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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The Great Old Ones - Al Azif

[Les Acteurs de l'Ombre Prod., 2012]

The Great Old Ones는 프랑스의 5인조 블랙메틀 밴드이다. 개인적으로 밴드 이름에 'old' 가 들어간 밴드 치고 그렇게 좋게 들었던 경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지라(그러고 보니, 생각보다 이름에 'old' 가 들어가는 밴드가 많다), 안 좋다면 안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기다 프랑스 출신이니, The Old Dead Tree를 들었을 때의 실망이 떠오르기도 한다(프랑스 출신 중에도, 못 하는 애들은 기복 없이 못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앨범을 들어보기도 전에 무슨 데뷔작을 내는 녀석들이 이름에 'old' 가 들어가냐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Lovecraft를 다루는 밴드라는 것도 알려져 있지만(그래서 앨범의 마지막 곡은, 'My Love for the Stars (Cthulhu Fhtagn)' 이다), 사실 H.P. Lovecraft는 메틀에서는 흔히 다뤄지는 소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감스럽게도 들어보기도 전에 이미 밴드에 대한 선입견은 충분했던 셈이다. 뭐 꼭 좋은 건 아니지만, 나는 꼬장꼬장한 구석이 있는 사람인지라.

그런데 이 앨범은 아주 훌륭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요새 흔히 말하는 포스트-블랙메틀의 범주에 들어갈 법한 음악이지만 Alcest 등의 밴드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굳이 말한다면 그런 류의 밴드들보다 훨씬 공격적인 서사를 전개하는 밴드인 셈인데, 그런 의미에서 Cthulhu 신화를 이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소위 포스트-블랙메틀 특유의 두터운 사운드의 벽을 만드는 방식을 사용하지만, 전체적인 작풍은 좀 더 정통적인 블랙메틀의 그것에 가깝다. Alcest 같은 밴드보다는 Fen 같은 밴드에 더 유사한 셈인데, Fen에 비해서는 좀 더 사운드를 두텁게 가져가면서 곡을 진행한다는 차이가 있다. 곡의 뼈대를 트레몰로 리프가 구축하지만, 그 위에는 다시 오버더빙된 기타 연주가 계속해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며 멜로디라인을 명확히 한다.

덕분에 이 앨범은 풍요로운 멜로디를 들려주면서도 여느 앨범보다 꽤 실험적인 면모가 짙은 편이다. 아마도 디스토션 사운드 위에 얹히는 트레몰로가 만들어내는 사이키델리아(이런 건 이미 Alcest의 스타일에서 익숙하긴 하지만)는 물론, 의도적으로 계속 뒤엉키는 멜로디라인을 만들어내면서 전개되는 단선적인 기타 연주들이, 그렇게 뜻밖일 것은 없는 이 앨범의 곡들에 실험적인 색채를 부여한다. 곡의 절정에 갈수록 이런 연주들은 좀 더 중첩적으로 전개되면서 사운드의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덕분에 밴드는 앨범에 별도의 앰비언트식 'filler' 를 집어넣을 필요가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미 그런 부분에서 앰비언트적인 면모도 드러난다. 아마도 이런 면모가 가장 강한 것은 거의 둠 메틀에 가까운 부분까지 드러나는 'Jonas' 일 것이다.

뭐, 그래서 앞에서 포스트-블랙메틀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지만(그리고 위에서 Fen이나 Alcest같은 밴드를 인용했지만), 사실 이들을 그런 밴드들과 함께 묶기가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사운드상의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런 류의 거의 대부분의 밴드들보다 확실히 더 어두운 사운드를 추구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는 좀 더 정통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Lovecraft의 차용은 그런 음악에, 직선적으로 변모하다가 잃어버리기 쉬울 서사의 힘을 강하게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사실 Lovecraft에 대해 관심 없는 이들에게도 매우 인상적이겠지만, 앨범을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그런 부분일 것이다. 이런 스타일이 기존의 장르들 간의 교잡의 결과물이라면, 그 결과물 중 최상의 단계의 것의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