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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Spüolus - Behind the Event Horizon

[Kunsthauch, 2010]

헝가리 둠 메틀 프로젝트. 헝가리 하면 그래도 꽤 많은 밴드가 있었던 걸로 기억 나지만(당장 기억나는 거로는 Casket Garden, 유명한 Tormentor 정도가 생각나겠다) 둠 메틀로는 기억나는 바가 없다. Szabo Void의 원맨 프로젝트라는데, Thy Funeral이라는 블랙메틀 밴드를 했다고 하나, 그 밴드부터가 생소한 나로서는 이들도 마찬가지인데, 사실 저 커버만 보면 Limbonic Art 같은 밴드가 먼저 생각날 일이지 둠 메틀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단 앨범 제목부터도 이벤트 호라이즌 운운하고 있다)물론 Cyclic Law에서 나오는 음악들이나 Brian Eno 식의 앰비언트라면 얘기는 좀 틀려질 수 있겠지만. 어쨌든 밴드는 자신들의 마이스페이스에서 'alien, misanthropic, blackened, funeral, doom metal' 이라고 하고 있으니, 믿어주기로 한다.

사실 그런데 템포라는 면에서는 둠 메틀이라고 하는 게 맞겠으나, 일반적인 경우와는 많은 차이는 있다. 음악은 미니멀한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는, 퓨너럴 둠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겠으나(바로 적겠지만, 보컬도 그렇고, 진행에 있어서도 둠 메틀의 컨벤션과는 좀 차이가 있다) 무게감 있다는 의미에서는 아주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앞서 얘기한 커버와 앨범 타이틀은 사실 음악과 잘 어울리는데, 그 만큼 앰비언트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리프 자체는 사실 일반적인 퓨너럴 둠에 더 가까운 편이지만, 음악을 주도하는 것은 기타가 아니라 신서사이저이다. 보컬도 무게감에 치중하기보다는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편인데(블랙메틀적인 목소리에서, 몇몇 'esoteric' 한 읊조림도 등장한다), 이건 밴드의 음악이 꽤 미니멀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흥미로운 곡은 'Your Defenselessness' 일 것이다. 많은 경우 마치 라이트모티브처럼 제시되는, 느린 템포의 멜로디라인은 곡 처음에 제시되지 않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거의 zeuhl 사운드까지 생각나게 하는 연주이다. 말하자면 앨범에서 Cyclic Law 식의 사운드에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이 다른 둠 메틀 앨범들과 틀려질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런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곡은 상당히 드라마틱한 모습이 된다. 복잡한 구조를 갖추고 있거나 하다는 건 아니지만, 퓨너럴 둠을 생각할 수 있을 기타 리프의 음색은 앰비언트 풍의 신서사이저 연주와는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그런 면모가 극대화되는 것은 'The Last Vanishing' 막바지의 기타와 신서사이저, 그리고 신서사이저의 변주를 이용한 인터플레이부터 마지막 곡인 'Arcane Annihilation'(이 앨범은 4곡이 수록되어 있다)의 초반의, 어느 정도는 네오클래시컬한 어프로치를 보여주는 부분까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그런 부분들이 어쨌든 둠 메틀의 특징들과 꽤 잘 어울리는 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음악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표현한다기보다는 이미지를 제시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고, 앨범 커버부터 타이틀, 음악이 모두 그런 식으로 작용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기타 연주 위에 얹혀지는 키보드는 그 자체가 미니멀한 면모를 보여주고, 덕분에 이 앨범이 앞서 말한 대로 '음색' 을 통한 곡의 변화에 치중하고 있다면, 그런 변화를 보여주면서도, 적어도 미니멀한 기조를 꾸준히 유지하는 데도 성공한 셈이다. 말하자면 이 앨범은 근래의 둠 메틀 앨범 중에서도 가장 밸런스가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양식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런 컨벤션을 엄격하게 요구하기보다는 좀 더 관대한 이에게 좋을 앨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