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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Temple of the Maggot - How to Perform a Human Sacrifice(The Blood Rites)

[Satans Millenium Prod., 2010]

일단 이들에 대한 인상을 얘기하는 것은 간단한 말로 충분할 것이다. '몽고 블랙메틀 밴드'. 많이 듣지는 못했지만 나름 열심히 찾아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 동네 밴드는 처음이다.(물론 실질적인 활동은 스페인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레이블은 또 미국 레이블이니 이들도 참 고생하는 셈이다) 고비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살아갈 것 같은 인상을 (괜스레)받는데, 일단 이들은 울란바토르 출신이라니 그렇게 유목민 생활을 하는 거야 물론 아니겠지만, 이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몽고에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교류를 하지 않고, 몽고 출신의 사람들이 각국에 흩어져 있지만 그들은 그 곳에서 아웃사이더처럼 지낸다고 한다. 이 앨범의 광고 문구는 대충, '실험적이고 광기 어린,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새로운 스타일의 블랙메틀' 이라는 것이었는데, 금년에 들었던 레바논 출신의 Kafan이...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스타일이었음은 분명했음을 생각할 때(그렇게 'funky' 한 블랙메틀은 처음이랄까) 그와 비슷한 기대를 할 수 있는 밴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들려주는 사운드는 확실히 일반적인 블랙메틀 밴드와는 구별된다. 'Evil' 을 내세우는 블랙메틀 밴드이고, 거친 텍스처를 동반하는 리프를 긁어대는 밴드라는 정도가 주된 공통점일 듯하고, 그 외에는 사실 많은 부분은 블랙메틀의 전형과는 약간은 거리가 있다. 1분 넘게 포크적인 바이브를 섞어낸 앰비언스를 인트로 격으로 사용하는 첫 곡인 'Necklace of Teeth' 도 그렇지만, 전형적인 헤비메틀의 리프에다가 곡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는 챈트까지 등장하는 'Leftovers for the God' 이 그렇고(아무래도 이 곡의 아르페지오는 Annihilator를 연상케 한다), 기묘하게 뒤틀린 샘플링에 이어지는 'Feast of Flesh' 는 더욱 그렇다. 사실 거친 리프를 주로 사용하는 밴드이지만, 텍스처를 떠나서 살펴보면 밴드가 사용하는 리프들은 블랙메틀보다는 데스메틀의 리프에 더욱 가깝다. 퍼즈 섞인 코드 연주를 이용해 두터운 사운드를 만들기보다는 음 하나하나를 명확하게 짚어내는 편이라는 것이다. 앨범에서 주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 물론 사실, 어느 파트도 압도적이지 않다만 - ,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기보다는 그에서 나오는 사운드의 빈틈을 짚어 나가는 식의 키보드도 비슷한 방식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데스메틀 밴드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무래도 이들의 음악은 블랙메틀의 컨벤션을 자꾸만 뒤틀어 나가는 스타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프로그레시브하게 곡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들의 곡은 꽤나 직선적이고, 블랙/데스메틀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뿐이지 충분히 강력한 편이다. 약간의 일렉트로닉스를 사용하면서 클린 톤으로 헤비메틀 리프를 섞어내는 'Impaling the Believer' 는 '좀 더 인간적인 사운드의' Aborym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이런 인더스트리얼의 면모는 다른 곡들에서도 조금씩 드러나곤 한다. 말하자면 이들은 블랙메틀에 기반하고는 있지만 여타 헤비메틀/데스메틀의 방법론을 십분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아예 무관련하지는 않지만 통상 함께 사용하지는 않는 모습들을 기묘할 정도로 콜라주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앨범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얼마나 이런 부분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냐는 것이다. 물론 그건 매우 어려운 것이다.

이 앨범을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점은 그 균형이 확실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압도적인 어떤 파트도 없다고 했는데, 달리 얘기하면 어떤 파트도 다른 파트의 존재감을 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로그레시브한 곡 구성을 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음악은 일반적인 블랙메틀 밴드들에 비하면 브레이크가 대단히 많은 편인데, 아무래도 스타일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부분들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그 연결의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나, 그러면서도 흐름을 부드럽게 이끌어 나간다는 것은 정말 보기 드문 점이다. 'Impaling the Believer' 같은 곡의 인더스트리얼 비트가 섞인 브레이크가 스래쉬메틀 풍의 뮤트를 이용한 리프 연주와 연결되는 부분은 그런 모습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들의 거의 'porn grind' 에 가까운 성도착적인 가사와 이미지를 생각하면 이런 균형 잡힌 사운드는 신기할 정도인데, 어찌 보면 그런 면모가 밴드의 가장 개성적인 면모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서두에서 말했지만 밴드의 매스터마인드인 Barag-aghur Gulugjab는 자신을 포함한 몽고인들의 '아웃사이더' 로서의 면모를 얘기했었는데, 어쩌면 그런 아웃사이더들이 가장 잘 만들어낼 수 있는 블랙메틀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당대의 월드 뮤직의 '변방' 이라던 시부야의 일본 뮤지션들이 시부야케이라는 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들 식의 블랙메틀이 사실 어떤 흐름을 이루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앨범이 밴드의 출신을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인상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이 레이블도 Striid 정도를 제외하면 은근히 똥반의 전당인데, 어쨌든 괜찮은 앨범이 나와서 반갑다.

post script :
이 앨범이 나온 Satans Millenium Prod. 는 통상 SMR Vinland로 불리는 Satans Millenium Records와도 같은 곳이다. 나름 체인점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