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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Nihilist - Nihilist(1987-1989)

[Threeman Recordings, 2005]

오늘에 와서 장르의 엄밀한 특성을 말하는 것 만큼이나, 세세한 서브장르들이라도 그 시작을 짚어내는 것은 참 어려울 일이다. 사실 어떻게 짚더라도 그게 정확하다는 것을 입증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다만 우리는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에 이러이러한 이들이 많이 앞서 간 프론티어였다고 되새기는 모습이 된다. 지금 나오는 이 Nihilist도 그런, 데스메틀의 프론티어의 하나에 속한다. 사실 풀-렝쓰 앨범 한 장 내지 못한 밴드인데다, 이 시기 스웨덴 데스메틀이 그렇게 주목할 만한 것일지는 의견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Dismember 같은 밴드들이 들려주는 트레몰로 비중이 강한 리프들은 그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엇다는 정도로 얘기해 둔다. 그리고 이 밴드의 멤버들이 중요하다. 1987년에 이 밴드는 Nicke Andersson과 Alex Hellid에 의해 결성되었고, 89년에 밴드가 해체되면서 Johnny Hedlund가 새로이 만든 밴드가 Unleashed이고, 잔여 멤버들이 만든 밴드가 Entombed이다. 즉, 이들을 Entombed의 전신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 앨범의 마지막 세 곡이 흔히 Entombed의 데모로 알려진 "But Life Goes On" 의 수록곡인 것은 괜한 일이 아닌 셈이다.

88년과 89년에 나온 데모 세 장과 89년의 세션들, 전술한 "But Life Goes On" 데모를 수록한 이 컴필레이션은 (근래의 Entombed까지는 갈 필요도 없고)은근히 음습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Entombed 이전에 의외로 직선적인 데스메틀 사운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Dismember를 연상케 하는 의외의 절도있는 리프에, 하모나이즈드 벤딩을 이용한 솔로잉이 밴드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겠는데, 테크닉이 돋보인다기보다는 심플하게 가져가는 코드 프로그레션이 공격성을 표현하기에는 적당했다는 의미였다. 이 당시 아직 젖살도 다 빠지지 않았을 멤버들의 테크닉은 사실 빈틈이 분명한 수준이지만, 흐름을 놓치지는 않는다. 사실 이들의 초기 곡들은 본격적인 데스메틀 사운드라기보다는 Discharge 풍의 크러스트 사운드에 더 가까운 편이라고 생각한다. Repulsion의 커버곡인 'Radiation Sickness' 는 - 물론 원곡이 그렇기도 하지만 - 거의 그라인드코어에 가까운 사운드이다. (그러면서도 사실 첫 곡인 'Sentenced to Death' 가 미드템포의 곡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이 곡은 Discharge와 이후의 Entombed 사운드의 중간 격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이들의 음악에서 근래의 스웨디시 데스메틀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무래도 Leif Cuzner와 Alex Hellid가 연주하는 기타이다. Nihilist의 이름을 알리는 데 가장 기여했을 "Drowned" 데모의 수록곡, 그 중에서도 초기 스웨디시 데스메틀을 상징하는 곡이라고 생각하는 'Severe Burns' 같은 곡이 그러할 것이다. 미드템포로 시작해서 점점 업템포로 이어지는 리프나  확실히 Discharge풍 스타일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인트로도 그렇고(이런 부분은 아무래도 Obituary를 의식했다고 생각한다), 보컬 자체도 이제는 확실히 그로울링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사실 Unleashed에서의 Hedlund의 베이스 연주를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로 베이스가 돋보이지 않는다 싶은데, - 장르의 특성도 있겠지만 - 왜 그가 Nihilist를 나갔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들의 음원들은 - 3년 남짓의 활동 기간이긴 했지만 - 스웨디시 데스메틀이 그 시작에서 통상 알려진 모습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를 보여주면서, Unleashed와 Entombed라는, 사실 언뜻 생각할 때 차이가 많은 이 밴드들도 - 일단 나부터도 Dismember는 좋아하지만, Unleashed는 사실 좀 졸립다 - 원래 출발점은 같은 지점이었음을 역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한 셈이다. 그리고 어쨌든, 이런 식의 '자료적 가치' 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곡은 메틀 음악으로서 매력이 충분하다. 펑크/코어(물론 요새의 '코어' 음악과는 맥락이 다르다)의 영향이 짙은 음악에 기꺼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초반부가 좀 아쉬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라도 89년 데모 당시의 연주들에는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위에서 이들의 테크닉상 빈틈이 보인다고도 했지만, 이 음악에서 이들이 보통 아닌 이들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젊은 시절인지라 더 힘있게 느껴지는 Lars의 보컬이나, 데스메틀의 컨벤션을 만들어가는 듯한 드럼 연주, 선 굵은 기타 리프 등은 아무래도 이 시절 데스메틀의 매력이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