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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Apocryphon - Apocryphon

[Self-financed, 2011]

Psychedelic Death Metal이라는 말을 나로서는 들어 보질 못했는데, 어쨌든 흥미로운 표현이라고는 생각한다. Esoteric을 '사이키델릭 둠' 정도로 얘기하는 것도 처음에는 무슨 얘기인가 싶었던 바도 있었으니 이상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밴드는 2010년 10월에야 시작된 밴드라고 하니 정말 신진 세력인 셈인데 - 경력이 있는 친구들인지는 잘 모름 - , 사실 이들의 음악에서 사이키델릭하다는 것은 아무래도 비영어권을 살아가는 이로서는 공감하기는 어려운 특성이지 싶다. 이들의 음악이 전체적으로 훌륭한 수준의 데스메틀이지만 이런저런 요소가 다양하게 들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라인드코어도 있지만, 간혹은 슬램에 최적화된 수준의 리듬감각을 자랑하는 - Bay Area 출신인 친구들이다 - 부분도 있고, 샘플링도 등장한다(이를테면 'Blood of Serpents' 같은 곡의 시작과 마무리가 그렇다). 그렇지만 사실 사이키델리아를 구현하려는 모양새는 위에서 얘기한 샘플링에서 이어지는 어느 정도의 노이지함을 제외한다면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밴드의 자신들에 대한 소개는 조금은 납득할 수 없는 셈이다.

그렇지만 'Apocryphon' 이라는 밴드 네임과 곡명들 - 'Bad Acid Baphomet' 이나 'Psychedelic Warrior' 등 - 이 의미하듯이 이들의 음악은 은근히 흥미로운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사실 위에서 말하는 '사이키델릭' 하다는 것은 이들의 사운드보다는 이들의 곡을 끌고 나아가는 컨셉트에 대한 의미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아닐 수도 있다). 이들은 가사를 꼭 읽어 보면서 음악을 들어 보아야 하는 보기 드문 데스메틀 밴드라고 생각한다. 음모 이론이나 SF, 양자 이론 등이 기묘하게 버무려진 가사가 - 혹자는 미드 "빅뱅 이론" 에 어울릴 법 하다기도 - 밴드의 완급조절에 상당히 잘 어울리는 편이다. 이런 식의 지적인 접근을 보여주려 한 밴드로는 나로서는 - 그라인드에 가깝기는 하다만 - Circle of Dead Children이 떠오르는데, 당연히 이들이 그들보다는 훨씬 정통적인 사운드이다. 앨범 커버에서도 엿보이지만, 사실 이들이 따라가는 '데스메틀' 사운드는 근래의 것이 아닌 올드한 스타일의 것이다. 나로서는 Immolation이나 Autopsy 같은 밴드들이 생각나는 부분에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뭐, 사이키델릭하다는 이들의 말로 포스팅을 풀어 갔지만, 어쨌든 이 데뷔 EP가 출중한 데뷔작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사실 EP라는 딱지를 붙인 데모 앨범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꽤나 매끈한 음질을 가지고 있고(이 앨범을 녹음했다는 스튜디오와 프로듀서도 Lennon Studio의 Jeff Leppard란다.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 이상으로 유머를 뿌리고 있는 셈이다) 테크닉이나 송라이팅이나 숙련된 솜씨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밴드의 에토스에서는 Carnivore를 떠올리기도 했는데 - 파충류 얘기나, 기묘하고 약간은 잔혹한 유머나 - 그런 모든 점들은, 어쨌든 이들의 사운드 외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된다. 재미있는 구성의 훌륭한 데스메틀 앨범이라고 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덧붙이자면 데뷔작이다. 100장 한정으로 나무박스 케이스로 발매되었음(그런데 다른 버전이 있는지는 모를 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