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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ious Trauma/Personnel

술, 셀러브리티

아직은 나이를 운운할 때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를 먹어 간다고, 늦은 시각에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20대 초반의 몸은 아니니까) 그래도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간혹은 필요한 일이고, 주당은 못 되지만 그런 자리는 보통은 아직까지는 즐겁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물론 그런 술자리는 대부분(이 아니라 사실상 전부) 남자들만 모인 자리가 되는데, 농담삼아서라도 아쉬움의 토로는 자주 나오는 편이다. 계몽주의 시대의 '시민이셨던' 칸트도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 에서, 모임에 여성이 나오는 것이 그 모임을 풍요롭게 해 줌은 토로한 바 있다 - 물론 그 책의 중점은 그런 부분은 아니지만. 하긴, 콜린 윌슨은 칸트도 "신 엘로이즈" 는 읽었을 것이라고 했으렸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 한 얘기였는데, "그럼 저 광고 포스터들이라도 보면서 참아라." 물론 이미지로 만족하는 결과인데, 결론적으로는 당시의 상황에서는 '이성 술 친구가 필요한' 친구들에게는 당장 최선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왜 주류 광고 포스터에는 그리도 여성이 많이 나올까.(특히 소주의 경우) 사실 남성이 더 술을 많이 먹기 때문에, 라고 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을 경험적으로 봐서는, 그 얘기가 그리 틀린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광고의 기능이라면, 모델이 이 상품을 '권하면' 그 물건이 괜찮을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 구입하게 되는 것이 내 상식 선에서는 기본적인 것이 아닐까. 자 -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술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그 모델들이 술을 권하는 모습을 보고 그 술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암만 소주 광고이지만, 이 광고를 보고 누가 그녀가 주당일 거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러고 보면 그런 포스터 속의 셀러브리티들은, '칸트도 어쩔 수 없었던' 그런 점들을 처음부터 의도하는 것일 것이다. 에우리피데스는 디오니소스와 그의 숭배자들인 여신도들의 흥청망청한 주연의 모습을 그려낸 바 있었는데, 아마도 - 펜테우스의 공격에 비출 때 - 이는 합리에 반하는 향락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문명을 위한 에로스의 억압은 타나토스 앞에 인류 스스로를 무장해제시켰다는 점에서 프로이트가 사실이었다면, 본능이나 성과 같은, 독자적으로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할, 잠재적으로는 무질서할 힘들에 합리성은 기초할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펜테우스에 잠재하고 있는 가능성인 셈이다. 노동의 피로함을 달래고 망각시키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최면. 물론 이는 자체로서 나쁘다고 볼 것이 아니다. 적당히 주신의 환상에 취하는 것은, 우리의 합리성 뒤에 숨겨져 있을 수도 있는 잔혹함을 감출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셀러브리티는 그러한 우리의 욕망을 가장 '합법적인 방식으로' 사회화시킨 셈이다. 물론 이는 '성의 상품화' 와는 별개의 경계일 것이다.

술 마시는 얘기에 뭐 이리 쓸데없는 말이 많은가? 맞다. 그렇다면 적당히 즐기시라.

post script :
이 포스트는 이상의 이미지들을 올리기 위한 실용문에 가깝다. (그러고 보면 참 쓸데없는 말이 많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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