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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Vulture Industries - The Malefactor's Bloody Register

[Dark Essence, 2010]

Arcturus는 그러고 보면 꽤나 인상적인 밴드임이 분명한데, 일단 쟁쟁한 멤버들이 만들어내는 '웰메이드' 음악인 점은 물론이고, 사실 심포닉 블랙메틀-프로그레시브 메틀(확실히 "Sideways Symphonies" 는 프로그레시브 메틀이었다)이라고 분류되지만, 그나마 "Aspera Hiems Symfonia" 정도를 제외하면 장르에 컨벤션에 들어맞는 앨범은 단 한 장도 없었다고 생각된다. "La Masquerade Infernale" 이후에는, 'Radical Cut' 같은 곡을 제외하면 블랙메틀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순간도 별로 없었다. 굴곡 심한 전개 속에 상당히 넓은 폭의 사운드를 구사하기 때문일진대, 어쨌든 그런 곡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Arcturus의 재능이겠다. 후대의 심포닉 블랙메틀 밴드들 중에, Arcturus의 영향을 술회하는 밴드는 생각보다는 많지 않은 점은 아마도 그런 탓이 아닐런가 싶다. (여담인데, 내가 들어 본 Arcturus 이후에 나온 앨범들 중, Arcturus와 가장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의미심장하게도, Ihsahn의 솔로 앨범들이었다)

Vulture Industries는 그런 면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Arcturus를 따라가고 있는 밴드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Arcturus와 Solefald를 적당히 섞은 듯한 사운드일 것이다. 1998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는 밴드가 작년에야 두 번째 앨범이 나온 것은 그 작업이 녹록치 않았음을 방증하는 것일지도. 물론 Solefald의 영향은 좀 더 피상적으로 보인다. 브레이크를 심하게 걸어대는 리프(사실, 이 때문에 '뉴 메틀' 스럽게 느껴지는 때가, 없지는 않다. 이런 점은 'The Hangman's Hatch' 같은 곡에서 두드러진다. 물론 이건 블랙메틀 밴드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뒤에 깔리는 색소폰 연주는 아무래도 "Red for Fire" 앨범을 연상케 하는 바 있고, 간혹 등장하는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는 "Neonism" 의 괴이함을 연상케 하지만, Solefald가 그 앨범들에서 섞어내는 유머러스함은 이들의 앨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이들이 메틀릭하지 않은 사운드를 섞어내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곡의 드라마틱을 구성하기 위한 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앨범의 컨셉부터가 대략 '범죄인과 형 집행자의 시각에서 본 범죄와 처벌' 에 대한 이야기인데, 장난스럽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보컬이다. Black Hole Generator 출신의(확실히 이런 점만 봐도 이들은 Arcturus보다는 '쩌리' 에 가깝다) Bjørnar Erevik Nilson의 목소리는 Garm과 상당히 흡사한 선을 보여주는데, Arcturus의 초기작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미덕일 것이다. 다만 전개에 있어서는 "Aspera Hiems Symfonia" 보다는 좀 더 연극적이었던 "La Masquerade Infernale" 에 가깝다. 이를테면 'This Cursed Flesh' 나 'Crooks & Sinners' 의 고색창연한 - 멜로트론까지 사용할 정도 - 인트로는 그 앨범을 의도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물론 그 인트로에 이어지는 변화무쌍한 연주는 그 앨범과는 차이가 있지만(사실 이런 부분은 Arcturus보다도 Unexpect 같은 밴드에 더 가깝다) 이런 연주들이 스케일 큰 사운드를 의도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사실, 이 앨범의 곡들 중에서 확실한 공간감을 가지고 전개되는 곡은 'Crowning the Cycle' 정도에 그친다. 바꿔 말하면 이 곡이 일반적인 심포닉 블랙메틀의 전형에 가장 가까울 것이고, 그 외의 곡들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과, 이들이 따라했음이 분명한 선배 밴드들과의 확실한 차이라고 한다면(물론 내 생각일 뿐이다), 선배들이 어쨌든 블랙메틀 밴드로서의 매력을 강조했던 반면, 이들의 경우에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가 블랙메틀의 방법론을 받아들인 모양새에 가까워 보인다는 것이다. 타이틀곡인 'The Malefactor's Bloody Register' 에서는 바이올린, 색소폰, 첼로, 어쿠스틱 기타까지 사용하면서 서사를 강조하지만 그 서사가 선 굵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소편성의 드라마에 가까운 음악인 셈인데, 그 소편성의 드라마가 꽤나 복잡하게 구성된 모양새라는 정도로 해 두는 게 나을 것이다. 다만, 이들의 멜로디감각은 그 작은 드라마를 어쨌든 흥미있게 끌고나가기에는 충분하다. 광고 문구나 넷상의 세평이나, Arcturus와 비교하는 게 일반이다 보니 조금은 김이 새 버린 감을 부인하긴 어렵지만, 난 이 앨범을 상당히 좋게 들었다.

post script :
커버 모델은 노르웨이 배우인 Helge Jordal인데, 전작인 "The Dystopia Journals" 에서도 표지모델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