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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Szron - Death Camp Earth

[Under the Sign of Garazel Prod., 2012]

폴란드 블랙메틀이라면 일단 선호하던 시절이 있었다. 뭐, 블랙메틀을 듣는다면 어느 국가 출신인지를 기준으로 밴드를 가늠하는 게 꽤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물론 매우 많은 예외가 있지만, 블랙메틀이 그 초창기부터 이미 지역색을 꽤나 강하게 보여주던 장르라는 점이 이런 방법에 나름 정당성을 부여하는 편이다. 폴란드도 마찬가지인데, 아무래도 Behemoth나 Vader, Profanum, Graveland 같은 거물들이 나온 곳인지라 그럴 것이다. 그리고, 폴란드는 Lux Occulta 등의 몇몇 경우를 제외한다면, 노르웨이나 스웨덴, 오스트리아 정도를 제외하고는 가장 정통적인 스타일을 구가했던 밴드들이 많이 나왔던 곳이라고 기억한다. Behemoth 등의 초창기 밴드들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Dark Fury나 Ohtar같은 밴드들은 충분히 정통적인 이들이었다. Szron도 이미 2000년부터 전술한 스타일을 고수해 온 이들에 속한다(정규반을 별로 내지 않았을 뿐이다).

밴드의 세 번쩨 풀-렝쓰인 "Death Camp Earth" 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많은)전작들과 비해 눈에 띄는 점이라면 "Zeal" 부터 확실히 대곡 위주의 성향을 보였던 것이(그 전까지는 3-4분 가량의 곡들을 다수 수록하던 편이었다) 이번 앨범에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4곡에 39분 가량의 러닝타임의 '정통적인 블랙메틀' 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스타일을 암시하는 바가 있는데, 곡의 급격한 변화를 그리 가져가지 않고 반복적인 트레몰로 리프가 곡의 주된 뼈대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Burzum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방식이고, 굳이 근래의 밴드를 들자면 Mgla같은 이들을 연상케 한다. "Zeal" 에 비해서도 휘몰아치는 듯한 리듬보다는 거친 트레몰로 연주를 이용한 사운드스케이프에 좀 더 치중된 음악인데, 덕분에 "Zeal" 보다는 반복적인 리프가 좀 더 힘을 발휘하는 편이다. 'Becoming a Shadow' 중반부의 긴 간주 부분이 이런 스타일을 대변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Summoning the Storm of Nothingness' 는 밴드가 이전작들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정도의 확실한 공간감을 보여준다.

덕분에 앨범에서 리듬 파트가 전면에 나서기는 쉽지가 않다. 특히나 - 블랙메틀 특유의 음질이 그렇듯이 - 매우 빈약한 드럼 파트가(베이스와 스네어가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 트레몰로가 구축하는 사운드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데,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위험을 밴드는 꽤 다이나믹한 리프의 구성으로 극복한다고 여겨진다. "Presence" 시절의 Mgla와도 비슷하게 여겨지는 바가 있는데, 그러면서도 밴드는 멜로디의 과잉을 적절하게 피해간다. 사실, Varg가 감옥에서 나온 이후의 Burzum이 그 이전의 블랙메틀을 재현하지 못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그런 지나친 서정이라 생각한다(물론 서정이 나쁜 것은 아니다만). 위악이라 할 수도 있고 위계라 할 수도 있겠는데, Burzum이 당대의 여느 밴드들보다도 인정받을 수 있었던 부분은 그런 점이 아니겠나.

그렇다면 이들은 적어도 근래의 Burzum보다도 훨씬 오소독스한 편이다. 아니, 블랙메틀의 컨벤션을 매우 충실하게 따라가다 못해 폴란드 스타일보다는 초창기 노르웨이의 느낌을 강하게 주는 음악인데(전작들에서 간혹 보이던 락큰롤적인 리프도 이 앨범에서는 거의 사라진 편이다), post-blackmetal이 범람하는 요새에는 이런 스타일이 생각보다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스타일은 호오가 갈릴 것이나,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분명히 만족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거친 트레몰로를 들려주는 밴드들 중에서도 이만큼 고전적인 스타일을 고수하는 이들은 흔치 않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