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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Kayo Dot - Hubardo

[Self-financed, 2013]

더 말할 필요도 없이, Kayo Dot은 계속 음악 스타일을 변화시켜 왔던, 꾸준하게 실험적인 밴드이긴 했지만, Maudlin of the Well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밴드의 데뷔작인 "Choirs of the Eye" 는 기본적으로 프로그레시브/아방가르드 데스메틀의 범주에서 먼저 이해되곤 했다(물론 나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Toby Driver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기 어려울 일이지만, 이후 "Gamma Knife" 에서 밴드가 다시 예의 그 메틀릭함을 어느 정도 회복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들 좋은 앨범들이었지만 "Dousing Anemone with Cooper Tongue", "Blue Lambency Downward", "Coyote" 에서는 예의 그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찾아볼 수 있을지언정 메틀릭함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말하자면, 밴드는 Maudlin of the Well의 "Bath" 와 "Leaving your Body Map" 중, "Choirs of the Eye" 를 전자의 방식을 발전시켜 만들었다고 한다면, 이후의 앨범들은 후자의 방식을 발전시킨 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Kayo Dot의 괴팍한 작풍은 후자의 앨범을 단순히 발전시킨 부분들보다는 그 방법론들을 아예 전복시켜 버린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볼륨 큰(분량상 더블 앨범이다. 아직 디지털로만 나왔음) 새 앨범은 간만에 나온 "Choirs of the Eye" 에 더 가까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첫 곡인 'The Black Stone' 부터 - 물론, 밴드가 잘 하는 방식대로 곡은 처음에는 좀 더 부드럽고 조용한 분위기로 시작된다 - 간만에 들어보는 Jason Byron의 그로울링이 등장한다. 좀 더 불규칙적으로 진행되었던 이전의 앨범들 - 이를테면 "Blue Lambency Downward" - 에 비해서 이 앨범의 전개 또한 상대적으로 논리적인 편이다. 좀 더 격렬한 형태이긴 하지만 바로 다음 곡인 'Crown in the Muck' 의 프로그레시브한 전개는 이러한 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그 외에도, 호른과 퍼커션의 어찌 들으면 '광적일' 연주가 돋보이는 'Floodgate' 는 누가 들어도 King Crimson이 떠오를만 할 것이다). 워낙에 다양한 스타일들을 얽어 놓는지라 사실 이 앨범에서 '스타일' 을 말하는 것은 큰 의미는 없겠지만, 적어도 앨범의 컨셉트를 이전의 앨범들보다 명확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논리적인 전개가 가능할 것이다. 
 
"Choirs of the Eye" 와 비교했지만, 밴드는 앨범 사이사이에 교묘하게 관조적인 느낌의 곡들을 배치하고 있다. 'The First Matter', 'The Second Operation', 'And He Built Him a Boat' 같은 곡은 - 물론 간단한 전개는 아니지만 - 명확한 멜로디라인과 좀 더 'ethereal' 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 곡들이 앨범의 논리성을 저해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Toby Driver는 "Choirs of the Eye" 앨범 이후로 계속해서 큰 존재감을 이용했던 앰비언트 대신에 포스트록을 이용했다고 생각한다. 얼핏 들으면 Explosions in the Sky, Godspeed You Black Emperor! 같은 이들과도 비슷하게 여겨지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면모도 이미 Maudlin of the Well에서 충분히 보여준 모습이기도 하다. Maudlin of the Well은 처음 나왔을 당시 '데스메틀을 연주하는 Radiohead' 식의 소개를 받았고, 앞에서 얘기한 "Leaving your Body Map" 은 밴드의 'Radiohead적인 측면' 이 극적으로 드러난 앨범이었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Passing the River' 같은 곡은 덜시머 연주까지 등장할 정도로 다채로운 면모를 가진 곡이지만, 정작 곡은 지극히 Radiohead적이다. 
 
그리고 "Choirs of the Eye" 와 스타일적으로 확실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블랙메틀적인 요소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Deathspell Omega 같은 밴드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Floodgate' 나 'Zilda Casogi' 같은 곡의 'chaotic' 한 분위기는 아무래도 원래 Kayo Dot에서 보이던 모습은 아니다. 철저하게 계산된 리듬 파트와 매우 복잡하게 오버더빙된 기타 연주들은 요새의 복잡한 소위 '포스트 블랙메틀' 에 가까울 모습인데, 중간중간 이용되는 앰비언트가 포스트록과 블랙메틀, 데스메틀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듯하다. 메틀릭한 리프가 이어지다가도 앰비언트(물론 개연성 있게 삽입된다)를 이용해서 분위기를 말하자면 '리셋' 하고, 포스트록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거나 색소폰이 난무하는 실험성 짙은 소품이 등장하거나, 하는 셈이다. 
 
사실 이 앨범이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하긴 이들의 앨범 중에 쉽게 들어오는 게 있었던가). 다른 뮤지션들 중에 이 앨범과 비견될 만한 활동을 한 예를 생각하기도 어렵다. (많은 이들이 하는 상상이지만)Robert Fripp이 The Mars Volta에 가입해서 King Crimson에서 하던 것보다 재즈적인 연주를 한다면 조금 비슷하게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그 양반들이 데스메틀/블랙메틀을 할 리는 없으니까 다른 부분도 꽤나 많을 것이다. 다만 사운드 자체로만 얘기한다면, 이 괴팍한 스타일들을 어느 쪽에 치우침 없이 일관성을 갖고 풀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빛나는 멜로디와 연주까지 문득문득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놀라운 앨범이다. 앞으로 이런 감상이 어떻게 변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아무래도 Kayo Dot의 다른 앨범들처럼 내가 가장 즐기는 앨범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른 파일 말고 앨범으로 나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