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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enal of the Left/Translations

A Blaze in the North American Sky (1)

Believer 지에 2008년에 실렸던, 미국 블랙메틀 씬에 대하여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 글. 그런데 아무래도 초반부에 초창기 블랙메틀 얘기를 해서인지 정작 초반에는 미국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인디 록 페스티벌에 가서 Snorre Ruch를 무슨 수로 만났는지 좀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다.

A Blaze in the North American Sky (2)
A Blaze in the North American Sky (3)
A Blaze in the North American Sky (4)


written by Brandon Stosuy


1년 하고도 조금 더 전에, 노르웨이 Trondheim에서 하는, 주로 인디 록 밴드들이 참여하는 - 메틀 밴드들은 참여하지 않는 - 페스티벌을 갈 기회가 있었고, 거기서 Snorre Ruch - Blackthorn - 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1993년 10월, 동료 블랙메틀 뮤지션인 Oystein Aarseth(역주 - Mayhem의 Euronymous를 말하는 것임. 하긴 여기 오시는 분들 중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겠지만)의 살해에 관여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Ruch가 살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살인자, Kristian 'Varg' Vikernes를 Oslo의 Araseth의 아파트로 데려다 주면서 Varg를 돕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알려진 얘기에 따르면, Aarseth는 속옷 차림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Varg는 그와 마주섰고, 계단으로 도망가는 그를 쫓았으며, 무딘 칼로 그를 23번이나 난자했다. Aarseth의 이마에 치명상이 있었다. Vikernes가 칼을 뽑자, Aarseth는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Varg의 말을 빌자면, "꼴사납기 그지없었다". Varg에 따르면, Ruch는 살해 현장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Ruch는 "Lords of Chaos" 에서의 인터뷰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었다 : "내가 Oystein의 집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집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고, 곧 Oystein이 밖으로 나왔고, 피투성이가 된 Varg가 그를 쫓아 계단을 내려갔다... 뭔가 엄청 잘못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생각한 건 아파트 안에서 빠르게 그를 처리하는 것이었지, 칼로 수도 없이 찔러서 시끌벅적하게 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을 따라 아파트 앞 공터로 내려갔다." Ruch는 차를 몰고 곧 현장을 떠났다. 그러나 방금 벌어진 일에 그도 엄청나게 흥분해 있었고, 20여 분 동안 Oslo 주변을 계속해서 돌았다. Vikernes는 피 묻은 옷을 호수에 버린 후 차에 탔다.  Ruch는 21살이었고, Aarseth는 25살, Varg는 20살이었다.

Vikernes는 살인 및 수 차례의 방화(특히, 교회 방화) 혐의로 21년형을 선고받고 Tromso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는 2003년에 탈옥을 시도하여 형기가 연장되었으며, 2006년에는 가석방을 거부당했다(그는 2008년 4월 가석방 재심사가 예정되어 있으나, 별다른 조치는 행해지지 않고 있다), Ruch는 8년형을 선고받고 90년대 말에 출소하였다.

Varg-Euronymous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노르웨이의 언론과 영국 메틀 매거진 Kerrang!에 대서특필되었고(얼마 뒤에는 Spin 지에도 등장하였다), Vikernes의 선동적인 인터뷰와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웹사이트 운영이 가져온언론과 팬들의 엄청난 반응은 이 사건을 이후에도 계속 회자되도록 하였다.

이제 블랙메틀은 돈이 되는 비즈니스가 되었다 : 2007년에 Vice 지는 5부작 TV 시리즈 "True Norwegian Black Metal" 을 제작했다. 이 시리즈의 감독이었던, 브루클린 출신의 사진작가 Peter Beste는 금년에 상당히 많은 분량의 책 "True Norwegian Black Metal" 을 발표했다. 또한 Varg 및 초창기 노르웨이 블랙메틀러들을 다룬 "Until the Light Takes Us" 다큐멘터리도 발표 예정이다. 다양한 형태의 개작과 Varg 자신의 오락가락하는 진술로 인해, 구체적인 살인 동기가 뭐였는지 단정짓기는 어렵다. Varg는 Aarseth에게 계약 및 로열티 문제로 화가 나 있었다고 한다(Burzum 사이트에서, Varg는 Aarseth의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며 "계약하지 않았냐, 문 열어" 라며 Aarseth를 불렀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살해는 Varg와 Aarseth 간의 씬 내부에서의 갈등으로 인해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초창기 노르웨이 블랙메틀 씬을 세운 주된 인물인 Aarseth는 Oslo에서 Helvete("지옥" 이란 이름임)라는 언더그라운드 메틀 숍과 블랙메틀 레이블 Deathlike Silence Prod. 를 운영했다. 이 레이블은 Vikernes의 Tolkien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블랙메틀 밴드 Burzum을 계약한 레이블이었다. 1984년에 Aarseth는 Mayhem을 결성했고, Ruch가 잠시 기타를, Varg가 (Count Grishnackh라는 이름으로)잠시 베이스를 연주했다. 처음에는 Aarseth가 보컬과 기타를 겸했으나, 곧 일련의 보컬리스트들이 밴드를 거쳐 가기 시작했다(Aarseth가 Mayhem의 전/현 멤버들 중 첫 사망자는 아니었다. 밴드의 악명 높은 스웨덴 출신 보컬리스트 Per Yngve Ohlin - Dead - 는 1991년, 22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1993년 1월, Aarseth가 죽기 몇 달 전, Bergens Tidende는 블랙메틀 씬과 그와 관련된 범죄 혐의들 - 교회 방화, 사타니즘, 멤버들의 음침하기 그지없는 외모 등 - 을 다룬 글인 "We Lit the Fires" 를 실었다. Vikernes가 익명으로 그의 아파트에서 Finn Bjorn Tonder 기자의 인터뷰에 응했다. 수 해가 지난 후, 교회 방화는 노르웨이의 기독교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이교도적 뿌리로 돌아가려는 한 방법으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Varg는 이를 공포를 퍼뜨리고 악마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방화를 설명했다(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허세꾼들이나 쓰는 용어라고 해서 '사타니즘' 이란 말을 쓰기를 거부했다).

Varg는 그 후 체포되었다(그의 말로는, 좀 '과장해서 말했다' 고는 했지만). 그는 그와 Aarseth가 인터뷰를 하는 것이 씬을 알리는 데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결정한 뒤에야 인터뷰에 응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그의 사이트에서 설명했듯이, Varg는 그것을 'Euronymous에게 변화를 원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Aarseth는 잠시 숍을 닫았는데, 이는 Vikernes를 분노케 했다. Vikernes가 보기에는 그것은 Aarseth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숍은 Euronymous가 살해되기 얼마 전인 1993년에 완전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Vikernes는 2004년에 그의 사이트에 다음과 같이 쓰기도 하였다 : "언론이 나에 대해 써갈기는 모든 찌라시들은 그를 덜 중요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갑자기, 그는 이제 더 이상 골수 메틀 씬의 '중심 인물' 이 아니게 되었다."

현재까지 Vikernes는 그가 Aarseth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최소한 한 번 이상, Aarseth가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고 나서 정당방위 차원에서 Aarseth를 칼로 찌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Varg는 Burzum.com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 "그의 실수는 나를 죽이려는 계획에 씬의 사람들 일부를 포함시켰다는 것이었고, 그들이 그 계획을 내게 말해 주었다. 그야 그들을 믿었으니까 계획을 얘기해 줬겠지만, 그들은 확실히 그보다는 내게 더 우호적이었다. 그는 나와 아파트에서 같이 살고 있던 Snorre에게 전화를 했었고, Snorre는 내가 Euronymous가 전화로 뭐라고 하는지 다 들려 주었다. 그는 'Varg는 사라져야 해' 등의 말을 하면서 내가 일전에 다른 이들로부터 들었었던 계획을 얘기하였다."

Snorre는 이제 그 사건들에 대해 얘기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웃기는 얘기들, 사견들, 황당한 얘기들이 있다. 전부 다 나와는 상관없지만 그런 얘기들이 호기심을 끌고, 가십거리가 된다...그 사건이 음악계에서 우리를 널리 알렸지만, 좋게 알려진 건 아니었다. 노르웨이 언론 대부분은 찌라시들이고, 선정적인 헤드라인으로 자꾸만 얘기를 키워 나갔다. 이젠 너무 오래 끌어서 얘기도 지겹다. 뭔가 다른 얘기를 좀 하려고 하면 항상 오해를 사더라."

감옥 생활을 하면서 Varg의 언행은 더 거침없어지고 생각도 급진화되었다. 초창기의 우익적, 반유태주의적, 인종주의적 시각과는 달라진 지 오래다. 그는 나치라는 비난을 털어버리고, 스스로를 'Odalist' 라 부른다(Bergens Tidende는 Varg가 악마주의적 성향을 보이던 1993년에도 그의 아파트에서 나치를 연상케 하는 물건들이 있었음을 지적하곤 있지만). 그는 또한 계속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비록 감옥에서 녹음하고, 블랙메틀의 강력함보다는 다크 앰비언트에 훨씬 기울어 있는 앨범들이지만. 그 앨범들은 그렇게 대단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