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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Tormentor - Anno Domini

[Self-financed, 1988]

Attila Csihar가 마이크를 잡은 덕에 이 헝가리 밴드는 그 출신을 감안하면 정말 많은 명성을 얻었다. 물론 이 밴드 자체가 블랙메틀의 프론티어 중 하나라는 것도 확실할 것이다. 밴드의 이름을 알렸던 이 앨범은 뒤에 Nocturnal Art에서 재발매되기 전에는(DSP의 재발매 계획이 있었으나, Euronymous의 사망으로 이는 백지화되었다) 데모 테입만 존재하는 앨범이었다. 즉, 재발매 이전에는 소수의 테입만이 언더그라운드의 트레이딩을 통해 유통되었다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이 밴드는 '그럼에도' 꽤 유명해졌다는 것이 인상적이기도 하겠지만, 정작 이 앨범은 덕분에 재발매된 이후에도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듯하다. 95년에는 이미 이들의 음악은 '클래식' 한(바꿔 말하면 좀 옛날 냄새 나는) 것이 되었고, 밴드의 다음 앨범이었던 "Recipe Ferrum! 777" 은 이전의 밴드의 곡들과는 공통점을 찾기 힘든 실험적인 작품이었으니 이들이 다시 조명받을 큰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Tormentor는 이미 80년대부터 완성된 형태의 블랙메틀을 들려주던 밴드였다. Mayhem 같은 이들의 80년대 데모가 이들이 딜레탕트에서 뮤지션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즉 혹평한다면 Venom의 아류에 가까울 사운드를 들려주는 정도였다면 이들은 이미 이 당시에 자신들의 색채를 가지고 있고, 연주 등의 부분에서도 당시의 다른 블랙메틀 밴드들에 많이 앞서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마 테크니컬한 기타 연주(거의 Iron Maiden 수준)가 등장하는 'Lyssa' 같은 곡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당히 많은 스타일들이 혼재하고 있다는 것도 이색적인데, 본격적인 블랙메틀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점이었고, 스래쉬메틀이 아직 열기를 갖고 있던 시기여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Heaven' 같은 곡의 리프에서는 초기 Slayer("Reign in Blood" 이전의) 등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좀 더 어둡다는 점에서는 Possessed 같은 밴드를 떠올리는 것도 맞을 것이다.


그리고 Tormentor는 블랙메틀 밴드로서는 보기 드물 정도의 서사를 보여주던 밴드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밴드의 가장 잘 알려진 곡일(물론 Dissection의 커버 덕분일 것이다) 'Elisabeth Bathory' 는 조금 느슨한 행진곡풍 리듬으로 진행하다가 퍼즈 톤의 리프를 등장시키는데, (개인적으로는 Darkthrone이 잘 하는 진행 방식을 예기했다고 생각한다)거칠고 두터운 텍스처의 사운드가 구축되다가도, 이후의 포크 바이브 섞인 리프와 이어지는 템포체인지는 상당히 명확한 선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곡은 강경하고 어두운 분위기이지만, 묘한 유머를 제시하기도 하는 면모를 가진다. 또 다른 예는 'Beyond' 같은 곡일 것이다. 이 당시의 초기 블랙메틀 사운드의 밴드로서는 이색적인 편인데, 밴드는 신서사이저를 사용해서 분위기를 구축하기도 한다. 솔로잉도 이후에 나타나는 블랙메틀 밴드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진행을 보여 주는데, 이걸 이후의 심포닉 블랙메틀이 영향받았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들이 직선적이고 올드한 사운드 이상의 구성에 강점이 있었음은 분명할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역시 시대가 시대인지라, 이들의 직선적인 스래쉬풍 리프의 곡들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사실 이 시기의 Tormentor를 대표할 사운드라고 생각한다. 전술했던 'Lyssa' 같은 곡도 있지만, 'Apocalypse' 와 같은 Slayer의 느낌을 강하게 주는 곡도 있고, 'Tormentor II' 같은 곡은 더욱 클래식하게, Andy La Rocque를 연상케 하는 리프를 들려주기도 한다. Atilla의 보컬이 Tom Angelripper를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면 조금 억지일 듯도 한데(그의 보컬은 "De Mysteriis Dom Sathanas" 와는 조금 다른 접근을 보인다), 왜 Mayhem이 굳이 부다페스트 출신의 보컬리스트를 초빙하였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Damned Grave' 에서의 'Haunt in Transylvania!' 라는 포효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익히 알려진, '거칠고 올드한 초기 블랙메틀 스타일' 을 좋아한다면, 이 앨범은 거의 최고의 선택일 것이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들이 Mayhem에서 노래했던 Atilla Csihar의 밴드 정도로만 알려지는 것은 확실히 곤란한 일이다. 2008년에 Atilla의 개인 레이블인 Saturnus Prod에서 아래의 아트워크로 재발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