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이라면 Kayo Dot과 Maudlin of the Well이라는 이름이 눈에 밟힐 지도 모르겠다(아니면 뭐 할 수 없고). 메틀 밴드로 음악을 시작했고, "Dowsing Anemone with Copper Tongue" 까지는(적어도 "Choirs of the Eye" 까지는) 밴드는 기본적으로 메틀을 기본으로 하는 음악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때도 밴드는 많은 다른 종류의 음악이 교잡된,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스타일의 연주를 하기는 했지만. "Blue Lambency Downward" 부터는 이런 메틀릭한 핵심은 자욱한 불협화음의 구름에 싸여 드러나지 않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밴드 음악의 구조를 살짝 벗어나기 시작한 만큼, Kayo Dot의 음악은 형식상으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원래부터 예측이 어려운 구조의 곡을 쓰던 Toby Driver였지만, "Blue Lambency Downward" 와 "Coyote" 의 곡들은 거의 불가해할 정도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 "Coyote" 의 다음 앨범이 "Gamma Knife" 이다.
그렇게 보면 사실 이 앨범은 꽤 뜻밖이다. 앨범은 정말 간만에 메틀 앨범이다. 아마 가장 의외일 곡은 'Rite of Goetic Evocation' 일 것이다. Maudlin of the Well이 Kayo Dot보다 메틀릭했지만, 이 곡의 블랙메틀에 가까운 면모는 그 때에도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일반적인 메틀 밴드의 작풍과는 거리가 멀다. 내 생각에는 "Choirs of the Eye" 와 비슷한 부분이 꽤 많다고 생각한다. 불협화음이 이어지면서 뒤틀린 구조는 절정부에서 깨어지면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The Manifold Curiosity' 같은 곡을 생각해 보자), 약간은 고쓰적인 면모는 밴드의 전작이 "Coyote" 라는 것을 잠깐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치면 이전의 앨범과 연속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Dowsing Anemone with Copper Tongue" 이후에 이렇게 메틀릭한 앨범은 없었으니, 뜻밖이라고 하기는 충분하다.
'Lethe' 가 그래도 Kayo Dot의 최근의 모습에 가까운 곡이라고 보여진다. 넘실거리는 인상의 바이올린 연주와 차임벨 소리, 중반부부터 나오는 챈트가 자욱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곡인데, 그 다음 곡인 'Rite of Goetic Evocation' 이 앞서 말한 것처럼 강경한 곡이라는 걸 생각하면 곡명은 꽤 연극적이다. 레테 강의 물을 먹고 기존의 스타일을 버리기라도 하는 것인지. 묵직한 리프에 실리는 Toby Driver의 그로울링은 확실히 "Choirs of the Eye" 이후 처음이다. 중반부에 배치된 세 곡, 'Rite of Goetic Evocation', 'Mirror Water, Lightning Night', 'Ocellated God' 은 Toby Driver의 커리어 전체를 돌아 보아도 두드러지게 강력한 편이다.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재즈풍의 어프로치는 Ved Buens Ende같은 이들을 잠시 떠올리게 하는데, 리프 자체의 구성이라기보다는 템포가 느려지면서 트레몰로 기타 연주에 브라스 파트가 얹히면서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취하는 점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강경한 방법론을 선택하다 보니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렇더라도 밴드는 나름 감성적인 면을 잊지 않고 있따. "Bath" 같은 앨범의 'Geography' 같은 곡을 기억한다면 Toby Driver가 생각보다 좋은 목소리로, 감성적인 '어쿠스틱 송' 을 부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인데, 그 모습을 간만에 볼 수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마지막 곡인 'Gamma Knife').
그럼에도 이 곡들은 꽤나 신경질적이다. 아마 앨범에서 가장 기이할 패시지를 갖고 있는 'Mirror Water, Lightning Night' 는 메틀릭한 면모가 나타나기 전에 역시 브라스 라인과 기타 연주가 병치된 구성을 가지고 있다가, 점진적으로 프레이즈를 뒤틀면서 곡을 거칠게 몰고 나가는 구성인데, 그런 모습이 상대적으로 '깔끔한' 레가토 프레이즈로 급전환되면서 곡을 정돈하는 것도 보기 드문 모습이, 지만, Toby Driver는 다시 이런 레가토 프레이즈와 함께 신경질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배치한다. 'Ocellated God' 도 초반의 좀 더 안정적인 파트를 거의 25초 가량의 피드백을 이용해서 진행한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전체적인 구조에서는 큰 차이를 보여주지 않는다. 미국인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뒤의 연주와는 조금은 이질적일 정도로 호방한 스타일의 색소폰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좀 더 유쾌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치면 이 앨범은 Kayo Dot이 여태까지 만든 앨범 중에서 전체적으로 가장 정돈된 구성을 취하고 있는 앨범일 것이다('Gamma Knife' 같은 곡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5곡에 32분 정도의 러닝타임이니 밴드의 다른 앨범에 비해서는 단촐한 편이기도 하다. 어쩌면 밴드는 항상 이어 가던 두터운 사운드의 실험에 약간의 피로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런 모습을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면모는 Kayo Dot의 서사의 중추이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이기도 할 것이다. 대신, 밴드는 Tiamat을 좋아하던 예전을 떠올렸는지 밴드의 어떤 앨범보다도 메틀릭한 리프를 가진, 그리고 밴드의 어떤 앨범보다도 '감상적인' 면모를 가진, 그런 앨범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으로 Kayo Dot을 처음 접한다면 아마 다른 앨범을 듣고 놀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멋진 앨범임에는 분명하다. 특히나 Maudlin of the Well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post script:
이 앨범이 녹음된 장소도 브루클린이니, 이 앨범도 어찌 보면 '브루클린 블랙 메틀' 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다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