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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Drudkh - Eternal Turn of the Wheel

[Season of Mist, 2012]

Drudkh의 전작이었던 "Handful of Stars" 는 밴드가 으레 그래 왔듯 괜찮은 앨범이었다. 다만, 들으면서 은근히 귀에 걸리는 것은 종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재즈적인 느낌, 그리고 근래의 소위 post-black에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Drudkh같은 스타일은 블랙메틀의 근래 많이 나타나는 스타일들에 비교하자면 꽤나 고전적인 편인지라, 이런 변화는 꽤 의미심장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은 그런 변화가 가속화됐다고 생각한다. 밴드는 앨범 발매 전의 인터뷰에서 과거로의 회귀를 지향하는 앨범이라는 취지의 코멘트를 했다고 하고, 이 앨범의 타이틀 부터가 "Forgotten Legends" 의 수록곡 이름이라는 게 그 말을 신뢰할 수 있게 해 주었음을 생각하면, 이건 의외의 결과다. 지금 한번 레이블을 살펴보자. 이들은 "Microcosmos" 부터 Season of Mist에서 앨범을 내기 시작했으니 눈치 빠른 이들은 벌써 한참 전에 예상했던 일일 수도 있겟지만.

이 앨범의 만듦새 자체는 사실 흠을 잡기 힘들다. Thurios의 보컬과, 일관된 분위기를 조성할 줄 아는 드럼의 진행, 약간은 음습한 느낌까지 주는 프로덕션이 밴드를 상징하는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앨범이 한 장 더 나올수록 음질이 좋아지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이런 특징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각자의 곡은 사실 매우 공고한 구성으로 짜여져 있다. 'Breath of Cold Black Soil' 에서 등장하는 밴드의 어느 곡에 비해서도 훨씬 변화가 심한 드러밍은 그 한 예시라 생각한다. 트레몰로로 연주되는 파워 코드의 반복과 조금씩 변주되면서 진행되는 드럼의 구성은 예전의 Kvist같은 밴드를 생각나게 하는 데가 있는데, 아무래도 Kvist보다는 이들이 좀 더 분위기에 치중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밴드가 자주 보여 주던 공고한 미드템포의 곡은 'Farewell to Autumn's Sorrowful Birds' 같은 곡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나는 리프라고 생각한다. 내가 Drudkh를 좋아했던 가장 큰 부분은 아무래도 자욱한 느낌을 주는 디스토션 걸린 기타 연주일 것이다. 월 오브 사운드 마냥 두꺼우면서 거친 텍스처의 연주 속에서 나타나는 힘 있는 리프가 이들의 오리지널리티라고 생각한다. 물론 명확한 리프를 갖지 않는 경우를 블랙메틀 밴드들 중에서 발견하는 건 - 다른 메틀 장르에 비해서 -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가장 좋은 예 중에 Woods of Desolation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방식이라도 곡의 서사가 필요하니, 이를 나름 명확하게 제시하던 리프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코드 프로그레션이 그럴 것이다. 장르의 컨벤션을 생각하면 이건 꽤 실험적인 방식이기도 하다(물론 다른 이들이 먼저 써먹었을지언정). 앞서 말했던 'Breath of Cold Black Soil' 의 은근히 복잡한 구성은 그런 연유에서 나타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밴드 특유의 환각적인 연주는 덕분에 더 단순해졌다. 앨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가 어쿠스틱 인트로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이 앨범을 듣고 Alcest를 얘기하는 이가 없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Drudkh가 만들던 블랙메틀 리프에서 간혹 펑크의 냄새가 나기도 하는 건 사실 좀 당혹스러웠다.

덕분에 이 앨범에 대해 얘기하는 건 조금 조심스럽다. 사실 밴드는 이전부터 변화의 양상을 전혀 보여 주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이 앨범이 엄청난 변화를 보여 주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Drudkh의 팬들 중, 이 앨범을 좋아하지 않을 이보다 좋아할 이가 훨씬 많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이 앨범이 밴드가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힘을 별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겨우 10년 남짓한 기간에 9장의 앨범을 낸 이 정력적인 밴드가 그 커리어에서 가장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지점이 아닐까. 물론, Drudkh니까 나의 기대치가 처음부터 아주 높았다는 것도 미리 말해 둔다. 아쉬운 감이 많지만, 이 밴드를 아는 이들이라면 구해 보더라도 적어도 후회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