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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Impiety - Ravage & Conquer

[Pulverized, 2012]

Impiety가 이 장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야 따로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모르는 분을 위해 첨언하자면, 한국 록에 있어서의 신중현 선생의 위상, 의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밴드의 최근의 행보에 대해서는 약간의 불안감을 얘기하는 모습도 계속 있어 왔다. 작년 초에 나왔던 "Worshippers of the Seventh Tyranny" 는 음악적 스타일은 기존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앨범은 무려 38분이 넘어가는 동명 타이틀 곡 하나만을 담고 있었다. 정교하게 배치된 불협화음들, 갈수록 프로그레시브해지던 많은 데스메틀 밴드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사운드는 밴드가 이전의 스트레이트한 모습에서 변화를 주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을 불러왔다. 그리고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뒤 이 앨범이 나온 것이니 그러한 걱정들은 여전히 유효했다.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면 라인업도 작년과는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과, 그 라인업이, 그간의 밴드의 구성이 그 유명세 덕에 많은 외국인 멤버들이 오갔었던 것과는 비교되도록, 싱가포르 출신의 뮤지션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초심을 좇아서 간다' 는 식의 해묵은 표현을 생각하기에는 좋은 정황인 셈이다.


그렇지만 사실 이 앨범의 스타일이 그렇다고 밴드의 초기와 유사한 것은 아니다. 괴이하게 변주된 호른 연주와 꽤 캣취한 리프를 가진 인트로로 시작하는 'Revelation Decimation' 은 러닝타임부터 8분이 넘어간다(이 앨범에는 러닝타임이 8분 정도인 곡이 세 곡이나 된다. 하긴 따지고 보면 원래부터 긴 곡들을 계속해서 써 왔던 밴드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뒤틀리는 곡의 구조나 상당히 카오틱하게 전개되는 Nizam Aziz의 리프도 사실 이전의 Impiety의 모습과는 조금 틀리다. 개인적으로는 근래의 Behemoth(내 생각에는 "Satanica" 시절. 뭐 이 정도면 근래라고 하기도 좀 뭣하지만)와도 조금은 닮아 있다는 느낌인데 물론 전체적인 곡의 진행은 좀 틀리다. 대표적인 예는 'Ravage and Conquer' 라고 생각한다. 정교하게 배치된 불협화음을 이용해 텐션을 구축하는 초반부에서, 상대적으로 듣기 편한 멜로디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중반부, 다시 리프의 힘이 발휘되는 후반부 등은 Behemoth나 Morbid Angel과는 꽤 틀린 스타일이다. 앨범을 마무리하는 Bathory의 커버곡인 'Sacrifice' 를 들으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Shyaithan의 보컬도 예전보다는 좀 더 데스메틀에 가까워졌음은 물론이다. 적어도 이 앨범의 리프만을 살펴본다면, 더 이상 Impiety를 '블랙스래쉬' 밴드라고 부르기는 좀 어려워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덕분에 가장 다채로워진 것은 드럼이라고 생각한다. 새 드러머인 Dizazter의 연주는 사실 그간의 Impiety를 거쳐간 드러머들에 비해서는 좀 가볍고 날카로운 편이라고 생각한다 - 녹음의 탓일 수도 있다 -. 아무래도 카오틱해진 곡들 덕분에 예전처럼 달리기에 너무 힘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 앨범의 템포도 여전히 빠르지만, Impiety의 예전의 스피드에 비할 정도는 아니니 근거없는 생각도 아닐 것이다. 다만 리듬 파트의 변화라는 면에서는 여태까지의 앨범에서보다 훨씬 화려하게 전개된다고 보여진다. 간혹 블래스트비트에 실려나오는 트레몰로 리프 정도가 밴드의 예전 모습을 상상하게 해 주는 정도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전작에서 나타나던 서사적인 면모는 이번 앨범에서는 약화된 편이다. 이번 앨범에서의 데스메틀적 사운드는 아무래도 구체적인 서사보다는 '강력함' 자체에 치중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나마 (아마도 라이브에서 자주 연주될)'Weaponized' 가 예외라면 예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Impiety가 다시 어느 정도 스타일의 변화를 가져가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밴드는 큰 변화를 시도한 것이 아니고(그런 적도 없고), 그런 걸 누구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이 앨범도, 기존의 Impiety 팬이라면 분명 좋아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생각에 Impiety는, '동양권의' 밴드들 중에서 가장 예전 블랙메틀/데스메틀의 원류격인 모습에 가까이 있는 밴드였는데, 적어도 이젠 그렇게 표현하기는 조금은 어려워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쩌면 그런 스타일이 새로운 시대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처럼)아쉬움을 느낄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항상 그 정도는 충분히 해 내는 밴드이다. 조금 있으면 불혹이 되는 양반이 이만큼 달려주는 것도 쉬운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