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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Manuscripts Don't Burn - The Breathing House

[Amaranth Recordings, 2010]

"Manuscripts Don't Burn" 이라는 말은 원래 Mikhail Bulgakov의 책인 "Master and Margarita" 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게 번역이 되었던가...)이 분은 말하자면 솔제니친 같은 사람처럼 구 소련의 탄압을 받았고(물론 Bulgakov가 1949년에 죽었음을 생각하면 스탈린의 탄압을 받았겠지만), 시베리아 바람도 쐬다 오신 그런 분인데, 덕분에 글에서는 상당한 피로함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을 솜씨 좋게 가리는 - 일종의 블랙 유머랄까 - 모습이 인상적인 작가였다고 생각한다. 'Manuscripts Don't Burn' 은 말하자면 Bulgakov가 이 책에 새겨 넣었던 - 이 책은 그의 생전에는 발표되지 못했지만 -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일갈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이 이름은 오늘날 저작물의 검열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많이 이용되고 있기도 한데, 물론 이 밴드가 표현의 자유의 투사로 지금 이 앨범을 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식의 날카로움을 가진 음악을 기대하는 것은 이 이름에 대해서는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이 밴드는, Ephel Duath의 Davide Tiso의 원맨 프로젝트이니, 그런 기대의 근거는 충분하다.

앨범은 전 곡이 연주곡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사실 Ephel Duath의 "The Painter's Palette" 나 "Pain Necessary to You" 같은 앨범을 연상케 한다. 물론 그건 굴곡이 심하고, 코어적인 면모도 보이는 톤은 물론, 전체적으로 모노톤의 사운드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고, Ephel Duath도 그렇긴 했지만 이 프로젝트의 경우는 좀 더 많은 스타일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인더스트리얼이나 블랙메틀까지(이를테면 'Connubium In Solitude'. 물론 Ephel Duath도 블랙메틀을 했던 밴드이지만, 적어도 "The Painter's Palette" 시절에서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등장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스타일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 30분이 채 되지 않는 EP라는 점이고, 다양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곡의 진행 방식은 사실 전형적인 편이라는 것이다. 스타일은 바뀌지만 곡의 기조를 받치고 있는 리프는 그 원형을 거의 유지하는데, 이것이 계속 변주되면서 - 물론 이어지는 변주로 처음의 원형은 뒤에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 진행되고, 이를 반복하는 방식이다. 이런 전개를 훌륭하게 표현한 (요새)밴드라면 내 생각에는 Dysrhythmia 같은 이들이 있겠는데, 이들의 음악에서 'math metal' 적인 면모도 찾아볼 수 있음을 생각하면 그걸 의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Tiso는 꽤 많은 변화를 곡에 주고 있지만, 이들의 음악은 기타-베이스-드럼으로 연주하는 실험적인 메틀 사운드 의미를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코어 사운드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으니 이들에게는 좀 불공평한 노릇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프로그레시브라는 의미에서 보아도 얘기는 그리 틀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Uriel이나 Metatron 등이 등장하는 천계의 이야기, 가 주된 테마라고 생각되지만,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리프에도 불구하고(이 앨범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모노톤에 가깝게 느껴지는 사운드는 그 흐름을 이어 주지 못할 것이다. 아무래도 앨범의 클라이맥스일 'Invoking Metatron' 에서도 그런 점은 바뀌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덜 코어적이었던 탓에 귀에 들어온 'The Iron Dog Protecting the Sea' 가 앨범을 인상적으로 마무리하지만, 그렇더라도 어떤 얘기를 좀 황급히 마무리짓는다는 인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The Painter's Palette" 는 아무래도 팔레트의 색채들과 맞물려지는 이미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프로그레시브 메틀에 비해서는 훨씬 즉물적인 표현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 앨범이 훌륭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Tiso가 지나치게 이미지의 전달에만 치중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소문 난 잔치(과연 소문이 났는지는 모르겠다만)에 먹을 게 없어도 너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