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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Kalisia - Cybion

[Self-financed, 2009]


Kalisia는 사실 그리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고 할 만한 밴드는 아니고, 금년 초에 자주반으로 낸 본작 외에 97년께에 MCD "Skies" 를 냈을 뿐인 프랑스 밴드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밴드의 본작에 참여한 게스트들은 이례적일 정도로 화려하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보컬에 Angela Gossow(Arch Enemy), Arjen Lucassen(Ayreon - 이 분이 왜 기타를 안 치고 노래를 부르셨는지는..), David Scott McBee(Shock Opera) 기타에 Paul Masvidal(Cynic), Tony MacLean(To-Mera), 프로듀서에 Andy Sneap이 가장 눈에 띄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특히 눈에 띄는 이라면 아무래도 장르가 장르인 만큼, Forest Stream의 Sonm이 역시 마이크를 잡고 있다는 것과, (다른 게스트들에 비해 중량감이 확실히 덜하지만)프랑스 밴드이다 보니 S.U.P.의 Ludovic Loex가 참여하고 있는 정도. 그러나, 이상의 게스트들을 끌어들일 정도라는 점에서 대충은 보여지는 바지만, 이들은 94년에 결성되어 지금껏 활동하는 베테랑 밴드로서, 96년의 "Skies" 가 (내가 아는)유일작이지만 유럽에서 가장 프로그레시브한 데스 메틀 밴드 중 하나였다. 밴드의 브레인인 Brett Caldas-Lima가 To-Mera나 Megadeth의 앨범 작업 및, Cynic의 유럽 투어에도 참여했다는 점 정도를 정보로 덧붙인다.

그리고, "Cybion" 은 매우 보기 드문, 화려한 게스트들을 끌어들인 값을 정말 제대로 하는 뛰어난 앨범이다. Arjen Lucassen이 게스트로 참여한 것이 영향을 주지는 않았겠지만, 이들과 비교되는 것은 아무래도 Ayreon이다. 프로그레시브하면서 드라마틱한 구성을 취하는 컨셉트 앨범이나, 앨범을 길게 끌고 나가면서 종종 호흡을 잃어버리는 Ayreon과 비교할 때(물론, 이는 나의 생각일 뿐이다) "Cybion" 은 아주 모범적인 편이다. Revelation, Elevation, Regression, Extinction의 4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파트의 곡은 모두 두 단어의 제목이고, 파트별로 A, B, C, D로 시작하는 단어로만 제목을 시작하고 있는데, 독자적인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파트 간의 긴밀함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보기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곡은 각각 나뉘어져 있지만, 기승전결의 구별을 꽤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하나의 대곡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Skies" 에서는 기본적으로 멜로딕 데스라고 할 수 있지만 프로그레시브한 감이 강한 음악이었다면, 본작에서의 장르간의 교잡은 더욱 심해져서, 더 이상은 데스메틀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Brett의 그로울링 보컬이 기본이 되고 있는지라, 그로울링 보컬에 거부감이 있다면 여전히 문제는 있겠지만)기본적으로 '메틀릭' 함을 잃지 않는 상황에서의 스타일의 변화가 이루어지고는 있는데, 본작에서 보여주는 변화는 여느 밴드나 프로젝트에서 보여주기 힘든 정도의 것이다. 본작의 스페셜 에디션에 실려 있는 보너스 CD에 실린 커버곡이 Dream Theater, Emperor, Cynic, Loudblast의 곡이라는 것은 밴드가 매우 다양한 실험을 의도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로피언 파워 메틀에 가까운 부분도 있으나, 인더스트리얼의 요소 또한 분명히 나타나고 있고,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Blinded Addict" 는 색소폰 연주를 등장시키고 있으며, 앨범의 전체적 테마를 제시하고 있는 "Reveleation" 파트 이후부터는 재즈적인 요소가 앨범 후반부로 갈수록 강해지는 편이다. 중간중간 오케스트럴 파트와 함께 강한 브레이크를 삽입하여 복잡한 구성을 의도하는데, '오케스트럴' 하면서도 앨범 전체적으로 코러스를 자주 등장시키지는 않는다는 부분이, 크지는 않지만(코러스가 없는 게 아니니) 특징적으로 들린다. Dream Theater 생각이 나는 것은 당연한데, "Images and Words" 가 아닌 "Awake" 생각이 난다는 것은 나로서는 반가운 점이다. '멜로딕 데스' 의 형식에 지나치게 천착하는 면이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나처럼 멜로딕 데스를 NWOBHM의 파워/스피드 업그레이드 정도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라면 이는 큰 단점이 되지 않는다.

가사는 인류가 지금보다 매우 높은 고도의 기술 수준에 이르른 미래적인 이야기의 컨셉트이다. (이것도 Ayreon이 자주 쓰는 이야기이다) 다만, Ayreon의 가사에 비해서는 이들의 가사가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려운 편이다. 굳이 비슷한 외계인 이야기라도 H. G. Wells의 이야기를 읽다가 Gong 식의 (유머 잔뜩 섞인)가사를 읽는 기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특히나 Arken 외계인이 등장하는 부분은, 무슨 Magma 따라하는 마냥 Kal 언어라는 새로운 말을 등장시킨다. 실제로 Brett은 이 앨범 작업에 걸린 10년 이상의 시간 중 상당한 부분을 이 언어에 투자하였고, 실제로 존재하는 여러 언어들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는데, Magma의 앨범을 재미있게 듣는 이라면 이 언어를 '공부' 하며 앨범을 듣는 것이 꽤 즐거운 일임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서사의 존재를 전제하는 컨셉트 앨범에 있어서(나는 프로그레시브라면 기본적인 서사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지만) 최고의 문제점은 아마도, 일련의 파트에서 이 부분이 존재해야 하는가, 이 부분은 이 정도로 테크니컬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의 당위성일 것이다. 70분이 넘어가는 분량을 20곡으로 나누어 수록한 앨범이라 그런지 어느 정도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느껴진다. (아마도 위의 '멜로딕 데스에 천착한다' 는 이는 이렇게 생각한 듯 싶지만)강한 브레이크와 함께 급작스러운 변화를 주는 건 좋은데, 그 변화가 지나치게 평이한 부분이 몇몇 있다는 정도가 그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개연성을 곡의 맥락과 함께 생각한다면, 이 앨범이 보여주는 각 파트 간의 놀라운 개연성은 이러한 당위성의 부족을 수긍할 수 있도록 한다. 초현실주의 회화의 감상에 있어서, 그 내용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은 그 회화의 가치와는 별개인 것처럼. 아마도,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2009년 최고의 프로그레시브 메틀 앨범은 내 경우에는 본작일 것이라 생각된다.

참고로, 본작은 보너스 CD의 가치가 상당하니 되도록이면 2CD 버전으로 구하기 바란다. 다만 "Skies" 는 아직 Adipocere 발매 오리지널 버전을 구할 수 있는 만큼, 원하는 분은 잘 찾아보심이 좋을지도. 보너스 CD의 수록곡은 다음과 같다.

Track 1 - 4("Skies" demo)
1. Tower of Vanities
2. Chimera
3. Lost Soul
4. The Mental Frames Part 1
Track 5 - 8(covers)
5. How Could I(Cynic cover)
6. A Fortune in Lies(Dream Theater cover)
7. I Am the Black Wizards(Emperor cover)
8. This Dazzling Abyss(Loudblast c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