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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Keep of Kalessin - Skygger av Sorg

[Demonion, 1995]

Keep of Kalessin이야 블랙메틀 팬이라면 그리 많은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뭐 밴드가 유별났던 점이라면 이 동네의 많은 밴드들이 트롤 얘기나.. Tolkien의 저작에 터잡은 이미지를 가져갔던 데 비해(예를 들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이 밴드는 Ursula K. Le Guin의 "The Farthest Shore"(그 '어스 시의 마법사' 의 3권이다) 에서 가져갔다는 정도이겠는데, 그렇더라도 밴드의 사운드가 당대의 노르웨이 블랙메틀과 큰 차이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일단 밴드 멤버들부터가 Satyricon과 Bloodthorn 출신이고, 아무래도 가장 유명할 데뷔작인 "Through the times of War" 은 - 최소한 밴드는 "Reclaim" EP부터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 당시 노르웨이 블랙메틀의 전형에 가까운 음악을 담고 있었다. 트레몰로와 얼터네이트 피킹 위주의 기타와 전면에 나서지는 않는 키보드 사운드가 사운드의 전위가 되는.

흥미롭게도 밴드의 유일한 데모인 이 앨범은 그 데뷔작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음악을 들려준다. 데모의 타이틀 곡인 'Skygger av Sorg' 가 "Through the times of War" 에도 실렸던 곡임을 생각하면 이는 흥미로운데, 3곡이 수록된 이 데모는 확실히 밴드의 이후 정규작들보다 여유 있는 전개를 보여준다. 사운드는 어쨌든 블랙메틀에 가깝지만, 보컬은 "Through the times of War" 와는 달리 데스메틀의 그것에 가깝다는 것도 눈에 띄는 점. 데모이니만큼 음질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사실 이 데모의 음질은 당시의 어느 블랙메틀 밴드의 데모.. 는,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어느 데모보다도 뛰어난 수준이다. 게인이 낮고 기타 톤이 좀 얇은 편이라는 외에는 모든 파트를 분별할 수 있는 정도로 신경 쓴 편이다. 손이 많이 간 데모임을 알 수 있는 것은 곡과 곡 사이의 쓸데없는 공간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도 보여진다. 모 사이트에서는 구릿한 음질 때문에 음악이 많이 빛을 바래는 것처럼 써 놓았는데... 아마도 데모 앨범을 처음 들어 보는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느린 음악이란 뜻은 아니다. '달리는' 음악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1집보다 상대적으로 느려졌을 뿐, 밴드 특유의 전개 방식은 이 데모에서부터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규작에서도 존재하던 어쿠스틱한 전개에서 이어지는 블래스트비트도 물론이고, 어쨌든 밴드는 '빠르기로' 승부하던 블랙메틀 밴드였던 적은 없었다. 밴드가 당대의 밴드들보다 명확한 멜로디라인과 분명한 서사를 가지고 있었다면(바로 이 점이 "Reclaim" 부터는 좀 틀려지는 점, 이라고 생각한다) 이 데모는 그런 점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단편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절의 노르웨이 블랙메틀 데모 중에서도 아무래도 가장 눈에 띌 법한 앨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뭐 그렇지만 데모에 별 관심이 없거나, Keep of Kalessin의 1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굳이 이 앨범을 구하려 할 필요는 없을지도. 이제는 나온 지 10년이 훨씬 넘은 데모이지만, 한동안 밴드의 오피셜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었던 앨범이라 그런지,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