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Pollution/Non-Metal

Various - Encores, Legends, Paradox : A Tribute to the Music of ELP

[Magna Carta, 1999]

뭐, 내가 그렇다는 얘기이지만 많이들 공감할 것 같다. Magna Carta는 그 소속 밴드들의 앨범 외에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의 트리뷰트 앨범을 다수 발매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앨범들 가운데 사실 원곡의 아우라를 제대로 재현하거나, 멋들어진 새로운('새로운' 보다는, '멋들어진' 에 방점을 찍도록 하자) 해석을 부여하는 등의 경우는 보기 어렵다. 하긴 트리뷰트될 정도의 뛰어난 밴드들의 위계를 재현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작업이다. 그 후배가 그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의 기량에 미달한다면 - 이게 수량화가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 아마 불가능한 작업일 것이다. 그런데 이 레이블에서 나오는 트리뷰트 앨범들은 최고의 기량을 가진 후배들 및, 상당수의 동시대의 다른 뛰어난 프로그레시브 뮤지션을 참여시켜 왔다는 걸 생각하면, 그 앨범들에는 다른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내 경우는 이런 문제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개인으로서 뛰어난 뮤지션들의 팀워크와, 다른 하나는 그 후배와 선배 간의 시간의 흐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이 레이블의 트리뷰트 앨범 기획 중에서 가장 성공적일 것이다. Pink Floyd나 Genesis, Jethro Tull의 트리뷰트가 나온 바 있었지만, 아무래도 EL&P는 위의 그 첫 번째 문제에 있어서, 앞의 경우보다는 좀 더 자유로울 것이다. 위의 밴드들의 연주도 인상적이었지만, 아무래도 EL&P는 적어도 비르투오시티에 있어서는 위의 밴드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었던 경우일 것이다. 사실 이 앨범에 참여하고 있는 상당수의 뮤지션이 프로그레시브 메틀을 연주하는 것을 생각할 때, EL&P는 이런 뮤지션들이 가장 덜 간극을 느낄 수 있고 개개의 존재감을 더 각인시키기 용이한 경우일 것이다. 물론 디스토션을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나는 - 역시 좀 아쉬웠던 - Yes의 트리뷰트도 위 Pink Floyd 등의 트리뷰트 앨범보다는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이 앨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곡이 Peter Banks가 연주한 'Astral Traveller' 라는 것이 앨범의 한계이겠지만.)

특히나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 가운데 빛나는 것은 Jordan Rudess이다. 나는 원래 Dream Theater에서의 Jordan의 연주에 대해 불만이 좀 있는 편이다.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Jordan은 지나치게 튀는 연주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는 게 문제였는데, Keith Emerson의 공격적인 키보드는 그런 Jordan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제격인 과업이다. 아마도 가장 빛나는 트랙은 첫 곡인 'Karn Evil 9, 1st impression' 일 것이다(당연히 2, 3 impression은 생략된 버전이다) Jordan의 연주를 뒷받침하는 것이 Simon Phillips의 드럼이라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고, 돋보이는 기타 연주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Mark Wood(추억의 이름이다 거 참)의 바이올린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역시 같은 의미에서 'Hoedown' 이 눈에 띄는 곡인데, 코플랜드의 원곡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활기찬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Karn Evil 9' 와는 달리 Mark Bonilla의 기타와 Jerry Goodman(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는 위대했다)의 바이올린이 키보드와 함께 어지러운 연주를 이어가는데, 클래식(뭐 20세기의 곡이긴 하다만) 원곡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록적인 곡이다. 어찌 보면 이 앨범에서는 가장 EL&P다운 곡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Tarkus" 앨범에 수록되었던 곡은 원곡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Trent Gardner가 키보드를 연주한 'Bitches Crystal' 은 당연히도 Magellan의 색채를 강하게 보여주고(그리고, 난 트롬본 연주가 사라진 게 좀 불만이다), 일단 보컬인 John Wetton의 목소리가 Greg Lake와는 꽤 틀리다는 게 이유일 것이다. 원곡보다는 좀 나긋나긋해졌지만, 그래도 Pat Mastelotto의 뛰어난 드러밍이 곡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무려 Glenn Hughes가 마이크를 잡고 있는 'Knife Edge' 는 덕분에 원곡보다 좀 더 부드럽고 묵직한 편인데, Erik Norlander의 키보드도 (Rocket Scientists에서야 그렇진 않지만)Emerson의 원곡보다는 상당히 평화로운 분위기인지라 독특한 편이다. 다만 Greg Lake와 같은 힘있는 톤의 보컬이 앨범에 없다는 건 좀 유감이다. (개인적으로 보컬리스트로서 참 싫어하는)Robert Berry나 Wetton, Hughes, James Labrie 등이 참여했지만 보컬에서 힘을 느끼기는 어려울 법하다. EL&P가 워낙에 키보드가 강력한 밴드이긴 했지만.

그래도 원곡의 출중함 덕분인지, 앨범의 수록곡들은 모두 훌륭한 편이다. Robert Berry가 꽤 많은 곡의 어레인지에 손을 댔는데, 원곡과는 틀린 재즈풍의 어프로치(특히나 'Karn Evil 9' 가 그렇다)는 이색적이지만 잘 어울리는 편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요새' 의 후배 뮤지션들이 EL&P의 흔적을 새로이 덧칠하면서도 지워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Mark Robertson과 Niacin의 John Novello의 해먼드 연주 정도가 눈에 띄는 예이지만, 군데군데 프레이즈가 조금씩 뒤틀어져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사실, - 이미 말했지만 - 나는 Robert Berry의 보컬을 싫어하는지라, 처음부터 그 보컬로 시작하는 이 앨범을 듣기 시작하기가 녹록치 않았지만, 그래도 이 앨범이 내가 들어 본 트리뷰트 앨범 중 최상에 속한다는 것은 분명할 듯싶다. 부클렛 처음에 나오는 Keith Emerson의 감사의 말도 그렇지만, 그 선배와 후배 밴드가 참 즐겁게 만들었다는 것이 앨범에서 묻어나는 앨범이고,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적어도 난 별로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