에 가담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의 관심은 돈을 버는 것이다 : " 너무 많은 사람들이 처신에 있어 다른 사람들에 의존한다 - 그들의 타인들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인다. 그게 내가 DIJ에서 혼자 일하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내가 다른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는 다른 '리더들' 과 함께 일할 것이다. 무능한 이들이 낄 자리는 없다. 누구나 스스로를 대변하여야 한다. 변명할 시간 같은 건 없다."[각주:10]


  1. Forbes ibid. 15. [본문으로]
  2. Forbes ibid. 23. [본문으로]
  3. Forbes ibid. 17. [본문으로]
  4. Forbes ibid. 21. [본문으로]
  5. Forbes ibid. 28. [본문으로]
  6. Forbes ibid. 130-131. [본문으로]
  7. Forbes ibid. 100-101. [본문으로]
  8. Forbes ibid. 23. [본문으로]
  9. Forbes ibid. 36. 확실히 그들이 오해되어 왔다고 생각하는 그들에 대한 관심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도록 한 어떤 문화적 산물에 대한 호응의 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나의 소설들 중 일부들(Pure Mania, Defiant Rose, Red London과 같은)의 주제들은 종종 나의 의도와는 달리 오독된다 - 그리하여 나는 많은 인터뷰들과 에시이들에서 이런 것을 바로잡는 게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다(예를 들어, 나의 책인 Confusion Incorporated, Codex, Hove 1999 중, 'Anarchism is Stupid' 참고). 나는 아나키스트로 오해받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아무래도 아나키스트일 Pearce는 그가 파시스트로 받아들여지는 데 그리 구애받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아나키스트라는 딱지와 파시스트라는 딱지가 반드시 양립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그의 우익적 아나키즘이 많은 부분 파시스트 정치학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고 이러한 혼란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10. Forbes ibid. 7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