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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Black Murder - Collection

[Tragic Empire, ?]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는다만, Les Légions Noires - 이하 LLN - 가 (주변의 블랙메틀 팬들 사이에서)새로운 블랙메틀의 신성인 양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그 소속 밴드들을 그렇게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그에 속한 밴드들이 이런저런 노르웨이 블랙메틀의 클론 밴드들에 비해 구별되는 점은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요새 표현으로 '병맛난다' 고 아니할 수 없는 조악한 음질(사실 그엔 익숙하긴 했다)도 있기는 했지만, Vlad Tepes 같은 밴드는 Belketre와의 스플릿 앨범 등에서는 분명 멋진 음악을 들려준 바 있었다. 'Drink the Poetry of the Celtic Disciple' 같은 곡은 이 시절 - 1995년 - 블랙메틀 중 최고의 곡 중 하나라고도 생각한다.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밴드들은 Vlad Tepes나 Belketre, Mütiilation, Torgeist 같은 이들이 있을 것이고(뭐 멤버는 거의 그 놈이 그 놈이긴 하다), 좀 덜 유명하긴 하지만 Black Murder도 LLN에 속한다. Vlad Tepes의 멤버들이 모두 있으니,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할 수도 있을지도. 큰 차이가 있다면, Vlad Tepes는 그래도 나름 꾸준히 CD 릴리즈가 되는 앨범들은 된 반면, Black Murder는 데모 두 장("Promo '94" 와 "Feasts") 내고 묻혀 버렸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 데모의 합본이 이 앨범이다(뭐 Tragic Empire에서 나왔으니 이것도 부틀랙이겠지만. LLN 데모를 오리지널로 갖고 있을 리야).

이 밴드의 흥미로운 점은, 아무래도 Wlad가 송라이팅의 중심에 있었던 Vlad Tepes와는 달리, Vorlok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 점은 "Promo '94" 의 두 곡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Vlad Tepes의 연주도 사실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지만, 드라마틱한 점에 승부했던 Vlad Tepes와는 달리 Black Murder는 좀 더 펑크적인 면모가 많아 보인다.(특히나 'My Satanic Hatred' 는 하드코어 펑크가 분명히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그래서 Belketre의 느낌도 나는 편인데, 조금씩 핀트가 엇나가는 솔로잉이 이들이 LLN 밴드임을 알려 주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그 핀트가 확실히 심각하게 빗나가는 게 Darkthrone 같은 밴드와 LLN 밴드들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스피드에 의존하는 모습인데, 아무래도 그래서 여타 다른 밴드들보다 멜로디라는 면에서는 더 약한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그런 부분을 메워 주는 파트는 피아노이다. 'Those Dark Desires That Torment My Soul' 같은 곡의 피아노 연주는 - 리듬 악기로서의 면모는 거세된 연주라는 점에서 앰비언트풍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Feasts" 데모의 수록곡은 좀 더 다른 면모를 보인다. 리프에서는 아무래도 Mütiilation을 생각할 수 있고, 펑크의 면모가 강했던 "Promo '94" 보다는 아무래도 좀 더 정적인 편이다. 아마도 LLN에서 나온 앨범들 중 가장 음질이 좋은 편에 속하는 것일 텐데, 그런 점은 특히 드럼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앨범에 드럼머신이 사용된 것인지 모르겠다. 중간중간 의심가는 부분이 있기는 한데, 만일 머신이라면 정말 애 좀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니멀한 리프가 아무래도 거친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거의 드론 사운드처럼 느껴지는 트레몰로 위에 점차 리프를 변주해 가면서 진행되는 면모는 그리 낯선 것은 아니지만, 그 변주를 끌고 나가는 솜씨는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한다.(특히나 'Deadsex') 좀 더 직선적인 'Fresh Flesh' 는 개인적으로는 Clandestine Blaze를 생각하기도 했는데, 사실 Clandestine Blaze 특유의 리프를 생각하면 이건 좀 억지다 싶기도 하지만, 진행의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Night of the Unholy Flames" 앨범의 'Chambers' 같은 곡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Promo '94" 에 비해서는 분명 더 완성된 사운드라고 생각한다. 그 '핀트 빗나가는 솔로잉' 이 거의 안 나온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다. 물론 곡들은 사실 그리 복잡하지 않지만, 그 부분을 극복하는 것은 아무래도 리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미니멀하지만 조금씩 뒤틀린 코드들로 구성된 리프는 이 시기의 밴드들에게 듣기 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LLN 밴드들로 분류되는 이들의 앨범들 중, 가장 뛰어난 결과물은 이들의 데모들이 아니었나 싶다(물론 들어본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Vlad Tepes의 'epic' 한 사운드가 적어도 Black Murder의 경우에는 목적하는 바가 아닌데, 그런 점이 이들의 음악에서 그 락큰롤적인 분위기 등을 많이 걷어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Promo '94" 는 그렇다면 그 중간 단계의 사운드일 것이다(펑크 분위기가 강하긴 하지만, Vlad Tepes 류의 소위 'black'n roll' 과는 많이 틀리다). 그렇게 진행된 사운드(즉, "Feasts" 의 수록곡)는 LLN의 여타 밴드들보다 좀 더 심플한 구성을 가져가지만, 덕분에 그 밴드들보다 확실히 완결적이고, 의외일 정도로 이후의 밴드들을 많이 예기해 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이후' 의 밴드들이 과연 이들의 음악을 얼마나 들어 봤으려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들어 봤다면 이건 분명 따라 해 볼 만한 음악이었을 것이다. 인간들 성질이 더러워서 묻혔을까, 묻히기는 좀 아깝다.

post script :
CD에 발매 년도가 적혀 있지 않다. TE008이라니 레이블이 망하기 얼마 전에 나왔으리라 짐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