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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enal of the Left/Translations

How Black is Black Metal (3)

Kevin Coogan의 글. 세 번째 부분.

How Black is Black Metal (1)
How Black is Black Metal (2)
How Black is Black Metal (4)
How Black is Black Metal (5)
How Black is Black Metal (6)



T(ech)G(nosis)

TG의 폭력적인 전체주의적 이미지에 대한 열광은 그렇지만 정치가 아닌, 인더스트리얼 문화에 근거한 것이다. 디스코가 신체, 관능성, 육체적 쾌락에 대한 찬미를 보낼 당시, 인더스트리얼 문화는 신체에 대한 거의 그노시스적인 경멸을 보내고 있었다. 록 음악이 또 다른 팝 문화에 대한 마취제인 양 변질되었다는 믿음 하에, TG의 사운드는 의도적으로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Beatles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 "당신이 필요한 모든 것은 사랑이다." TG는 조롱하듯이 그 청각적 공격을 "고통을 통한 엔터테인먼트" 라고 정의했다.

Lou Reed의 'Metal Machine Music' 부터 시작해서, 인더스트리얼 문화는 썩어가고 있는 도시의 콘크리트 상자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의미없는 삶에 대해 울부짖는 듯한 사운드를 요구했다. 1900년대 초반의 미래파들과 같이, 그것은 현대의 삶의 반전통적(tradition-smashing)인 기술적 진보에 사로잡혀 있었다 - 제트 엔진의 굉음이나, 공습 사이렌의 장벽, 지하철의 굉음과 섬광 등이 청각적 영감의 원천이 된다. Cosey Fanni Tutti는 TG의 인더스트리얼은 "단지 음악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학이었다. 그것은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성이었다. 그것은 지금 인더스트리얼이라 불리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것은 반음악(anti-music)이었다." 고 회고하였다. 그러나 다른 낙관적이고 유토피아적 미래주의자 선조들과 달리, TG와 그들의 팬들은 미래에 대한 염세주의로 가득했다.

이 디스토피아적인 영국 "인더스트리얼주의자" 들은 대중 소비 사회를, Guy Debord의 말을 인용하여, 모두를 그 안에 온순한 몽유병자처럼 사로잡히도록 억압하는 "영속적인 아편 전쟁(permanent opium war)" 이라 보았다. 미디어라는 대사제의 요새를 넘어 상상으로 나아가려는 누구에게도, "엔터테인먼트" 의 제공은 적과의 공조와 같이 보여졌다. 아티스트의 과제는 문화적/사회적 터부를 깨부숨으로써 인간의 정신을 통제하는 기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TG는 갓 잡은 양의 머리에서 꺼낸 뇌를 먹는 등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행하였던 SPK 같은 밴드들과도 투어를 돌았다.

터부를 깨는 자에 대한 인더스트리얼적 열광은 악과 증오가 선과 사랑보다 더 강한 것이 된 세상에서 우상과 같은 인물이 된 히틀러나 찰스 맨슨과 같은 카리스마적 리더에게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이전 시대의 사드 후작과 같이, 중간 계급의 도덕성에 대한 두려움 없는 파괴자들이었고, 히틀러나 찰스 맨슨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괴팍한 롤 모델들이었기 때문이다. 인더스트리얼 문화의 순전한 삭막함은 미래에 대한 염세적 전망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제공했다. 악이 선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이라면, 악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다. 진정 홉스적인 세상에서 소셜 다위니스트들과 맬서스주의자들은, 그들이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역설한 점에서 옳았다.

"Countercultural Fascism" and the Radical Evolans

인더스트리얼 문화에서의 절망에 대한 의미는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유사한 웅대하나 염세적인 세계관은 1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나타난 바 있다. 1920년대 초반에 "반문화적 파시즘" 이라 불리는 사조가 나타났다. 운동으로라기보다는 감수성적인 것으로서, 그것은 니체의 개인의 권력에의 의지에 대한 생각과, 그의 도덕성에 대한 경멸을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에 대한 믿음과 결합시켰다. 미래파의 선구자인 마리네티나 에즈라 파운드, 가브리엘레 다눈치오, 에른스트 융어 등과 같은 아티스트들은 보수주의의 전통적인 형태들에 대해 그들이 사회민주주의, 합리주의, 계몽주의에 대해 갖는 것과 같은 경멸감을 가지고 있었다. Genesis가 진짜 반문화적 파시스트는 아니었지만, TG는 자유로운 보히미아적(역주 : 원문은 'haule bohemia' 이지만, 이는 haute bohemia의 오기로 보인다) 측면에 있어 반문화적 파시스트의 재현과 같은 면을 지니고 있었다.

"Herbert Marcuse" of the postwar European far right

Abraxas 조직과 관련된 또 다른 부류의 생각들은 일찌기 Franco Freda라는 이탈리아의 급진적 파시스트에 의해 전파된 바 있었다. 기존의 사회 구조에 대한 우익/좌악의 테러리즘적 공격의 결합을 주창했던 Freda는 그의 생각을 바이에른 레겐스부르크에서의 극우 유럽혁명전선(European Revolutionary Front)의 1969년 회의에서 대략적으로 제시했다. 뒤에 "La disintegrazione del sistema(The Disintegration of the System)" 이란 이름으로 출판된 그의 연설에서, Freda는 "부르주아 세계의 불안한 체계" 는 극좌와 동맹한 극우 "정치 전사" 들의 극도의 폭력에 의해 교란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Freda는, 전후 유럽 극우에 있어서의 '허버트 마르쿠제' 였던, 이탈리아의 보수주의적/혁명적 이론가였던 Julius Evola로부터 그의 전략의 본질적인 부분을 가져왔다. Evola는 현대 대중 사회의 전면적 붕괴가 거부할 것이 아닌, 오히려 환영할 만한 것이라고 "Cavalcare la tigre(Riding the Tiger)" 등의 저작에서 주장하였다. Freda와 같은 급진적인 에볼라주의자(Radical Evolans)들은 사회 체계에 대한 폭력적인 충격만이 현대의 질서의 불가피한 붕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Over the TOPY

Genesis는 그의 "미학적 테러리스트" 로서의 무기로, 권총과 플라스틱 폭탄이 아닌 예술과 음악을 선택하였다. 그는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대중 문화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며, 그것의 그들의 과제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상태를 파괴하는 것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문화적 충격 요법에 대한 계속적 탐구에 있어, 그는 선동적 주장을 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예를 들면, 그의 글 "Giftgas" 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쓴다 :

당신이 누군가를 죽임을 통해, 당신은 당신의 실존을 확인하는 것이다. 당신의 인식을 확장하는 것이다.... 당신의 사회적 관심사를 관점에 반영하지 말라. 당신이 올바른 태도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면, 당신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행동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는 보복의 감추어진 두려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은 뒤에 Michael Moynihan이 가져오게 되는 반문화 파시즘적 환경에 의해 재현되게 된다.

TG는 1981년 여름에 해체되었다. Genesis와 Sleazy는 이후 Psychic TV와 Temple of Psychic Youth(TOPY)를 결성하게 된다. Genesis의 TOPY의 아이디어는 그의 영웅 중 하나인 Aleister Crowley로부터 온 것이다. 타블로이드 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사악한 자" 라고 칭해진 영국의 마법사였던(역주 : 원문은 sex magician이라고 표현) 그는 Ordo Templis Orientis(OTO)라 불리던 마술적 체제를 이끌었다. 그는 마약, 소환 마술(ritual magic), 사도-마조히즘적 섹스, 동성애, 기타 그가 그와 그 추종자들의 세속적 의식을 마술적으로 형성하기 위한 모든 것을 이용했다. Genesis는 TOPY를 새로운 발전된 형태의 OTO로서, 미학적/마술적/준군사적/정치적 질서로서 보았다. 또한 TOPY는 찰스 맨슨, 짐 존스, 최후심판교회(Process Church), 히틀러와 같이, Genesis가 그와는 다른 강력한 마술사라고 본 이들을 페티쉬화하였다 :

이는, 최소한, 히틀러와 같인 몇몇 이들이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는 것은 꽤나 짜릿한 일이다... 당신은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기회들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히틀러와 같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그 모두를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마술의 힘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이 히틀러와 같은 이가 10년 동안 그런 것들을 할 수 있었던 방식이다. 그는 10년 동안 기병대 수준에서 우주 여행에까지 나아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완전히 마술의 법칙을 받아들였으나, 잘못 적용했다. 이는 그가 진정으로 다른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큰 실패의 이유이다... 기본적으로 그는 아마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의 장을 선택했다. 그리고 정치의 장을 선택할 경우... 매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것은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규모의 것이기 때문이다 - 그것이 내가 대중적 차원이 아닌, 개인적 차원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 그리고 바로 내가 개인에 대해 관심을 가져 온 이유는 그것이 반파시즘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항상 파시스트라고 비난받고, 나는 항상 파시스트인 것은 대중이라고 생각한다 - 대중 운동과 대중의 사유 체계 말이다.

TOPY는 다시 그 힘을 얻은 청년 문화의 새로운 맹아로서 활동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Genesis는 항상 "미학적 테러리스트" 로서 남아 있었다. Moynihan이 Genesis를 "사실은 히피" 에 불과하다고 비난한 것은 일견 타당한 면이 있는데, 이는 Genesis가 그의 프로젝트를 반파시스트적인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Boyd Rice는, 그가 Abraxas를 결성할 때 Genesis의 미학적/정치적 질서에 대한 생각에서 일부를 차용하였음이 명백하다.

Cruel Cool

가상의 악은 낭만적이고 다채로운 것이다 ; 진정한 악은 우울하면서도 단조롭고, 황량하며, 지루한 것이다. 가장의 선은 지루한 것이다 ; 진정한 선은 항상 새롭고, 놀라우며, 중독적이다. - Simone Weil

미국에서의 인더스트리얼 문화는 그 영국적 변용에서의 음침할 정도의 복잡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미국에서는 이는 존 워터스의 의식적으로 반정치적인 "쓰레기 미학(trash aesthetics)", 그랑 귀뇰 풍의 슬래셔 무비,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의 인텔리적 학계의 해체 등을 포함하는 스타일들의 잡동사니들로 뒤범벅된 채로 남아 있다. 프랑스의 영향은 미셸 푸코와 같은 문화적 아이콘들을 통한 문화적 좌파의 입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차가운 영국 인더스트리얼주의자들과 달리, Karen Finley와 같은 초월적인 좌파적 "예술 노동자(art workers)" 들은 부르주아를 놀래키고(epater les bourgeois), 페미니즘과 게이 해방과 같은 바람직한 의도를 전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