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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Un Défi d'Honneur - Verdun 1916

[Vrihaspati, 2007]

1916년은 1차대전 당시 러시아와 독일이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전력을 서부 전선에 집중했던 때라고 한다. 사실 저 시기가 유럽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는 잘 모를 일이지만, 그렇게 유쾌한 시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어쨌든 때는 1차대전 와중이었고, 서구권의 입장에서는 러시아 전선에 투입되었을 병력들이 죄 프랑스 등의 전선으로 투입되었을 테니, 러시아 쪽에서 흘리게 될 피를 그 쪽에서 한꺼번에 흘리게 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이런 소재에서 정치적 함의를 굳이 찾아내려는 것도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앨범은 martial industrial 앨범이고, 이 밴드가 사실 A Challenge of Honour의 Peter Savelkoul의 프로젝트라는 정도를 미리 얘기해 둔다. 레이블도 ACoH의 앨범이 주로 나오는 곳인 걸 봐선 개인 레이블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하고 보니 국내에서는 ACoH도 인기가 없구나, 물론 나도 팬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겠다)

그렇다면 음악도 사실 짐작가지 않을 바는 아닐 것이다. 사실 이 앨범의 스타일 자체는 평이한 편이다. 마이너 키를 이용해 비장한 분위기를 기본적으로 의도하는 네오클래시컬 튠이 앨범의 두드러지는 요소이고, 중간중간 삽입되는 아코디언 연주 등이 고풍스러운 느낌을 더하면서 함께 섞여들어가는 노이즈가(포 소리라든가) 이 음악이 martial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물론 Peter는 Nordvargr 같은 이가 아니다. 앨범에는 호전적인 부분 외에 회상적인 튠도 나타난다. 실내악풍의 스트링에 클라리넷이 얹혀지는 면모는 사실 챔버 록에 가깝게도 들린다고 생각한다. (일단, 드럼도 사용하지 않으니 그렇게 얘기해 둔다)굳이 얘기하자면 꽤 어두워진 "Emballade..." 시절의 Julverne 같은 느낌을 주는데 물론 노이즈나 인더스트리얼 튠 덕분에 이들이 더 거칠게 들린다. Julverne 식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찾는 건 좀 어렵다는 것이다. (하긴, 전선의 전면에 있는 도시에서 살롱 음악이라니, 별로 상상은 가지 않는다)

그래도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퍼커션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전작인 "Aurore de Gloire" 와도 구별되는 점이라고 생각되는데) 이전의 음악이 말 그대로, 심포니에 호전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 퍼커션 등이 들어가는 식으로 부차적으로 사용되었다면, 이번의 경우는 일반적인 밴드와 같이 리듬 파트가 곡의 구조를 잡아 나가는 식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 앨범에서 퍼커션을 쓰는 데 더 맛을 들였는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일반적인 martial 스타일과는 곡의 구조도 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종래 이들의 음악에서 퍼커션이 하던 역할을 하는 것 - 적절한 분위기의 재현 - 은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로우파이하게 녹음된 샘플링이라고 생각된다. 덕분에 퍼커션을 이용한 파열음은 곡의 드라마틱함을 두드러지게 한다.

덕분에 앨범은 일관된 분위기를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챔버 록 풍의 부분은 사실 다른 부분과 분명한 사운드상의 차이를 보여주지만, 앨범에서 이런 부분은 퍼커션이 폭발하는 부분이 가장 격렬한 부분이라면, 가장 부드러운 부분으로 작용하면서 개연성을 확보한다. 8개의 트랙은 별개의 곡이기도 하지만 앨범 전체로서도 한 곡이라고 생각되는데, 심포니가 작위적으로 들리는 감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이런 점에 In Slaughter Natives 등과의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한 곡' 이 사실 훌륭하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최소한 이 앨범이 은근히 즐길 부분이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네오클래시컬 튠으로 승부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이런 장르의 팬들이 요구하는 것보다는 공격성은 좀 부족할지는 모르나(Arditi라든가), 평화로운 듯하면서도 언제 포격이 날아올지 모르는 도시의 풍경을 생각하기에는 충분한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