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Pollution/Metal

Wendy O' Williams - WOW

[Passport, 1984]

Wendy O' Williams의 이름으로 나온 앨범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Wendy의 솔로 활동 앨범이었던 건 아니고 다만 Plasmatics라는 이름의 사용권이 문제되어 그 이름을 쓰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뒤에서 언급하겠지만 Kiss의 멤버들이 참여한 탓에, Plasmatics의 레이블이었던 Capital에서 앨범을 내기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은 Plasmatics의 앨범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Plasmatics는 보통은 펑크 밴드로 알려져 있는 듯하지만, 밴드의 애티튜드나 사운드가 당시의 헤비메틀 사운드(거칠고 펑크적이라는 점에서는 Motorhead와도 비견할 만하다고 생각한다)에 매우 근접했던 밴드임은 잘 알려져 있다. 슬레지 해머를 휘두르기도 했던 Wendy의 무대매너 또한 헤비메틀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사실 "Metal Pristess" EP부터의 밴드의 음악은 펑크보다는 헤비메틀에 더 가까운 스타일일 것이고, "Coup d'Etat" 는 펑크 냄새 짙던 많은 스래쉬메틀 밴드들의 데뷔작(Anthrax나 S.O.D.의 데뷔작 같은 앨범)들을 연상케 하는 면이 있다. 

이 앨범도 물론 80년대 스타일의 헤비메틀이지만, 그래도 Wendy O' Williams라는 이름으로 나왔기 때문인지 이전의 앨범들과는 약간은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는 Plasmatics 본인들이 의도한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앨범에 Kiss의 멤버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Kiss는 Plasmatics에게 자신들 공연의 게스트 참여를 의뢰하였고, 이것이 새로운 팬층을 찾고 있던 Plasmatics의 이해와도 맞아 떨어진 덕에 두 밴드의 공작이 시작되었고, 이에 Gene Simmons가 프로듀싱을 맡아 제작된 앨범이 이 앨범이다. 덕분에 "Coup d'Etat" 의 본격 메틀 사운드보다는 좀 덜 메틀릭한 편이고, 오히려 좀 더 상업적인 분위기의 하드록에 가까워졌다.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아무래도 라디오나 공중파의 호의를 얻어내지 못했던 Plasmatics의 음악이 그래도 '메인스트림에 적응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Wendy가 당시 록계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이는 좀 이색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 앨범에 특별히 '저항적' 인 색채 등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다. Kiss의 커버곡이 두 곡이나 포함되어 있는데다, 아예 첫 곡인 'I Love Sex(and Rock 'N' Roll)' 부터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이 앨범은 기존의 Plasmatics의 음악에 'Kiss풍의' 하드 록의 색채를 입히고 펑크적인 색채를 걷어낸 형태인데다(하긴 "Coup d'Etat" 부터 이미 펑크의 색채는 별로 없긴 했다), 가사도 철저하게 80년대의 '상업적' 하드 록의 모습에 충실하다. 다만 Kiss의 영향 때문인지 이 앨범의 튠은 Plasmatics의 다른 앨범들보다도 훨씬 더 존재감이 강한 편이다. 앨범에 Ace Frehley, Paul Stanley, Eric Carr는 물론(그러니까, Kiss의 멤버들이 통째로 참여한 셈이다) Vinnie Vincent도 게스트로 연주하는 등 전작들에 비하여 꽤나 '스케일이 큰' 사운드를 들려주면서도 리프의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는 곡들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도 하는 부분이었지만, 달리 얘기하자면 밴드의 전면에 나서는 기타와 Wendy의 보컬 외에, 리듬 파트 등 다른 멤버들은 밴드의 음악에서 힘을 점차 잃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덕분에 이 앨범은 사실 앨범 자체만으로는 단단한 구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만, 이 앨범부터 Plasmatics는 종전에 가지고 있던 나름의 '컬트적인' 지위는 더 이상 유지하지 못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후의 앨범들이 다시는 'Plasmatics' 라는 이름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점은(Plasmatics라는 이름을 사용하더라도, Wendy의 이름을 그 앞에 내세워야 했다) 밴드가 이 앨범을 낼 당시 직면했던 딜레마를 일견 보여준다. 그렇기는 하지만 사실, 80년대 하드록/헤비메틀이 이젠 인기와는 거의 담을 쌓게 된 현재, 다시금 들춰보기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을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는 거친 맛이 있는 음악인 만큼 메틀 팬에게도 괜찮겠지만, 사실 Wendy는 이 앨범의 활동으로 그래미 여성 록 보컬 부문 후보에 오를 정도로 유명세를 모았던 만큼(당연히 상은 못 탔음) 일반 팝 팬들도 이 정도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뭐,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