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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Ash Borer - Bloodlands

[Gilead Media, 2013]

요새의 미국 블랙메틀 밴드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cascadian' 일 것이라는 편견이 생기는 요즘이다. 캘리포니아 출신이니 조금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Ash Borer도 가장 대표적인 'cascadian' 밴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다만 Ash Borer의 음악은 포스트록 물을 많이 먹었던 데뷔작에 비해서는 참 많이 바뀐 편이다. 밴드의 셀프타이틀 데뷔작은 빠른 템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Alcest 생각이 나지 않을 순 없는 스타일이었다. "Cold of Ages" 를 좀 더 정통적으로 변했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겠지만, "Cold of Ages"는 데뷔작에 비해서는 훨씬 어두워지고 포스트록 물을 많이 뺀 앨범이었다. 즉, 통상적인 블랙메틀의 이미지에 좀 더 근접한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통상 'cascadian black metal' 이라는 용어에 붙여지는 이미지는 아니겠지만, 원래 저 용어 자체가 명징한 음악적 경계를 짓는 것은 아니었으니, 기존의 음악적 분류에는 그래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4곡의 대곡으로 구성된 전작과 비슷하게 이 EP 또한 두 대곡으로 구성되어 있다(metal-archives는 트랙리스트를 좀 괴이하게 적어 놨는데, 'Oblivion's Spring' 과 'Dirge/Purgation'의 두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기다 20분에 가까운 뒤의 곡이 더 길다). 특이한 점은 이 EP 앨범이 원테이크로 녹음되었다는 점인데, 물론 철저히 계산된 후에 녹음된 것일 테니 곡은 그에 비해서는 훨씬 복잡한 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대곡이고, 긴 호흡으로 리프를 진행하는 만큼 변화무쌍한 스타일은 못 된다. 주된 변화는 템포체인지에서 촉발되는데, 기본적으로 밴드는 황량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만큼, 이런 변화는 곡에 다이나믹을 부여하는 역할 정도에 머무른다. 음을 정확하게 짚어내다가도 거친 톤의 무조적 트레몰로까지 이어지는 리프도 간혹은 이런 역할에 동조한다. 이들이 좀 더 단순한 편이기는 하지만, 이들과 비슷한 류의 방법론을 취한 유명한 밴드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출신이 틀리기는 하지만, Blut aus Nord와 꽤 비슷한 데가 있다고 생각한다("The Work Which Transforms God" 앨범). 확실히 이 EP는 "Cold of Ages" 보다도 차갑다.

'꽤 변화가 잦은' 리듬 파트를 언급했는데, 사실 의외스러울 정도로 드럼은 전작들에 비해서도 단순화된 편이다. 앨범의 드럼 패턴은 꽤 일반적인 형태를 따라가는 편인데, 물론 빠르게 몰아치는 부분에서는 역시 다이나믹에 기여하긴 하지만 가장 정통적인 스타일에 가까운 편이다(뭐 이 앨범에서는 이런 게 더 어울릴 수는 있겠다만). 그래서인지 앨범은 구체적인 서사를 재현한다기보다는 명확한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집중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전작들에 비해서 앰비언스가 좀 더 강조된 것도 의도적일 것이다('Dirge/Purgation' 의 신서사이저는 괜히 삽입되었을 리가 없다). 좀 더 공간감이 강한 'Dirge/Purgation' 에서는 데뷔작의 슈게이징 리프는 물론, 피드백까지 등장한다. 

다만 그렇다고 이 EP를 '어두운 블랙메틀 앨범' 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이 'cascadian' 이라는 걸 다시 잠깐 떠올려 보자. 이 앨범이 밝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본래의 블랙메틀의 전형에서는 한참 멀어져 있는 앨범이다(Blut aus Nord를 언급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긴 하다). 앨범의 스펙트럼도 사실 긴 호흡으로 계속해서 변화를 가져가는 만큼 꽤나 분명한 편이다. 그런 점에서는 "Cold of Ages" 에도 근접해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밴드가 전작들에 비해서도 좀 더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정도의 차이는 명확하다. 그런 만큼, 이 앨범이 청자들에게 줄 이미지는 아무래도 개개인들에게 맡겨 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황량하다' 는 정도로 얘기해 둔다면 아마도 맞을 것이다. 생각보다는 좋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