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스래쉬메틀 밴드들이 어느 정도 멜로딕 데스 물을 먹는 건 이제는 분명해 보인다(정작 멜로딕 데스의 프론티어들이 이제는 원형에서 많이 벗어난 음악을 하는 걸 생각하면 의아하기도 하다). 물론 많은 스래쉬메틀 밴드들은, 또 자기들의 전성 시절에는 가장 강력한 음악을 하는 축에 속하던 이들이었다. 스래쉬 리프에 빠른 템포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려다 보니 나오는 결과일지도 모르는 일이다만, 어쨌든 기존의 결과물과는 명확한 차이가 있는지라 그 호오는 꽤 갈린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젊은 시절에 좀 더 강력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밴드들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나는 Sodom의 "In War and Pieces" 같은 앨범을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속된 말로 '맥아리 없다고' 그 앨범을 싫어하는 사람을 보는 일도 드문 일은 아니다.
거칠게 일반화해서 위와 같은 게 어느 정도는 근래의 스래쉬메틀의 '주류적(물론 이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경향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가장 이런 경향을 잘 따라갈 만한 밴드는 Kreator라고 생각한다(소위 Slayer를 제외한 '4대 스래쉬 밴드' 는, 아무래도 장르의 원형과는 원래부터 차이가 있는 밴드였으니 일단은 논외로 한다). Kreator는 ("Outcast" 나 "Endorama" 같은 망작은 그렇다 치더라도)사실 여러 장의 앨범을 내는 동안 상당히 넓은 사운드의 스펙트럼을 가져간 밴드였다. "Endless Pain" 같은 게 스래쉬의 원형에 가까웠다면 리프의 힘이 강조되었던 "Extreme Aggression", 좋게 얘기하자면 드라마틱한 면이 강조되었던 "Renewal", 캣취하다 못해 그루브함까지 느껴지던 "Violent Revolution" 은 서로 상당히 틀린 앨범이었다. 하긴 이 앨범까지 정규 앨범만 13장을 내 오면서 항상 똑같은 모습만 보여준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게다(그런 면에서 Yngwie도 대단한 양반이다. 뭐 이건 다른 얘기고).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셔서 그런지 이 앨범에는 밴드의 그간의 모습들이 조금씩은 묻어나고 있는 듯하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커리어를 한 번쯤 정리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은데, 그렇다면 사실 앨범을 만드는 데 문제되는 부분은 일관성이다. 예테보리풍의 멜로디가 앨범을 관통하고 있는지라(특히나 'Victory will Come' 같은 곡에서 이런 점이 두드러진다) 앨범은 생각보다는 일관적인 부분이 있고, 상당히 다양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이상의 빠른 템포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모습 - 간혹 "Endorama" 같은 부분도 있지만 - 이 메틀 앨범으로서의 덕목을 보여주는 편이다(이를테면, 'Civilization Collapse', 'United in Hate' 같은 곡들도 단정한 인트로 뒤에는 이를 만회하려는 듯 달려가는 모습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Slayer의 'Homocidal Maniac' 을 떠올렸음). 간혹 보다 보니 이 앨범이 전작들보다는 프로그레시브하다/테크니컬하다는 평이 보이던데, 아무래도 일관성의 문제를 그런 식으로 극복하다 보니 나오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모습을 '단선적으로' 보여준다. Mille 말고도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Ventor가 드럼을 맡고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재를 살고 있어서인지 이 오래 된 밴드에게도 메틀코어적 바이브가 없지는 않지만, 그리 거슬리진 않는다(이 앨범의 프로듀서가 Devin Townsend의 앨범을 맡았던 Jens Borgen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개인적으로는 Andy Sneap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밴드의 '클래식' 한 모습을 계속 기대하는 (나 같은)사람들이 있는지라 이 앨범에도 좋은 얘기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물론 꽤 오래 전부터 그래 오긴 했다). 그렇지만 뭐, 나는 스래쉬메틀만 듣는 사람은 아니고, 이 앨범에서 보이는 생각보다 다양한 모습들, 그리고 '멜로딕 데스' 만큼이나 앨범에서 많이 보이는 파워 메틀 바이브는 새로울 거야 하나도 없지만 분명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Violent Revolution" 이후의 앨범들을 좋아한(또는 근래의 멜로딕 데스 팬인) 사람이라면 즐겨 들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너무 완고한 기준을 가진 경우만 아니라면, 즐겨 들을 거리를 찾아내기는 충분한 앨범이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돈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꽤 좋게 듣고 있는 중이다.
Kreator - Victory Will C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