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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La Maison Moderne - Day After Day

[Hauruck!, 2000]

Hauruck! 에서 나왔고 Albin Julius의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사실은 밴드에 관심을 갖게 하기에는 충분한 사실인데다, 어느 블로그에서 'Totally must have!' 라고 평해 놓은 데 혹해버렸다. 그런데, 2000년에 나온 MCD라고 해서 구하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Tesco에서도 아직도 취급하고 있고 여기 저기서 많이 보이길래 아무래도 Albin이 자기 레이블에서 많이 찍어내나 보다 했었는데, 충격적인 결과물이다. 이거 뭔가 잘못 왔나 싶어 그제서야 찾아보니, 장르에 'Acid House, Industrial' 식으로 쓰여 있다. 이건 꽤 심각한 오판의 경우일진대, Albin Julius의 이름에서 martial을 연상하거나, 많이 봐 주더라도 Hauruck! 에서 네오포크 이상의 음악을 생각하는 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4곡이 수록된 이 MCD의 음악은,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Albin Julius가 하는 테크노/트랜스 음악이라고 하는 게 아마도 맞을 법하다. 판매를 위한 미사 여구를 보통 달아 놓는 이런저런 디스트로들도, '뜨거운 밤을 위한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정도로 표현하는 거 보면 이 앨범에 대해서는 나름 솔직했던 편이다. (하긴 이 앨범을 martial이라 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다만 어쨌든 Albin Julius가 만든 음악인지라 '완벽히' 댄스 플로어 뮤직은 아니다.(대표적인 예는 'Spiel Süßer' 의 마지막 부분일 것이다 - Der Blutharsch 특유의 사운드 샘플링이 발견된다) 일반적인 댄스 플로어 뮤직보다는 훨씬 괴팍하다.(물론, 세다고 해 봐야 사실 Laibach 수준에 그칠 만한 정도일 것이다)사실, 커버 아트 자체도 좀 고풍스럽기는 하지만 이 음악은 2000년에 나올 만한 댄스 뮤직은 아니다. 70년대풍 테크노 사운드에 디스코 비트는 어찌 들으면 혹시 Albin Julius가 좀 더 댄서블해진 Kraftwerk를 의도한 것은 아닐지 싶을 정도.

하지만 이 앨범은, 그 짙게 묻어나는 유머러스함 덕에, Albin Julius가 어쩌면 Genesis P'Orridge 식의 유머를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도록 한다. 나는 Genesis가 인더스트리얼이라는 장르를 가지고 특유의 유머를 섞어내면서, 동시에 '지극히 부르주아 문화적' 음악에도 속할 법한 스타일을 구축했다고 보는데, 사실 Albin Julius의 경우에 기존의 행보를 생각한다면 이와 동일한 비교를 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이 앨범이 Der Blutharsch와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기존의 Der Blutharsch의 앨범에서 은근한 유머러스함을 보여준 바도 있으며, 중요하게는 최근의 'The Philosopher's Stone' 은 거의 martial이라고 할 수 없는 사운드를 들려줬던 바 최근의 밴드의 변화상은 사실상 이 앨범에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하게 한다. 사실 근래의 사운드는 거의 팝 록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고, 좀 더 괴팍한 형태였다면 Genesis의 실험과 좀 더 유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이런 식의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곡이라면 가장 마지막의 'Sea of Love and Hate' 가 아닌가 하는데, (과장 좀 섞으면)노스탈지아를 유발할 수도 있을 손풍금 소리의 루핑(커버의 분위기와도 어울리는 편이다)에다가, 거의 술먹자 분위기까지(이건 스래쉬메틀이나 80년대 파워 메틀에나 어울릴 법한 컨셉트인데) 느껴질 정도의 괴팍한 유머감각은, 고풍스러운 사운드이지만 Albin Julius가 기존에 구축한 이미지 등과 맞물리면, 의외로 신선하게 다가오는 편이다. 그렇다면 밴드명인 La Maison Moderne도, 어찌 보면 상당히 괴팍한 유머 섞인 이름일 것이다.

물론 martial 밴드로서의 Der Blutharsch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이러한 모습이 반드시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거기다 어쨌든 Albin Julius는 Genesis P'Orridge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앨범은 Albin Julius의 앨범이라는 것만 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설사, 이 앨범이 그냥 어떠한 실험이다 뭐다 의미 없이, 평소에 Albin이 보여주지 못한 '유머 감각' 의 집대성 격 앨범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위에 쓴 글들은 전부 과장과 왜곡으로 가득 찬 무의미한 내용이 되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이 앨범의 가치는 있다. 그렇지 않은가? 21세기는 Carcass의 Jeff Walker도 컨트리 앨범을 만드는 시대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라면, 현대와 같이 자극적인 매체들로 넘쳐나는 시대, 더 강한 유머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예 내 놓고 블론드 미녀와, 앨범을 정말 '뜨거운 밤을 위한 댄스 뮤직' 으로 홍보하는 김에, 더욱 향락적인 이미지를 끌어들였다면(슬리지한 음악이 나올지도) 더욱 재미있지 않았을까? 어찌 됐든, 그 블로그의 'Totally must have' 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처음의 실망감만 접어둔다면 의외로 괜찮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