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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Thomas Nöla et son Orchestre - The Rose-Tinted Monocle

[Eskimo Films, 2008]

내가 이들을 알게 된 것은 "Vanity is a Sin" 때문이었는데, AIT! 와 함께 Punch 레코드에서 앨범이 나오는데, 워낙에 갖가지 장르들을 혼성모방하던 AIT! 의 음악이 독특했던 탓에 이들에게도 관심이 갔었을 것이다. 사실 Punch는 (원래 이런 군소 레이블 특유의 일관성이라는 게 있듯이)내놓는 음악들이 묘한 성적 페티쉬와 통하고 있는지라, 블랙 유머를 섞어내는 스타일이 아니라면 (그리 강력한 사운드를 사용하진 않지만)상당히 잔혹한 이미지를 구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뒤늦게 듣게 된 전작 "So Long, Lale Andersen" 은 거의 Nick Cave를 연상할 수 있을 정도의, 익숙하지만 음습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면모가 있었다. 매우 괴팍한 친구의 'dark-pop' 정도라고 생각하면 꽤 정확할 것이다. 하긴 Nick Cave도 그리 나긋나긋한 친구는 아닐 것이고, 80년대에는 Nick Cave가 Death in June과 같이 공연을 하기도 했음을 잠시 생각해 보자.

이번 앨범은 또 틀리다. O Paradis의 Demian Recio가 참여해서 그런지, 전작까지 밴드는 상당히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고, 사실 그 부분에서는 다르지 않지만, 앨범 커버(와 제목)에서 엿보이듯이 밴드는 나름의 사이키델리아를 구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꽤나 뒤틀린 포크 록의 사운드이지만 그 안에서 선보이는 것은 꽤나 많다. 왈츠풍의 댄스가 나오기도 하고, 약간 잔혹한 이미지의 카바레 사운드가 나오기도 하고, 60년대풍의 개러지 록 사운드도 나온다. 물론 Nick Cave 풍의 음습함도 여전하다. 악기도 상당히 다양하게 사용된다. 첼로 등은 물론이고, 하프시코드나 비브라폰, 해먼드 오르간 등도 앨범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거대한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어내는 데는 밴드는 별 관심이 없다. 말하자면 밴드는(스스로의 이름이 그렇지만) 상당히 괴팍한 풍모를 보이는 실내악단 스타일을 보여주려고 하는 셈이다. 곡들을 꿰뚫는 일관된 경향을 발견하기는 어렵다(달리 말하면 개별 곡들은 개성 하나만큼은 충분하다)는 점에서 적어도 이들이 어떤 드라마를 의도하고 곡을 배치한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다만 앨범이 어떤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이 드라마를 의도한 것 같지 않다고 했는데, 얼마나 공감을 얻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이 거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이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꽤 익숙한 편이다. 다만 이들 식의 사이키델릭한 '터치' 가 가해졌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대부분은 묘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재료들이다. 그리고 밴드는 이런 재료들을 솔직하게 내놓는다. 말하자면, 이들의 음악은 개성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클리셰 덩어리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신서사이저를 이용한 분위기 가운데 간혹 나오기도 하는 빅 밴드 풍의 연주와 익숙한 포크 멜로디들은 괴이하게 변주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익숙한 느낌들이다. 느닷없이 간혹 튀어나오는 해먼드나 트럼펫 연주가 청자의 정신을 환기하는 편이다.

말하자면 Nick Cave의 유산을 이어받은 사이키델릭 팝이 이 앨범의 모습일 듯하다. "Vanity is a Sin" 에서는 빠른 아티큘레이션의 피아노 연주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 앨범은 그런 부분도 빠져 있다. 잔잔하게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간혹 콘트라스트를 준다는 점에서는 Death in June을 떠올리게도 하지만(특히나 'Pink Room' 에서의 챈트가 그렇다), 사실 Robert Smith를 떠올리게 하는 Thomas의 목소리가 그런 생각을 오래 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지만 이 앨범의 가장 멋진 부분들은 '희망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부분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도취적인, Demian이 참여한 'Mon Petite Bete Noire' 같은 카바레 넘버나 내놓고 스윙 사운드를 시도하는 'Exile on Broadway' 같은 곡에서의 과장성은, 앨범의 전체적인 음습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건 전부 비현실적이다' 는 식의 얘기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외눈박이 장미빛 색안경으로 보는 세상이 그만큼 양가적이라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이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매우 눈에 띄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보너스 트랙인 Frank Sinatra의 커버곡 'As Time Goes By' 도 원곡에 매우 충실한데, 어쩌면 이것도 밴드는 키치로 써먹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매우 명확한 인상의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