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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Autopsia - The Berlin Requiem

[Old Europa Cafe, 2006]

Autopsia 같은 아티스트에 대해 얘기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오랜 기간 - 이들은 70년대부터 활동해 왔다 - 동안, 사실 이들은 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왔고, 본인들의 말에 따르면 그 결과물들은 - 문학, 영상, 음악, 미술 등 분야를 불문하고 - 맥락상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까, 이 앨범을 만일 '창작자의 의도를 분명히 감안하여' 얘기하려 한다면 이 앨범만으로는 아마 부족할 것이나, 그건 내 능력 밖이기도 하고(나는 Autopsia의 앨범 두 장 외에는, 다른 작품은 - 웹상에 올려져 있는 정도를 제외하면 - 접한 바가 없다), 어쨌거나 나에게 '아티스트' Autopsia는 뮤지션의 의미로 더 가깝게 다가오니(사실 대부분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내용들은 얘기할 수 있다면 모르되, 짐작까지 해서 파낼 생각은 없다. 이 정도를 전제하고 얘기해 보자. 그러니까 Autopsia는 체코 출신의 실험적인 앰비언트/네오 클래시컬 그룹이라는 정도로 말이다.

"The Berlin Requiem" 이라는 제목은 1928년에 만들어진, Brecht가 가사를 붙였던 Kurt Weill의 칸타타의 제목이기도 하다. 물론 검열 때문에 그 칸타타는 뒤에 "Red Rosa(맞다, 로자 룩셈부르크다)" 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공개되었고, Weil의 말에 따르면 그 곡은 항상 죽음의 공포에 가까이 있는 그 시대의 일반 시민들이 말할 만한 이야기들을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 앨범은 'Funeral Music' 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3개의 곡과 실험적인 그 외의 3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Autopsia는 앨범에서 직접 Weill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많은 유사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텍스트와 사운드의 결합이라든가, 제목이나 테마 등 많은 것이 비슷하게 보인다. 이 칸타타는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역시 이 앨범도 6곡으로 되어 있기는 하다. 물론 제목만 보면 Autopsia의 경우가 Weill보다는 더 직접적으로 컨셉트를 제시하는 편이다. 다만 그렇다면, 3곡의 'Funeral Music' 외의 실험적인 3곡은 무엇인가? 이 또한 명확하진 않지만, Autopsia는 스스로 Adorno와 Horkheimer의 영향에서 '예술의 죽음' 식의 주제에 천착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왔는데, 그런 면모를 과시하는 곡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일 '죽음' 과 연결짓지 못할 바는 아닐 것이다. 물론 짐작일 뿐이지만, 이 3곡에서 (후술하듯이)들려지는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는 이런 생각이 아주 뜬금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한다.

무조적인 피아노 연주를 모티브로 하여 전개되는 'Funeral Music I' 에서 상대적으로 좀 더 공격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Funeral Music II' 는 호른과 공, 오보에, 퍼커션의 교차적 연주를 통한 다이내믹을 과시하고, 'Funeral Music III' 은 교차되는 코드를 이용한 전개와 미니멀함을 기초로 한 분위기를 기초로 일렉트로닉스를 추가한다. 의외일 정도로 기계적인 리듬이 생각보다는 고요한 분위기와 맞물리는 편인데, 각각의 'Funeral Music' 사이에 실험적인 곡들을 삽입하는 것은 아마도 의도적 구성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이내믹을 보여주지만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하는 'Funeral Music' 과 달리, 중간중간의 곡들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듯한 신서사이저에 실로폰이나 글로켄슈필(glockenspiel)을 이용한 청량감을 과시하는 'Retorten Genese' 같은 곡은 사실 Autopsia보다는 80년대의 인더스트리얼 파이오니어들의 곡에 더 가까운 면모라고 생각한다. 그런 인더스트리얼의 면모는 앨범에서 가장 짧은 곡인(3분도 안 되니) 'Radical Machine 3.0' 에서 극대화된다. 사실 곡의 텍스처를 구성하는 사운드 자체는 이제는 친숙해진 것이라 생각한다 - 이 앨범이 나온지도 벌써 시간이 꽤 지났다 - . 하지만 일렉트로닉스와 인더스트리얼 비트의 기묘한 결합은 흥미롭게 느껴진다. 물론 이 곡도 'Funeral Music II' 막바지의 분위기의 정돈 뒤에 전개되는 실험적인 면모이니 괴이하지는 않다.

앞서 Weill과의 비교를 얘기하게 한 곡은 그래도 마지막 곡인 'Sounds for Remembering Death' 이다. 미니멀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선율을 가지고 있었던 앞의 곡들과는 달리, 이 곡은 더욱 텍스처에 천착하는 곡이다. 안개라기보단 흙먼지 자욱한 광경에 비슷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공명감 강한 미니멀 사운드가 그런 효과를 강하게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곡에서는 인더스트리얼 비트(뭐 그리 존재감이 크진 않지만)도 강한 공명감을 가지고 나타난다. 사실 비트의 역할이라기보다는 효과음에 가까울 것이다. 무조적이면서 불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스트링이 있지만 이 또한 선율을 이끈다기보다는 효과음에 가갑다. 이런 표현이 적합할지는 모르겠지만, 계산된 연주를 이용한 음향의 재현, 정도라고 하는 게 나름 틀리지는 않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을 듣고 구체적인 음악의 잔상을 머리에 남기기는 사실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좋게 표현한 얘기고, 나쁘게 얘기하면 듣고 기억이 잘 안 난다는 얘기다) 그런데, 사실 죽음이라는 추상적 대상 - 물론 실재하는 일이고 경험 가능한 것이겠지만, 죽음을 경험하는 순간, 죽음 이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걸 인식할 수 있겠는가? - 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많은 이들은 그래서 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해 왔다고 생각한다. 특히 음악의 경우는 가시적인 이미지를 보여 주지 못할 테니 더욱 그런 면이 있을 것인데, 그런 면에서 Autopsia의 사운드는 이를 좀 더 '직접적' 으로 표현하려고 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뭐, 굳이 이런 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음악은 사실, 뜯어 보면 꽤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음악이다.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모든 건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앰비언트의 요소가 강한 음악에서 작위성을 이렇게 훌륭하게 피해나가는 것만으로 이 앨범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이 만큼이나 즉물적인 음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