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urious Trauma/Personnel

Steve Jobs, 이데올로기



사람이 죽는 것은 분명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상이라는 말은 사실 꽤나 기만적으로 느껴지는 바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창 나이에 병으로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면,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지금은 Steve Jobs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일반적인 백만장자였다면 지금의 추모 열기도 아마도 없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Jobs가 생전에 얘기했던 이런 저런 것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피상적으로 접한 부분에 있어 뭔가를 느꼈던 경우도 사실 거의 없다. 가장 명징했던 느낌이라면 이런 정도일 것이다. 근래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거의 없는 사람들 중 하나이고, iPhone 새 모델이 나온다더라 하는 등의 소식에 가장 관심 없는 사람들 중의 하나로 보여지는 듯하다. 그 점에서 오는 이방인스러운 느낌(물론 이방인, 이라는 용어는 그리 적절하진 않다. 내 어휘 실력이 그 정도다), 정도가 내가 가지고 있는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애플 사의 홈페이지 첫 화면을 장식하는 Jobs의 부고기사를 클릭하매 나오는 그의 설명은 'creative genius' 이다. 아마도 Jobs에 대해 하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 가운데, 그라는 인간을 직접 경험해 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사실, 이 동방의 나라에 사는 나로서는 '아예' 없다고 표현한들, 그리 틀린 얘기도 아닐 것이다). 대충 Jobs의 천재성에 대한 이미지는 적어도 나로서는, '그의 아이디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예전에 생각키도 어려웠던)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있다' 는 식의 얘기를 쉬이 들을 수 있다는 정도에 그친다. 사실 애플의 광고들은 항상 제품 자체의 성능 얘기에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Jobs의 천재성이라면 그렇다면, 생각지도 못한 제품을 먼저 생각해 냈다는 점이 아니라, 그런 물건들을 가지고 문명의 이기를 즐기는 '힙스터' 들의 모습을 먼저 생각해 냈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그 물건들은 우리 시대의 '원자화된' 개인들의 모습을 잘 포착한 것일 것이다. 스마트폰 구입을 권유하는 지인들은, 대체 전화와 문자 외에 핸드폰의 기능을 사용하지를 않는 내게 일단 써 보면 그 갖고 노는 재미에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얘기한다. 수많은 어플리케이션들이 그 증거다. 조금은 괴팍해 보이기도 하는 것이 '차도남' 이미지에도 어울릴 법한 디자인 등은 보너스에 가깝다. 그것 뿐인가. 스마트폰이 가져다 주는 디지털망에의 확실한 접근성은 더 손쉬운 소비 생활을 보장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소비 생활을 통해서도 스스로를 더 명확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비실용적일 수 있지만 확실히 보기에는 흥미로운(그리고 비싼 편인) 물건들을 판매하는 Funshop 같은 쇼핑몰이 어째서 인기를 끄는 것일까.

얼리어답터는 커녕(난 음악도 CDP와 턴테이블로 듣는 사람이다) 눈 앞의 물건에 익숙해지기도 버거운 나로서는 애플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말할 능력은 없다(사실 그럴 생각도 없다. 아는 게 있어야지). 다만 Jobs가 상품화한 물건들이 사실 상품화하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렇게 강조했던(뭐 근래의 세계적 기업들이 흔히 그렇듯이)혁신, 그리고 창조성이라고 생각한다. 편리하기도 하면서도 확실히 '힙' 하게 생긴 그 물건들은 전체로서 그네들의 창조성을 체화하고 있었다. 판매자들의 입장에서 이제 상품이 반드시 실용성에만 신경써야 하는 것은 아니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애플의 목소리는 바로 그렇기를 강조한다. 언젠가 Jobs가 그랬던가, 야동 찾아보는 인간들은 안드로이드나 쓰라고. 그렇다면 Jobs는 결국 시장을 지배하는 데 성공했던 것만이 아니라, 바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많은 포털의 첫 화면에서 Jobs에 대한 추모 기사 뿐이 아니라, 거의 컬트에 가까울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의 많은 반응들을 마주칠 수 있다. 무엇이 그들을 컬트로 만들었을까. 그냥 Jobs라는 사람의 IT 리더로서의 빛나는 모습이었을까. 최소한 내 생각엔 그건 아닐 것 같다. 차라리 Jobs가 일찍 깨달았던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의 상품의 이데올로기일지도. 물론 그건 사람들의 탓은 아니다.

post script :
1. 조금 전에도 언제 스마트폰으로 바꿀 거냐는 문자가 날아왔다. Jobs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강박적일 정도의 방향성은 제시하지 않았을까. 뭐 그게 Jobs의 탓만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그는 단지 좋은 상품을 생각해 냈을 뿐일지도 모른다.
2. 그리고 어쨌든 나도, 바로 저 문자에 안 산다고 대답하지는 못할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