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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Hubert Laws - The Rite of Spring

[CTI, 1972]

사실 이런 식의 재즈-클래식 결합, 아니, 클래식을 재즈로 변용한 앨범들은 수도 없이 있어 왔고, 많은 경우는 민폐의 첨단을 달려가는 편인데, 어쨌든 CTI에다 50년대부터 재즈 씬을 활보했던 Hubert Laws인 만큼 타이틀 자체에는 어느 정도 신뢰를 갖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In the Beginning" 같은 무슨 에스닉함으로 승부하는 듯한 얼척없는 커버가 아니라, 상당히 멋들어진 커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앨범은 나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일단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메인으로 잡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닌데, 그 외에 함께 다루는 곡이 포레와 바흐, 드뷔시라는 것인데, 짧은 귀의 나로서는 포레와 스트라빈스키가 한 번에 등장하는 광경은 어지간해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뭐 따지고 보자면야 말이 안 될 건 없겠지만)Hubert Laws가 그 만큼 다양한 경력을 쌓아 왔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런 부분은 위험한 건 확실하다.

물론 이 클래식들의 해석은 그렇게 녹녹하진 않다. 포레의 파반느는, 원곡의 테마를 가져가면서도 Bob James의, 원곡의 튠을 이용해 살짝 뒤튼 피아노 연주로 진행되는데, 주선율을 Evans가 가져간다면 Gene Bertoncini와 Stuart Scharf의 기타 및 바순 연주가 재즈 튠을 덧붙이는 형태이다. 포레의 경우야 그래도 원곡과 큰 차이가 없는 편이라면, 스트라빈스키의 경우에는 확실히 문제가 나타난다. 해석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봄의 제전은 분명히 힘겨운 음악이다(먼저 덧붙이는데, 난 스트라빈스키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달리 말하면 그 힘겨움을 재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하자면, 워낙에 에스닉하면서도 강력한 리듬을 가져가는지라 (故 피나 바우쉬가 봄의 제전을 손을 댔던가... 잘 모르겠지만, 댔다면 멋졌을 거라고 생각한다)페도세예프도 좋고 래틀도 좋지만, 확실하게 강력한 무티나 화려함으로 승부하는 틸슨 토마스가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Don Sebesky의 어레인지가 이 힘든 곡을 좀 더 감내하기 쉽게는 한 듯하나, 위계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Jack DeJohnette가 거의 드럼머신 수준으로 박자를 이끌어가나 같이 노는 분들이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 앨범의 절정은 스트라빈스키가 아니라 단촐하게 진행되는 드뷔시의 시링크스이다. 개인적으로는 Hubert Laws는 플룻보다는 피콜로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이 곡은 플룻 독주다(원곡이 그러니 어쩔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앨범의 색채에 가장 잘 맞기 때문일 것이다. 뒤에 이어지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의 해석은 봄의 제전에서만큼이나 원곡과의 격차가 크지는 않은데, 강박적으로 재즈 튠을 덧붙이는 모양새는 앞의 곡보다도 더 심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좀 더 단단한 구조의 곡이어서 그렇겠지만(사실, 스트라빈스키는 물론 고전적인 작곡가였지만, 바흐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의 시링크스가 확실히 구별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드뷔시는 앨범의 절정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앨범은 좀 덜 유기적으로 된 셈이다. 물론 이 앨범에 일관된 컨셉트를 요구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그건 청자의 이질감과는 별개일 것이다.

물론 이 앨범이 꽤나 유명하다는 전제에서 굳이 꼬투리를 잡는 것이지, 사실 일반적인 클래식도 아니고, 재즈퓨전도 아닌 확실한 차별성을 가진 음악으로서 의미심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앨범에 한 가지의 일관성을 찾는다면, 봄의 제전이라는 레테르를 앨범에 불어넣은 탓인지 적어도 이 앨범에서 Laws의 연주에는 일관된 퇴폐성("Afro-Classic" 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확실히 그 양상이 틀리다)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당연히 슬리지하다거나 하는 뜻은 아니다. 한두 번 들어서는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을 봄의 제전을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의 하나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을지도.

post script :
이런 앨범도 올라온다고 놀라는 사람이 있을진대... 이런 것도 듣긴 듣는다. 지식이 일천할 뿐이다(뭐 다른 것도 잘 아는 건 아니긴 한데).