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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Literature of Obscure Minds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한빛비즈, 2012]

브랜든 포브스 외 저, 김경주 역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Radiohead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아무래도 내 경우는 그게 밴드의 문제라기보다는 나의 음악편력과 Radiohead가 참 많이 엇나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 "OK Computer" 까지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간혹 듣곤 했던 밴드인데, 본인들은 무시 못 할 자의식을 담아 만들어냈을지는 모르지만 그 이후의 앨범들은 Tangerine Dream이나 Pink Floyd 등 선대의 밴드들의 유산을 자기들 방식으로 뒤틀어낸 음악이라 생각되어서인지 이들에 대한 엄청난 찬사에는 가끔 당혹감까지 느낄 때가 있다. 따지고 보면 이 책을 사게 된 것부터가 Radiohead에 대한 관심보다는 책의 기획의도가 더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어느 밴드에 대한 여러 인물들의 '철학적' 감상 또는 에세이 모음집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보기 쉬운 경우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Radiohead니까 나올 수 있었던 번역서일 것이다. 자유로운 형식이어서인지, 책에 실려 있는 제각각의 글이 일관된 논조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Radiohead를 주된 소재이자, 대중 음악에 대한 논의를 위한 단초로 삼는다는 것 외에는 각각의 글들 사이에는 별다른 공통점도 없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생각보다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각이 묻어나고 있다. 아무래도 대중 문화, 그리고 Thom Yorke의 가사를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위해서인지 실존주의적 시각이 중요한 자리를 잡는다. 아무래도 우리 현실에서 지금 흘러나오고 있는 음악이다 보니 그렇지 않나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 책의 필자들은 Thom의 가사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시각들을 이끌어낸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보드리야르도, 메를로-퐁티도, 마르크스도, 촘스키도 등장한다. 이 쯤 되면 나처럼 아둔한 두뇌의 독자라면 뒷목이 슬슬 뻐근해질 수 있는 수준이겠지만, 글을 그리 어렵게 풀어가지는 않는 게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특히 이 책은 개념 설명에 친절한 편이다). Radiohead의 텍스트의 사회적 함의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Mark Grief의 글에서 이런 면모는 더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Grief의 글에서, Radiohead의 음악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 디지털 시대에서의 인간의 삶에 대해서 보여주는 시도이다. 하긴 Radiohead만큼 후자의 주제에 관심이 많을 밴드는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도 간혹은 이 책이 어쨌든 음악 얘기를 다룬 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멤버들 중 Johnny Greenwood의 작풍이 얼마나 클래식의 그것에 빚지고 있는지(특히 쇼팽), 적어도 "Kid A" 부터는 분명히 나타나다 못해 노골적인 일렉트로닉스의 도입 등의 이야기가 아무래도 일반적인 팬들에게는 더 익숙하게 다가갈 것이다(물론 잡지에 나오는 수준의 얘기보다는 훨씬 이론적이다). 그러다가도 곡 자체의 서사에 더 치중하는 David Dark의 글이나, 음악과는 상관없이 밴드 자신의 행동 윤리에 대한 글에 가까운 Daniel Milsky의 글 같이 훨씬 쉽게 읽히는 글도 있다. 특히 후자의 글은 마치 공정무역 커피를 먹자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주변 지인들을 연상케 하는 어조가 있다. 책 뒷부분에서 좀 더 집중적으로 제시되는 정치적 해석들(물론, Radiohead는 자신들을 비정치적 밴드라고 생각한다고 한 바 있다지만, 과연 진정 '비정치적' 인 밴드가 있겠는가?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은 어쩌면, 전통적인 록 스피릿 내지는 진정성(authenticity) 논의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일독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물론 록 스피릿 논의보다는 훨씬 흥미로운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의문점이라면 Thomas Pynchon의 얘기를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Thom Yorke가 Pynchon의 팬이라는 정도야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실제로도 많은 곡의 가사에 Pynchon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이를테면 'Fog'). 리오타르와 보드리야르, 포스트모더니즘의 얘기를 하면서 이만큼 좋은 소재는 없었을 것인데, 철저하게 "Kid A" 의 텍스트를 탐색하면서도 그 분석은 일견 피상적인 편이다. 어찌 보면 "Kid A" 의 실험성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에 대한 덧붙이는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In Rainbows" 를 중심으로 시뮬라크르를 논하는 Perry Owen Wright의 글은, 과연 자신이 위의 앨범을 듣는 경험의 시뮬라크르를 얘기하는 것인지, 앨범 자체의 시뮬라크르를 얘기하는 것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글쎄, 아무래도 나의 이해가 부족한 탓일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쨌든 '음악' 이 주된 소재가 되는 책이지만, 그런 책들 중에 이만큼 잘 읽히면서도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은 그리 많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게 읽었다. 감명받지는 않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