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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Pensées Nocturnes - Nom d'une Pipe!

[Les Acteurs de l'Ombre Prod., 2013]

이 앨범이 밴드의 4번째 앨범임을 생각하면 좀 억울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Way to End는 블랙메틀 밴드였으니까, 그 Vaerohn이 하는 이 밴드를 블랙메틀 밴드라고 생각하는 건 그럴 만한 이유는 있는 것이다(아무래도 Way to End가 이 밴드보다는 더 유명하다). 그리고 당연히 앨범에는 블랙메틀적 요소가 꽤 많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 앨범을 '블랙메틀' 앨범이라고 말하는 건 좀 저어되는 바가 없지 않다. 오히려 단순히 시간으로만 따진다면 이 앨범에서 메틀릭하지 않은 부분이 메틀릭한 부분만큼이나 높은 비중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면모는 앨범의 커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20세기 초반 카바레를 묘사한 듯한 인상을 주는 커버는 일견 평범한 편성의 빅 밴드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그 밴드를 움직이는 (아무래도 카바레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손은 분명 기묘해 보인다. 

앨범의 음악 또한 마치 그 기묘한 '빅 밴드'(말이 빅 밴드지 실제 음악은 그렇지 않다만)가 시작하는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옮겨 놓는 듯한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그 공연은 꽤나 뒤틀려 있는 모양새임을 첫 곡인 'Il a Mange le Soleli' 부터가 보여준다. 곡 서두의 오케스트럴이 마치 스타일을 과장하려는 것처럼 대규모의 사운드를 잠시 보여주다가, 뒤틀린 코드와 스트링이 곡의 중추를 이루면서 진행해 나간다. 첫 곡이 앨범 전반의 인상을 잠시 보여준다면 본격적인 '서사' 는 'La Marionnetiste' 부터 진행된다. 카바레풍의 브라스 사운드가 진행되다가 멜로디는 곧 텐션 강한 블랙메틀풍 리프로 전환되고, 잠시 거친 리프가 암전되는 중반부에는 아련한 느낌의 클래시컬한 피아노 연주와 재즈풍의 색소폰 연주가 등장한다. 이런 류의 곡 구성은 블랙메틀 밴드에게서 본 것은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생소한 것만은 아니다. (헤비함에서 비교할 순 없지만)메틀 리프와 이런 류의 카바레 사운드, 클래식, 재즈 등의 교잡을 시도한 밴드라면 -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였다면 - Devil Doll을 떠올릴 수 있다. 물론 Devil Doll과 이 밴드 둘 다 원맨 밴드이다.

덕분에 곡의 구성은 매우 드라마틱하다. 블랙메틀 리프에서 카바레풍의 아코디언, 허디 거디 연주까지 등장하고, 그 사이를 잇는 색소폰 등은 낭만적인 모습에서 John Zorn에 가까울 정도로 괴팍한 연주까지 들려준다. 앨범에서 섞어내는 스타일의 차이가 큰데다, 밴드는 어쨌든 낭만적이면서도 기묘한 유머가 있었던 옛적의 '카바레' 사운드를 의도한 듯하다. 거기다 밴드는 청자에 대한 배려인지 모르겠지만 그 '낭만성' 을 때로는 매우 과장하여 대규모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물론 오케스트럴의 힘인데, 'Les Hommes a la Moustache' 같은 곡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래서인지 밴드는 '카바레' 를 재현하려 하면서도 카바레 특유의 유머에는 그리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밴드가 매우 다양한 스타일을 앨범에서 재현하려 하면서도 서사 사이사이에서 유발되는 촌극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건 조금은 의외스럽기도 한데, 아무래도 곡의 중심에는 어쨌든 강력한 블랙메틀 리프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귀결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곡은 'La Chimere' 라고 생각한다. 가장 강력한 리프가 등장할 뿐더러, 다른 악기들의 존재감 또한 명확하다.

사실 여러 가지 악기가 어지럽게 어우러지면서도 촌극에는 관심 없이 굵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서인지, 간혹 일부 파트들은 곡의 중간에서 잠시 방향을 잃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충분한 러닝타임이지만 곡을 황급히 마무리하려는 듯한 모습도 있다('La Chimere' 의 후반부, 난 아직 그 블랙메틀 리프가 오케스트럴 사운드로 전환되면서 다시 두 사운드를 병치시키는 부분이 그렇게 갑작스러워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밴드가 앨범에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담아내려고 노력했다는 점하고, 그 결과물은 이런저런 트집에도 불구하고 훌륭하다는 것이다. 괴팍한 카바레 스타일의 블랙메틀 사운드, 를 재현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런 스타일로 이 정도의 성취를 보여준 앨범으로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건 거의 없다. 아마도 Arcturus의 "La Masquerade Infernale"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 이상은 각자의 판단에 남겨두는 게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