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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Der Blutharsch - Live in Leiden

[WKN, 2010]

Der Blutharsch 같은 그룹의 공연을 본다는 것은 - 국내에서야 기대할 수 없다는 건 물론이고 - 아마 꽤 피곤한 일이 될 것이다. 기실, Death In June과 이들만큼 파시스트 혐의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과연 공연의 성사 여부를 둘러싼 엄청난 논쟁들과, 성사되더라도 공연장을 둘러싸고 벌어질 충돌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 Der Blutharsch의 공연이 얼마나 많은 말썽을 가져왔는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전 포스트인 "Death in June - A Nazi Band?" 를 참고) 2004년 9월 28일 네덜란드의 Leiden에서의 공연은, 그리고 이들의 공연 중에서도 가장 설화가 많았던 경우였다고 전해진다. 공연에 대한 격렬한 반대의 움직임이 있었고, 공연이 성사되었지만 입장하는 청중들은 예의 밴드의 이런 저런 상징물들의 소지를 규제받았다고 한다. Albin은 오랜 활동 동안 스스로 꽤 유머 있는 - 물론 어느 정도 쓴맛이 느껴지는 - 사람임을 입증해 왔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막으려 했던 공연 실황을 버젓이 자신의 레이블에서 앨범으로 내는 것 또한, Albin Julius 식의 유머일 것이다.

그럼에도 Albin은 Der Blutharsch는 정치적 함의를 가진 밴드가 아님을 역설한 바 있었다. 말하자면, 밴드가 사용하던 파시스트를 연상시키는 상징물들은 범유럽적 성향을 표시하는 '심볼' 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상술한 이런 저런 사건들은 그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꽤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사실 Albin의 말대로 밴드가 비정치적이라고 하더라도, 밴드의 음악은 그 의도와는 분리하여 충분히 정치적으로 되었다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중은 창작자의 의도와는 달리 창작물을 전용할 수 있는 것이다. Leiden에서나, 여타 다른 장소에서 계속해서 있어 왔던 충돌은 충분히 정치적인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물론 밴드의 공연은 그 충돌의 바로 중심에 놓여 있는 사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들의 음악은 60년대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 많지만, 반문화적 색채를 가진다는 점에 있어서는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004년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2005년의 "When Did Wonderland End?" 는, 언제나 그랬듯이 도발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밴드는 그 때부터 martial industrial의 범주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근래의 Der Blutharsch가 보여주는 록 밴드의 이미지는 이전의 모습과는 매우 상반되는 것이었다. 물론 이전부터 변화의 양상은 "Time is Thee Enemy" 등에서도 보여지기는 했지만, 사이키델릭하기까지 한 락큰롤을 밴드가 연주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나 "The Philosopher's Stone")Leiden에서의 공연은 'martial' 밴드로서는 거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셈이다. "Live at the Monastery" 등의 라이브 앨범이 공개되었지만, 그 앨범에서의 Der Blutharsch를 martial 그룹이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앨범은 요새의 사이키델리아 이전의 강경했던, 밴드 나름의 정치적 투쟁의 기록이기도 한 것이다. 네오포크식 매력 - 목가적인 부분이 있지만, 묘하게 뒤틀리는 데가 있다 - 이 느껴지는 4~6번 같은 부분도 있지만,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2, 8, 9번과 같은 둔탁한 퍼커션이 돋보이는 곡들이다. (지금 들어보니 14번은 묘하게 락큰롤스럽기도 하다) "Der Blutharsch" EP 등에서와 같은 건조한 스타일은 찾아보기 어려운데, 2004년 라이브이니 밴드는 이미 다양한 스타일을 시험한 이후였으니, 이 정도는 이해하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음악의 라이브 앨범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닌데, 음질도 그리 나쁘지 않으니 좋다. 솔직히 얘기하면, 요새의 Der Blutharsch의 앨범은 락큰롤이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운 편이다. 락큰롤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Der Blutharsch의 락큰롤은 그리 반갑지 않다. 많이들 그럴 것이다.

post script :
Der Blutharsch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10월 26일에 발매되는 DVD가 밴드의 이름으로 발매되는 마지막 타이틀이라고 한다. 락큰롤이 아니길 빈다. 뭐 락큰롤이라도 사기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