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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Hawkwind - The Elf & The Hawk

[Black Widow, 1998]

Hawkwind야 설명이 필요없는 밴드이겠지만, 소위 '스페이스 록' 이라는 단어로 불림에도 그 스타일은 사실 상당히 다채로운데다, 거의 40여 년을 활동하면서 엄청난 양의 앨범을 발매해 놓은 탓에(물론 그 대부분이 편집 앨범이나 라이브 앨범 등이기는 하다) 그 궤적을 따라가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밴드일 것이다. 밴드의 매스터마인드인 Dave Brock을 제외하면 꾸준하게 멤버가 교체되어 왔다는 점도 아무래도 이런 면모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 그런 점도 있고, 확실히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던 Pink Floyd보다는 블루스의 맛이 약한 사이키델리아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내게는 꼭 익숙한 밴드는 아니었다. 이 밴드에는 Motorhead의 Lemmy도, Amon Duul의 Dave Anderson도 있었던 밴드였다. 쉽게 다가올 리는 없는 것이다. 그나마 팝적인 느낌이 강해지기 시작했던 "Astounding Sounds Amazing Music" 부터가 내가 확실히 더 재미있게 즐기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이 밴드의 80년대 사운드에 별 거부감이 없는 경우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이런 앨범을 살 생각을 했을 것이다. 수많은 Hawkwind의 비정규 앨범의 하나에 속하는 초라한 커버의 앨범.


앨범의 음원은 사실 매우 진귀한 것이다. Brian Tawn이 운영하던 Hawkfan(즉 팬진)의 1986년 12호의 부록으로 나왔던 12인치 앨범 "Hawkfan" 과 Alan Davey의 "The Elf" EP인데, Hawkwind의 팬이 아니라면야 무슨 음원이 실렸을지에 크게 관심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실 Alan의 EP보다도 저 "Hawkfan" 인데, Hawkwind는 당대에 그 어느 밴드보다도 멤버 교체가 심하던 밴드였을 것이다. 즉, 그 패밀리 밴드도 엄청나게 많아질 수밖에 없었는데, Hawkwind 팬진의 핵심격이었던 Brian이 그런 패밀리 밴드들의 음원을 이 앨범을 통해 공개했던 것이다. Brian의 의도는 확실히 그런 음원들의 소개에 있었던 것 같다. 이 앨범에 실려 있는 Hawkwind의 곡은, Hawkwind의 이름으로 나온 앨범이긴 하지만 단 3곡 뿐인데, 그나마도 모두 라이브이다. 거기다 앨범의 첫 트랙인 'Countdown' 은 이전에 나왔던(제목은 까먹은) BBC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것과 동일한 음원인 듯하다. Robert Calvert의 스페이스 오페라 놀이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별 메리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Hawkwind들의 패밀리 밴드들의 곡은 - Hawkwind의 모습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음에도/하긴 의도적으로 벗어나기도 힘들 것이다 - 꽤나 재미있는 편이다. Dark Empire(바로 저 앨범 커버를 그린 Bill Jones의 프로젝트)의 'The Human Race' 는 미니멀한 신서사이저 연주곡인데, 뒤에 이어지는 Syndrone의 'Synprovisation' 과 묘하게 이어지면서 한 곡과 같은 인상을 준다. 차이가 있다면 후자는 미니멀한 기조를 유지하기는 하지만, 좀 더 굴곡 있는 사운드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공고한 편성이 있다기보다는 매우 자유로운 잼 밴드에 더 가까웠던 탓에(물론 이 곡은 잼 연주가 아니긴 하다) 기타 연주는 좀 더 날카로운 부분이 있지만, 신서사이저은 앞의 곡보다 확실히 더 무거운 톤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말하자면 Hawkwind식의 클라이맥스에서 폭발하는 면모에 좀 더 가까운 것은 후자일 것이다.

앨범에서 가장 듣기 편한 것은 분명 Underground Zero의 'Aimless Flight' 일 것이다. (앨범을 주도한 Brian Tawn도 가장 좋아하는 밴드라고 한다)개인적으로는 'The Right to Decide' 같은 곡을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인데, 단순한 리듬에 Hawkwind 초기의 멜로디를 80년대의 신서사이저로 연주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Judi Giggs의 보컬(그렇다, 이 밴드는 여성 보컬이 있다)은 소위 '여걸' 들의 목소리와 '여성스러운' 목소리의 중간 정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직선적인 면모를 살려 주기에는 그리 부족하지 않다. Dave Brock의 'Burn Me Up' 은, 혹시 2001년에 나왔던 "Spacebrock" 앨범을 들어 봤다면 좀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특유의 퍼즈가 강한 기타와 신서사이저의 노이즈가 Brock 식의 앰비언트를 구축하는데, 물론 Klaus Schulze 같은 음악 같이 피곤한 것은 아니다. Alan Davey의 EP는 동양적인 어프로치가 눈에 띄는 'Chinese Whispers' 정도를 제외하면 그리 돋보이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Alan Davey가 다른 멤버와는 달리 오랫동안 Hawkwind에 붙어 있을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이 EP의 사운드를 Dave Brock이 만든 것이라고 하면 누가 의심할 것인가? 더 노골적인 것은 PXR1의 'Spirit of the Age' 이다(설명은 필요없으리라 본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앨범을 과연 즐겨 듣게 될 것인지는 잘 모른다. 사실 Underground Zero의 곡이 없었더라면 이 앨범의 가치는 더욱 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얘기하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Hawkwind의 컴필레이션 앨범들 덕에 이 앨범의 음원도 어딘가에 이미 수록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확실히 할 수 있는 얘기는 Hawkwind의 80년대가 그렇게 수월한 음악은 아니라는 것과(물론 이 점을 위해서는 Hawkwind의 정규작을 듣는 것이 더 낫겠지만), 그 패밀리 밴드들이 나름대로 무시할 수 없는 연주를 했다는 것이다. Hawkwind 팬들도 (더러워서 그런지 귀찮아서 그런지)안 만드는 이 밴드의 패밀리 트리를 만들어 줄 용감한 이가 나타난다면 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그래서 가장 먼저 들었다. 거의 인상비평에 가까운 글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Hawkwind의 앨범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이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사실 내 생각에 Hawkwind의 가장 멋진 점은 자신들의 사운드에 배치하는 참 다양한 아이템을 알레고리로 삼아 다른 프로그레시브 밴드와는 구별되는 방식으로 서사를 꾸려 나간다는 점이었다. 그런 재미는 이 앨범에서도 느낄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는 앨범이다. 이 정도로 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