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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Ved Buens Ende - Written in Waters

[Misanthropy, 1995]

Ved Buens Ende는 1994년에 결성된 노르웨이 블랙메틀 밴드이다. 그리고 그 멤버들도 꽤 쟁쟁한 편이다. 일단 Dodheimsgard의 Victonik과 Ulver의 Skoll, 그리고 Carl-Michael Eide(Aura Noir의 Agressor)가 밴드의 멤버들이니, 사실 노르웨이 블랙메틀의 중심에 있었던 이들의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물론 그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편인데, 당시가 블랙메틀의 컨벤션이 만들어져 가고 있던 시기라고 한다면 이들은 그런 전형을 꽤나 많이 비껴갔던 최초의 밴드들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Those Who Caress the Pale" 을 제외한다면 이 앨범이 유일한 작품이고, 정규 앨범으로는 유일작이라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90년대의 블랙메틀과 King Crimson 사이에서 무슨 공통점을 찾는다는 게 쉬울 일은 아닐 것이다. 둘 다 좋아한다는 것도 이상하게 여겨질 일이다.

(가만, 그럼 나는 대체 뭘까... 뭐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얘기는 절대로 아님)

밴드가 의존하는 것은 블랙메틀적인 면모보다는 사실 King Crimson의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프로그레시브한 면모, 내지는 간헐적인 math metal적인 면모일 것이다. 그리고 절도 있는 리프의 전개보다는 그럼에도 밴드는 블랙메틀풍의 텍스처와 느린 템포를 이용해서 좀 더 부드러운 전개를 진행한다. 물론 변화가 많은 편이지만, 그 변화는 사실 곡의 전체적인 진행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지, 곡을 구성하는 리프는 물론 이런저런 아이템들에 있어 급격한 변화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불협화음적인 코드 진행이나 아르페지오 등은 사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나마 'Coiled in Wings' 같은 곡에서의 적당히 디스토션 걸린 연주와 클린 톤 연주의 교차가 앨범에서 가장 굴곡이 심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재즈적인 베이스 연주도 사실 이런 기타 연주와는 매우 대조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지만, 결국은 앨범을 관통하는 분위기를 구축하는 역할에 기여하는 편이다. 아마도 'You, That May Wither' 같은 곡이 특히 그러할 것이다. 분노를 표현한다기보다는 차라리 무감각하다고 느껴지는 모노톤의 보컬도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이 둠적인 색채도 가지고 있다는 얘기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말하고 보니, 저 보컬도 Root의 그 목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밴드는 강한 공격성도 가지고 있다. 변화가 있으되 '꾸준한 변화' 덕분에 익숙해지는 청자는 곧 블랙메틀 식으로 몰아치는 연주에 마주치게 된다. 트레몰로로 전환되는 기타 연주와 전형적인 블랙메틀 드러밍이 등장하는 부분은 오히려 Burzum의 데뷔 당시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다. Victonik의 기타 연주는 기본적으로 블랙메틀풍의 거친 텍스처를 이용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 앨범에서의 연주 자체는 그런 '질감' 을 제외하면 다른 음악의 면모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앨범을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것도 이런 공격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가장 극명한 예는 'Autumn Leaves' 와 그 이후의 앨범의 전개라고 생각한다. 심지어(거칠기는 하지만) 블루스풍의 연주까지 나오는 곡이지만 그 부분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뒤의 몰아치는 부분과 연결되서이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의 두 곡, 특히 'Remembrance of Thing Past' 가 이 앨범의 스타일을 종합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중동풍의 멜로디 전개와 이를 응용한 조금씩 뒤틀리는 코드의 리프는 역시 화성 전개를 무시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함께 진행되고, 그렇게 나오는 느낌은 블랙메틀보다는 둠 메틀에 가까운 것이다. 중간중간 기타 노이즈를 이용한 연주는 (과장 좀 섞자면)예전 초기 인더스트리얼이 자주 하던 실험과도 비슷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바로 '지금의 현실' 에 대한 결코 희망적이지 못한 시각의 음악이라는 점에서는 둘이 비슷할 것이니 그게 이상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세풍 멜랑콜리라기보다는 우리 시대의 얘기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Abigor 등의 요새 밴드들이 심심찮게 시도하는 '새로운' 블랙메틀, 의 전형을 한참 전에 제시한 것은 아마 이들일 것이고, 다만 근래의 그런 스타일을 시도하는 대다수의 밴드와의 차이는, 이들은 어쨌든 블랙메틀의 컨벤션을 기초로 해서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요새의 이런저런 밴드들보다 이들의 음악이 더 환영받는다면 아마 그 점이 클 것이고, 사실 그건 아주 중요한 점이다. 그렇지 않은가?

post script :
이 앨범은 2003년에 Candlelight에서 다른 커버로 재발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