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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Sieges Even - The Art of Navigating by the Stars

[Inside Out, 2005]

유감스럽게도, Sieges Even이 가장 강력한 인상을 보여줬던 것은 아무래도 데뷔작인 "Life Cycles" 일 것이다. 프로그레시브 메틀(굳이 말하자면, 스래쉬메틀의 경향성을 분명히 가진 종류의) 마일스톤처럼 되어 버린 앨범은, 데뷔작다운 어느 정도의 치기와, 같은 독일 출신의 Mekong Delta와 비교되면서 밴드의 아이덴티티를 결정지어 버렸는데, 밴드의 그 이후의 행보는 물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가시밭길이라면 가시밭길이라 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물론 그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인데, 국내에도 발매되었던 "Steps" 는, 이전의 사운드와는 천지 차이의 내용물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그 앨범의 내용물이 Rush나 Fates Warning 같은 이들과 비교될 수 있었다면, "A Sense of Change" 부터는 아마도 이조차 포기할 만한 음악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스트링으로 점철된 동명 타이틀곡은, 그 완성도를 떠나서, 충격적이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내부에서도 충돌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이끌었던(아마도 그렇다고 생각되는) Markus Steffen이 1992년 비스바덴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밴드를 등지고, Oliver와 Alex가 주도된 밴드는 "Sophisticated" 와 "Uneven" 을 내놓았다. 분명히 이전에 비해 헤비해진 사운드였고, Oliver와 Alex는 각자 Blind Guardian과 Rhapsody에서도 활동하나(Markus와의 분명한 차이점이다), 물론 이들은 Sieges Even과는 판이한 스타일이다. 그러던 와중에, Markus와의 재결합으로 나온 이 앨범은, 어느 정도 그 스타일은 예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Andre Matos와의 Looking-Glass-Self 이후에 새로운 보컬리스트 Arno를 받아들인 뒤의 첫 앨범인 본작은, 결론부터 말한다면 다시 "Steps" 와 "A Sense of Change" 로 회귀하는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밴드의 방향성은 예전과 분명히 이어진다. Valparaiso라는 이름을 버리고 다시 Sieges Even이라는 예전의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Herde가 보컬이던 시절에 제기되던 '문제점' 또한 당연히, 보컬리스트의 교체로 찾아보기 힘들다. 각각 Hume과 Camus의 경구로 시작하던 "Steps" 와 "A Sense of Change" 만큼이나 진지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가장 중요한 것은, Markus와 Holzwarth 형제의 재결합이 예상보다 훨씬 우호적인 것으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모든 파트가 매우 조화롭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밴드의 케미스트리가 얼마나 정돈되어 있는지를 아마도 보여줄 것이다. Arno의 보컬은 AOR에서 들을 법할 정도로 부드러운 분위기도 소화하지만, Holzwarth 형제의 리듬워크는 그런 분위기만으로 밀고 나가기에는 지나치게 괴팍하다. 그 사이를 Markus의 '넘실거리는' 기타가 훌륭하게 조율한다. Blind Guardian과 Rhapsody 출신의 멤버는 물론, "Life Cycles" 에서 그 누구에 못지 않을 정도로 괴팍한 리프를 연주했던 기타리스트가 성질을 죽이고 같이 잘 어울린다, 는 사실 자체가 어찌 보면 놀라운 것이다. 시종일관한 분위기와 내부의 복잡한 변화를 동시에 보여주는 'Unbreakable' 은 이런 면에서, '재결성된' Sieges Even의 송가일 것이다. 비록 'Unbreakable' 을 가장 먼저 예시하긴 했지만, 같은 의미에서 이 앨범의 모든 수록곡은 각자가 밴드의 새로운 모습을 상징할 수 있다. 클린 톤으로만 이루어진 사운드가 어디까지 강력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The Lonely Views of Condors' 라든가, 어찌 보면 스스로를 회고하는 것 같이도 들리는 'To the Ones Who Have Failed'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