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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Presence - Makumba

[Hell 222, 1992]

Presence를 처음 알게 된 것은 "Black Opera" 앨범에서였다. 이런 저런 밴드들이 클래식에서 소재를 따 와서 곡을 만든다는 정도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Verdi를 손을 댄 경우는 나로서는 처음이었기에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 밴드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뒤에 접한 것이 Black Widow에서 재발매된 "The Sleeper Awakes" 였고, 앨범도 앨범이었지만 동봉된 라이브 CD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Kashmir' 의 커버는 그렇다 치고, 'Makumba' 같은 곡은 "Black Opera" 같은 앨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드라이브감 강한 사운드였으니까. 물론 Presence라는 밴드 자체가 Black Widow 소속 밴드 치고는 (Pentagram 같은 스타일의 밴드들을 제외한다면)메틀릭한 편이기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Black Widow에서 앨범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The Sleeper Awakes" 부터였으니, 데뷔작인 "Makumba" 를 구하는 데는 처음에 예상한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The Sleeper Awakes", "Black Opera", "Gold" 앨범 모두가 그렇듯이, 이 앨범 또한 오컬트적인 색채가 기본이 되고 있다. 오컬트라고 하면 원인 모를 거북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지만, 밴드의 앨범 중에서는 가장 심플하고 메틀릭한 편이라는 점에서(그리고 이들의 사운드를 '어둡다' 고 하긴 어렵다), 일반 프로그레시브 메틀의 팬이라면 아마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사운드이다. (기타리스트인 Sergio가 GIT 출신이라는 점을 알아 두자) 물론 이런 스타일은 흔하지만, 이 앨범이 1992년에 나온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생각보다는 신선한 편이다. 일반적인 스타일과 구별되는 부분은 특히 'Makumba', 'Shinin' Uneasy' 같은 곡에서 찾을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전형적인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록(물론 이들의 경우는 이탈리아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브리티쉬 하드 록에 가까울 것이다)과 프로그레시브 메틀의 중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후자에 좀 치우친) 격의 사운드이다. 보컬리스트인 Sofia의 목소리가 Curved Air 생각도 조금 나게 한다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그보다는 힘찬 스타일이긴 하다만. Enrico Iglio의 적당한 해먼드 오르간 튠을 섞은 키보드 연주는 밴드의 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편이다. 그리고, 근래의 '프로그레시브 메틀' 이 '서사' 를 떠안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고 투덜거리는 경우라면, 이들은 아마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곡 하나하나는 (장르를 생각하면)그리 길지 않지만, 뚜렷한 기승전결을 갖추고, 가사와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역시 그래도 앨범의 핵심은 Sofia Baccini의 보컬이다. Sofia의 보컬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평은 아마도, 'Queen Diamond' 일 것이다. (Gathering에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Anneke와 비슷한 목소리는 아니다/사실 개인적으로는 Kate Bush 생각을 했다)기괴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고(사실 이 명칭은 아마도 'The Sleeper Awakes' 는 가야 어울리지 않을까 한다), 그만큼 여러 가지 분위기를 소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도, 뒤의 앨범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는 단조로운 편이지만, 이 앨범이 후기작들에 비해서 '서사' 의 면에서는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Sofia는 프랑스어, 영어, (당연히)이탈리아어를 모두 사용하는 작사자이기도 한데, 나야 영어(도 매우 부족하나) 외의 다른 언어에 대해서는 그 맛을 느낄 수가 없으나, 가사에 있어서도 상당히 높은 편을 받고 있기도 하다. 밴드를 주도하는 것이 사실상 Sergio와 Sofia임을 생각할 때, Sergio의 영향력이 가장 짙게 드리울 시절의 결과물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엄밀히 말해서, "Black Opera" 이후의 앨범들과 비교할 때, 조금은 거친 편이다. 아무래도 밴드의 디스코그라피에서 Sergio의 연주가 가장 비중이 높던 시절의 작품이라 그런지, 기타는 밴드의 다른 앨범들과 비교하여 훨씬 테크니컬하다. 일부분에서는 뒤의 앨범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네오클래시컬 어프로치도 발견할 수 있는데('The Bride of Sin' 같은 곡이 그렇다) 사실 이 부분은 약간은 괴리감이 느껴진다. 사실 Sergio가 특이한 프레이즈나 스케일을 사용하는 기타리스트는 아니나, Presence의 음악의 '텐션' 을 위해 이용되는 약간은 무조적인 멜로디가 그 스타일과 아직 완전히 어우러지기 전이라고 생각된다. Enrico의 연주는 훌륭한 편이나, 유감스럽게도 앨범의 영세함은 키보드의 튠에서는 좀 두드러지는 편이다. 'Left Hand Cross' 는 좀 더 무거운 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더 멋진 곡이 되었을 것이다. 기타도 약간은 묵직하게 녹음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The Sleeper Awakes" 의 재발매반에 수록된 'Makumba' 의 라이브는 이것보다 더 헤비했고,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구체적인 컨셉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개의 곡마다 완결적인 구조와 서사를 구축하고 있으면서, 멤버 전원이 인상적인 테크닉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앨범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 앨범은 1992년에 나온, 영세 레이블과 막 계약한 밴드의(찾아보니 자주 레이블이라는 말도 있긴 하다만) 데뷔작이다. 서사성이 극대화되기 시작하는 "Black Opera" 부터의 음악과 비교하면 스타일상의 차이는 분명하니, 어찌 보면 밴드의 발전 양상을 보여주는 앨범이라고도 하겠다.(데뷔 앨범이라지만, 밴드의 첫 작품은 아니니까) 그리고 '좀 더 무거웠음 한다' 일 뿐이지, 'Left Hand Cross' 나 'Superstitious' 같은 곡은 밴드의 디스코그라피에서도 손꼽힐 수 있을 곡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