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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Parzival - Zeitgeist/Noblesse Oblige

[Euphonious/VME, 2008]

르지(Parzival)은 Wolfram von Eschenbach의 작으로 알려진 유명한 독일 고대 서사시 정도 될 것이다. (Parzival은, 영국으로 가면 아서 왕 이야기의 Percival이 된다)또한, Wagner의 유작 오페라라는 점에서도 더욱 알려져 있다. 아마도 후자의 사실이 더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Wagner의 'Parzival' 은, 이미 Wagner와 사이가 멀어졌던 Nietzsche마저도 감탄하게 만들고, 매년 열리는 바이로이트 음악제에서 반드시 선택되는 작품이라는 것을 볼 때, 보통 알고 있는 것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원작에 짙게 깔려 있는 종교적 색채는 Wagner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으나, 어쩌면 그 점으로 Nietzsche의 극찬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이런 멋들어진 이름에 비교해 볼 때, 밴드 Parzival은 사실 좀 당혹스러운 밴드일 것이다. 이전에, Cleopatra에서 앨범이 나오던 러시아/덴마크 출신의 인더스트리얼 밴드 Stiff Miners가 있었다. 밴드는 그 출신과는 달리 Laibach의 분위기를 짙게 풍기는(물론 그렇게 메틀릭하지는 않다) 스타일이었는데, 묵직한 비트감과 러시아 특유의 영어 액센트가 인상적이었다는 외에는 기억에 남는 점이 없었다는 게 솔직할 것이다. 이들이 이름을 Parzival로 바꾼 것이니,(중간에 Order of Parzival이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는데, 그 당시에 앨범을 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밴드의 스타일은 음악을 듣기 전부터 어느 정도는 예견되는 것이다. 밴드 이름에 대해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것은, 그 이름을 고른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조금 불만이기 때문이다. 사실, 'Parzival' 은 이런 스타일과 그리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도 할 뿐더러, 밴드의 선택이었겠지만, 지나치게 '간지' 나는 이름을 골랐다. (Emperor가 만약에 별로 실력이 없는 밴드였다면, '황제' 라는 밴드 네임은 아마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이들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별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다양한 스타일의 교잡에 있다. "Zeitgeist" 앨범은 밴드가 그간 많은 음악의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케 한다. Dmitry Babelvsky의 보컬은 여전히 Laibach를 떠오르게 하고(물론 조금은 부족하다), 조금은 경박하게까지 들리는(그래서 Die Form 생각이 나는) 일렉트로닉스도 여전하다. 문제는 신서사이저 연주에 있는데, Stiff Miners 시절보다 이들이 확실히 달라졌다면 그건 이 부분이다. 밴드 컨셉트의 변화가 원인일 수도 있지만, 이 앨범의 신서사이저는 거의 In Slaughter Natives를 연상케 할 정도로 화려하다. 보통, 요새는 goth-industrial 정도로 분류되는 지라, 같이 활동하는 밴드가 Electric Hellfire Club 같은 부류의 이들이 많은데, 그들만큼 댄서블하지는 않다. 일련의 military-pop의 영향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묵직한 퍼커션의 자리에 Die Form 식의 일렉트로닉스가 들어간 셈인데, 분위기 자체가 그만큼 어두운 이들은 아닌 것을 생각하면 나름 합리적으로 생각되는 일렉트로닉스의 사용이다. 이렇게 되면, 어설픈 Laibach 생각이 나는 보컬도 잘 어울리게 된다. 호전적인 느낌이 강했던 Laibach의 스타일을, 조금 '부족하게' 감당하는 탓에, 그 호전성이 반감되는 바는 있는데, 오히려 원래 '호전적이지 못한' 밴드의 스타일에는 장점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밴드는 종종, 공연을 한 뒤에 고쓰 클럽 댄스 파티 식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고 한다.

"Noblesse Oblige" 는 원래 2004년에 바이닐로만 발매된 앨범이었는데, "Zeitgeist" 가 상술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면, 그 과정에서 밴드의 사운드가 어떠했는지를 보여 주는 앨범이다. 의외로 일렉트로닉스가 전면에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댄서블함에 있어서는 "Zeitgeist" 이상이다. 다만, 이미 Parzival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인지라 그 분위기에 대한 고려는 분명하다. 전체적으로 매우 극적 구성을 취하고 있으나, 댄서블한 비트가 이를 희석시킨다. 이는 구체적으로 중세적인 챈트와 댄서블 비트를 절묘하게 교잡시키면서 이루어지는데, 대표적으로는 'Haut' 같은 곡이 있을 것이다. Dmitry의 '나름' 진중한, 챈트를 읊조리는 보컬은 뒤의 댄서블 비트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다국적 밴드 답게, 러시아어, 영어, 라틴 어를 섞어서 가사를 쓰는데, 이들이 뭔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의도한 것이라면 역시 성공적이다.  

사실, 인더스트리얼 앨범으로서 묵직한 퍼커션 대신 댄서블 비트가 들어갔다는 건 꽤나 큰 타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기초를 가지고 최대한 선방하고 있는 경우라고 할 법한데, 새로운 스타일을 구축했다고 말하는 혹자들도 있으나, 새로운 스타일이라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잘 조합하는 능력이 있는 친구들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을 '훌륭하다' 고 말하기는, 나로서는 조금 어렵다. 하지만 이들은 덕분에 자신만의 분위기를 가지기는 했고, 그게 생각보다는 꽤 들을만하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점수를 준다. Parzival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쓰는 데는 여전히 불만이 있지만, 한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Wolfram의 Parzival 원작을 읽어 볼 때, 종교적 색채도 강하고 나름대로 '성배' 얘기할 때마다 나오는 영웅적 캐릭터가, 얼마나 얼빠진 개그 캐릭터로 그려졌는지를 생각해 보면, 유럽인들에게는 우리와는 다른 이미지로 Parzival, 또는 중세가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