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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Sculptured - The Spear of the Lily is Aureoled

[The End, 1998]

USPM 등의 단어를 사용한 분류를 즐기는 건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미국과 유럽의 메틀이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분명할 것 같다. 물론 그건 둠 메틀의 경우도 동일하다. 아무래도 정통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유럽의 둠 메틀에 비해(물론 꼭 그렇다는 건 아니다) 미국의 둠 메틀은 좀 더 다른 음악과 결합된 형식으로 나타나거나, 멜로딕 데스에 상당히 접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고 보여진다. Sculptured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프로그레시브' 한 면모를 보여주던 미국식 둠 메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밴드는 스스로의 음악을 'matrix metal' 이라고 표현하는 모양이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를 생각해 봄이 더 어려울 듯 싶으니, 이 정도로 생각해 두는 게 나을 것 같다. 밴드의 음악을 예상하기 위한 점으로, 이 밴드를 결성했던 Don Anderson과 John Haughm이 Agalloch의 그 친구들이라는 정도는 덧붙여 둔다.

물론 앨범은 사실상 Don Anderson의 앨범이다. Don은 드럼과 브라스를 제외한 모든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달리 얘기하면, 이 앨범은 Agalloch를 포함하여 Don이 참여한 어떤 앨범보다도 뛰어난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다. 'Lit by the Light of Morning' 같은 곡에서 들리는 태핑 연주나, 'Fashioned by Blood and Tears' 의 인트로에서 나오던 스킵 피킹 등은 Agalloch의 앨범에서 들을 수 없었던 모습들이다 - Don은 Cynic, Atheist로부터 영향받았다고 자처하는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 아무래도 미국 친구이다 보니, 이런저런 테크닉의 이용에서 사실 Van Halen 같은 '아메리칸' 의 냄새가 없지 않다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이겠다. 그러다가도, 'Together with the Seasons' 의 명백히 Agalloch의 음악을 연상케 하는 (어떻게 생각하면 좀 포스트록스럽기도 한)리프는 앨범이 생각보다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Fashioned by Blood and Tears' 의 매끈한 메틀 리프가 재즈풍 어프로치도 엿보이는 기타 연주에, 곧 클래시컬 피아노 연주로 전개될 수 있기도 할 것이다.

뭐 그래서 사실 앨범의 많은 부분이 이제는 일반화된 프로그레시브/멜로딕 데스의 리프를 위주로 진행되고 있지만 - 예테보리 스타일은 아니지만 - , 앨범은 어느 장르의 컨벤션에도 그리 부합하는 편이 아니다. 가장 직선적인 편인 'Lit by the Light of Morning' 정도를 제외한다면 - 이 곡은 거의 Death를 떠올리게 하는 바도 있지만 - 앨범에서 직선적인 부분은 별로 없다. 오히려 밴드는 메틀릭한 연주에 브라스를 삽입함은 물론, 계속해서 곡의 구조를 뒤틀어 간다. 이 앨범의 리프가 분명히 '멜로딕 데스' 를 연상케 하는 바가 있다면, 그 장르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게 전개되는 건반도 그렇다. 아무래도 이런 형태의 음악에서는 보컬이 많이 고생을 하는 편이다. Don은 그로울링과 스크리밍은 물론 클린 보컬, 중간중간의 나레이션도 혼자서 모두 담당하고 있는데, 사실, 이 앨범에 삽입된 나레이션들이 지나치게 인습적인 모습을 풍기는 바 없지 않아서인지 개인적으로 Don의 보컬 자체를 좋게 듣지는 못했지만, 보컬 라인이 곡의 구조를 매우 명확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메타포들을 아주 명민하게 사용한 가사도 - 비영어권 거주자의 눈으로 보아도 - 상당히 인상적이다.

뭐, Agalloch를 초기 Katatonia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던 사람도 있었던 걸 보면(물론 "Pale Folklore" 앨범에 한한 얘기겠지만) Sculptured와 Agalloch의 음악 사이에 사실 분명한 연관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런 저런 점들을 보건대, Agalloch의 음악과 다름은 물론, 그 동안 나온 어느 멜로딕 데스/둠 메틀 앨범과도 다른 음악을 들려줬던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Agalloch가 점차 분위기 위주의, 포크의 요소를 대폭 받아들인 음악을 들려줬음을 생각하면 Don이 메틀 뮤지션으로서 가장 빛나던 순간은 이 앨범 시절일지도 모르겠다. 데스메틀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Opeth를 좋게 들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좋아할 법한 앨범.



Sculptured - Fashioned by Blood and T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